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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하고 또 칠한 듯 벗겨진 틈 사이로 또 벗겨지고 있다. 겹겹이 두른 껍데기가 전부 사라지면 다시 칠해질 수 있을까, 하면서.
아무리 사소한 흔적이라도 지나치지 말 것. 그것이 흔적으로 남기 위해 지나쳤을 시간은 치열했으므로.
하늘을 헤엄치는 물고기 하나, 지느러미를 움직이자 어디선가 바람 우는 소리 들려온다.
잊혀진 과거가 모이는 곳, 그곳에 잘게 부서진 누구인지도 모를 기억 위에 가벼이 무게를 실어 발자국을 남겨 본다. 곧 사라질 흔적을 애써 새겨 본다.
어두운 바다 아래에서 건져 온 선명한 빛깔들. 무엇이든, 들여다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임을 배운다.
길은 분명 하나인데 어째서 둘이 되었다.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는 어김 없이 생명이 움튼다.
집을 찾는 이는 누군가가 보낸 평범한 안부일 수도 있고 뜻밖의 소식일 수도 있기에 허리를 숙일 때마다 가슴이 뛴다.
그늘을 지나자 등골이 서늘하다. 그 어떤 말보다 차갑고 시린 것이 발가락을 타고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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