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왔어. 짜잔! 우리아들이 좋아하는 호두과자!”
“야호! 신난다. 우리 엄마 최고!”
“우리 민수 퇴원하면 엄마가 호두과자 더 많이 사줄게. 혼자 심심하고 무서웠을 텐데도 잘 참아줘서 고마워. 사랑해 우리 아들!”
“정말? 정말이지? 수술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호두과자 많이 먹을 날도 얼마 안남은거네? 맞지? 응?”
“그래, 우리 아들 똑똑하네.”
무균실 밖에서 간호사가 나를 부른다. 담당 전문의의 호출이라고 했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가망이 없다니. 우리 아들이 이렇게 예쁘고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왜.’
담담한 어조로 말하는 의사의 말에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수술이 며칠 안 남았는데 도대체 왜이러시냐고 무릎을 꿇고 빌어보기도 했다. 의사는 지나치게 이성적인 말만을 내뱉었다. 의사에게 너도 자식 키울 것 아니냐며 악을 질러보았지만 의사는 이해한다는 말만 했을 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가슴에 묻어야했다.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이민을 가자고 했고 남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남편은 아이를 하나 더 갖자고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왔어도 천사 같이 웃어주던,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도 울지말라며 손을 잡아주던 천사 같은 민수의 모습이 더욱 생생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나온 지 어느덧 40여년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민수를 그리워했지만 눈물짓지는 않았다. 남편과도 민수의 생일날 이외에는 민수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나누려하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점점 기억 속에 무뎌져 있었다.
남편의 사업 때문에 이민을 떠난 후 4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분주한 사람들의 발소리 그리고 쾌청한 하늘 무엇보다 한국어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인 듯 했다. ‘변한 것이 없구나. 나 밖에’ 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런데 어쩐지 주위에 호두과자 전문점이 눈에 띄었다.
‘호두과자. 우리 민수가 참 좋아했는데. 퇴원하면 양손 가득 넘치도록 사준다고 약속했는데.’ 40여년만의 기억이 파르르 떨렸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했고 민수와 이별하던 날 그리고 현재의 시간이 맞물리는 것만 같았다.
딸랑 거리는 현관문 종소리가 울리고 친절해 보이는 점원에서 호두과자 한 봉지를 주문했다. 갓 담겨 나온 호두과자는 따뜻했다. “우리 민수 손처럼 따뜻하네.”내가 봉지를 받아들며 속에 있던 혼잣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한가로운 공원에 한참을 앉아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마나 뛰어놀았는지 머리가 땀으로 다 젖도록 뛰어놀던 아이를 아이의 엄마가 찾으러 왔다.
“이제 그만 가자. 배 안고파? 점심도 안 먹고 이렇게 뛰어놀게.”
“배고파. 엄마, 근데 나 저기 할머니가 들고 있는 호두과자 먹고 싶어. 나도 사다줘. 응? 엄마~”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무슨 호두과자야. 얼른 가자. 엄마 지갑도 안가지고 나왔어.”
“싫어, 나 호두과자, 호두과자~”
엄마에게 떼를 쓰는 아이를 보니 우리 민수가 더욱 아련했다. 아이 엄마에게로가 먹으려고 샀는데 못 먹게 되었다며 괜찮으니 아이를 주어도 된다고, 원래 이맘때 아이들은 단 것을 좋아하나보다고 호두과자를 건넸다. 아이엄마는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아이의 머리를 콩하고 쥐어박았다.
그나저나 금방 온다고 하던 남편이 오지 않는다. 다시금 그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데 어디에서 따뜻하고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남편이다. 남편의 손에는 따뜻한 호두과자가 들려있다.
아내와 이혼 한 뒤에도 별 탈 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외국에 나가서 살고 있는 딸은 몇 년 전에 오붓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결혼식장에서 딸의 손을 잡아주지는 못했지만, 딸과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내기는 했다. 딸에게도 이제는 귀여운 딸이 생겼다. 아내와 이혼한 이후로 자주 만나지 못해서일까, 딸도 이제는 삼십 대 중반이 되었지만 내게는 여전히 아이가 아이를 낳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나이 들어 한 가지 취미가 생겼다. 바로 철새들을 사진에 담는 것이었는데,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많이 새들을 담고 싶은 마음에 딸이 결혼한 바로 그 해에는 낙동강 하류로 이사까지 왔다. 사실은 이사를 결정했을 때, 아내가 지금 이 곳에 살고 있다고 들은 것을 조금 염두에 두기도 했었다.
“왜? 왜, 할아버지. 한국, 눈 오는 나라!”
“민주야, 거 가만히 있지만 말고 유리한테 여기 따뜻해서 눈 안 온다고 영어로 설명 좀 해 줘 봐봐.”
나는 매년 설날만 되면 난감한 상황에 처하곤 했었다. 손녀가 태어난 이후로 딸은 일 년에 한 번, 설에만 내 집에 다녀가곤 했는데, 겨울이 없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나고 자란 손녀딸은 부산에서 항상 눈을 찾는 것이었다. 여섯 살 배기 손녀딸은 부산에서는 좀처럼 눈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눌한 한국어로 매년 눈을 보여 달라 보채다가 종국에는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한층 더 난감한 상황이 찾아왔다. 딸이 돌연 유리만 내게 맡기고는, 제 남편이랑 아내의 집에 다녀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손녀가 잠든 사이, 딸과 사위가 슬그머니 집을 나섰다. 유리는 역시나 일어나자마자 눈을 찾기 시작했고, 나는 유리의 손을 잡고 딸이 사전에 일러 준 장소로 향했다.
유리가 신이 나서 하도 뛰어 다니는 통에 나는 혹여 유리를 놓칠까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부산시민이 된지도 어느 새 칠 년 차인데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다. 내가 종종 철새 사진을 찍으러 오던 생태공원에 부산에 단 하나 뿐인 눈썰매장이 열린 것이다.
눈썰매장은 눈을 찾으러 나온 아이들로 가득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 눈에 봐도 예쁘장한 혼혈아인 유리를 보고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는데, 나는 손녀 애의 보호자인 것이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일 년에 꼭 한 번 밖에 못 보는 아이인지라 손녀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고, 무엇보다 철새처럼 아이도 곧 제 부모를 따라 내 손을 떠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손녀와의 첫 외출인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할아버지! 여기!”
슬로프를 미끄러져 내려오며 손녀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이는 신이 난 모양이었지만, 할아버지 되는 입장에서는 불안하기만 하다. 나는 손녀가 넘어질세라 얼른 썰매가 오는 쪽으로 달려가 손녀를 받아 안았다.
그런데 손녀 쪽으로 달려오다가 발걸음을 멈추는 한 사람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그 곳에는 이십 여 년 동안 자글자글하게 주름이 져 버린 아내가 서 있었다.
사위는 떠나기 전에 내 손에 먼 타국의 이름이 적힌 비행기 티켓 두 장을 건네주었다. 그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황망한 표정으로 서 있으려니, 딸애가 다가와 티켓을 쥔 내 손을 잡으며 가만히 말을 걸어 왔다.
“아빠, 있잖아. 옛날에 엄마는, 한 번쯤은 아빠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고 집에 찾아 와 주기를 바라고 있었어. 아빠가 돌아와야 할 곳이 언제나 우리 집으로 정해져 있었으면 했었어.”
그 날, 아내는 딸과 사위를 따라 왔던 자리에서 나를 마주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던지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나는 인파를 헤치고 있는 그 뒷모습에서 미움이나 경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설렘이나 사랑은 더더욱 아닌 미묘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내게도 그렇듯이 아내에게도 아쉬움이 깊게 남았으리라. 제가 사는 낙동강 하류에 어느 새 나도 흘러들어 있던 것을, 아내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계획된 마지막 여행이었다. 여섯 살짜리 딸아이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지 못해서인지 김밥을 싸 가자고 성화였다. 잠이 많아 아침마다 깨워서 유치원에 보내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아이가 나보다도 일찍 일어나 고사리손으로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남편은 아직 자고 있는 것 같았다. 딸아이가 아빠를 깨우겠다며 쪼르르 건넛방으로 달려갔다.
“마지막으로 민주가 가고 싶다고 했던 섬이나 다녀오자. 텔레비전에서 본 이후로 벌써 열 번도 넘게 조른 것 같아.”
나는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을 꾹꾹 참으며 말했다. 사소한 일로 시작된 다툼이 어느새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그게 무엇 때문이었더라, 아마 설거지나 빨래 같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던 것 같다. 각방을 쓰게 된 지도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은 날도 허다했다. 다른 건 다 괜찮았다. 우리 둘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점점 더 소극적인 성격이 되어가는 민주를 두고 보기가 힘들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는지, 먼저 이혼을 제의해 왔다. 이상하게도 그때 내게는 딱히 이혼을 거절할만한 구실도,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다.
섬에 다녀온 뒤에 이혼 서류 같은 것들을 정리하고, 민주에게도 엄마 아빠의 결정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마지막 여행이 될 터였다.
서울에서는 두 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장고항에서 고작 십 분.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섬이라기에 민주가 멀미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장고항에서 섬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국화도. 생각할수록 기억하기도 쉽고 참 예쁜 이름이었다. 고작 여섯 살밖에 안 된 민주도 텔레비전에서 한 번 본 섬 이름을 기억하고 한 달이 넘게 국화섬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을 정도니까 말이다. 국화도는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송이의 국화처럼 작았다. 민주가 옷소매를 잡고 늘어지며 외쳤다.
“엄마, 나 토끼섬!”
토끼섬이 뭔가 했더니 도지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남편이 민주를 안아 올려 목마를 태워 주었다. 민주는 신이 나서 토끼섬, 토끼섬 하고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른다. 국화섬은 세 개의 섬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세 개 중 가운데에 있는 가장 큰 섬을 이르는 말이기도 한다고 했다. 위성을 거느린 행성처럼, 썰물 때에는 도지섬과 매박섬으로 가는 길이 모두 열린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도지섬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아주머니 한 분이 도지섬에 가는 것을 만류하신 것이다.
“지금 가면 안 될 텐데. 지금 밀물이라 들어가면 못 나올 수도 있어요. 잠깐 물놀이하면서 썰물 때까지 기다려 봐요.”
밀물이었다. 민주가 토끼섬 못 가냐며 울먹이다가, 끝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도 나도 당황하여 일단 민주를 달랬다.
“민주야, 아주머니 말씀대로 좀 이따 썰물 때 가면 되잖아. 응?”
민주는 밀물이 싫다며 막무가내였다.
울다 지친 민주를 남편이 안아 재우는 동안 머리를 식힐 겸 산책을 나왔다. 나는 그때야 안내문을 제대로 들여다보았다. 도지섬은 지대가 높아 밀물 때에만 길이 끊기고, 매박섬은 지대가 낮아 썰물에만 길이 열린다고 한다. 남편과 나, 그리고 민주도 밀려오는 파도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한다. 나는 도지섬이 될까, 매박섬이 될까. 나는 왈칵 울음이 쏟아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민주는 국화섬처럼, 도지섬과도 매박섬과도 매번 이별을 되풀이하며 살게 될 것이다.
뒤따라 나온 줄도 몰랐던 남편이 달려와 나를 일으켜주었다. 왜 우느냐고 묻는 남편에게 나는 조금 전의 민주가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보, 밀물이야.”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 해 버렸다. 곱창골목에 가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만, 일부러 먼 곳에서 오는 내게 시간을 맞춰 주는 정도의 융통성도 없는 건 여전하다. 칼같이 시간을 지키는 그 섬세함은 나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약속 시간 한 시간 반 전으로 알람 맞추고, 정시에 도착해! 약속 시간 십 분 전에는 전화 하고. 일 분도 지각하면 안 돼!’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은 항상 내 쪽이었다.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곱창골목에서 걸어서 십 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카페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예나 지금이나, 이 거리는 참 예뻤다. 마치 향기로 골조를 세운 것처럼, 각 가게의 특색이 그대로 반영된 건물들이 가득 들어 차 있다. 프랜차이즈 점들을 무심히 지나쳐 테라스가 있는 붉은 벽돌집 앞에 섰다. 연애를 시작하던 무렵, 정현이와 함께 케이블카를 타던 날 들렀던 그 카페였다.
우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주 앉아 케이블카를 탔었다. 나는 너무 높아서 무섭다며, 소년처럼 신이 나 있는 정현이의 팔을 꼭 붙들었다. 아마 우리는 그 날 첫 키스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날의 붉어진 뺨처럼, 쉴 새 없이 두근대던 가슴처럼 달콤한 카페 모카를 주문했었다. 휘핑 크림을 잔뜩 얹어서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보이는 카페 모카를 말이다. 하지만, 방금 나는 카운터 앞에 서서 망설임 없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카페 모카와 아메리카노 만큼이나 다르다.
새삼, 옛 연인과의 재회가 이렇게 사심 없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현이와 헤어진 지도 어느덧 삼 년. 우리는 그 후로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몇 달에 한 번 정도는 꼬박꼬박 만나서 새로 생긴 고민이 무엇인지,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심지어는 새로운 애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하긴, 나와 정현이 둘 다 그 새로운 애인이라는 사람들과 빠르게 이별을 고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야, 너는 어째 백 일을 못 넘기냐.”
“뭐래, 너 지난 번 남자친구랑 한 달도 못 채우고 헤어진 거 기억 안 나?”
정현이는 자연스럽게 내 몫의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나 또한 습관처럼 정현이 몫의 카페 라떼를 주문했다. 그러고 나면 왜 네가 내 것을 시키느냐며 투닥거릴 차례다.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처음으로 정현이 앞에서 카페 모카 대신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던 날을 기억한다. 정현이가 주문한 카페 모카를 취소하고, ‘아메리카노 주세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곧바로 ‘나 이제 아메리카노 마시는 여자야.’라고 농담을 건네려 했는데, 오랜만에 만났더니 입맛마저 바뀌었느냐고 묻는 정현이는 왠지 모르게 우울해 보였다.
그 때, 나는 내가 내심 정현이가 나 때문에 새로운 연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사이의 불문율에 속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진지해지는 순간 여느 헤어진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서로를 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 함은, 그 사이의 공백 기간 동안 서로의 향기를 잊기 위해서다.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한 시간은 찰떡궁합이다. 여섯 시 십 분 전. 어김없이 휴대 전화가 울렸다. 정말,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내가 변하려고 기를 쓰는 동안, 정현이는 우리들의 달콤했던 향기를 잊지 않으려 애를 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야.”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한 마디는, 정현이가 입버릇처럼 내게 했던 말이다. 입가에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옛 연인과의 재회가 사심 없을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 향기를 나누러 간다.
검은 그림자가 걷히고 난 그 어느 날부턴가 조용하던 마을이 시끌시끌한 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어요. 그것은 다름 아닌 태안에 해수욕장들끼리 서로 자기가 더 멋있는 해수욕장이라며 싸우는 소리였지요. 해수욕장들끼리 싸우는 소리에 할미바위가 귀를 틀어막으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머리야.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고.”
그 중 유일하게 싸움에 끼지 않은 해수욕장이 바로 할미바위와 할아비 바위가 있는 꽃지 해수욕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해수욕장들은 꽃지 해수욕장에 있는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를 찾아가 누가 가장 멋있는 해수욕장인지 판결을 내 달라고 물으러 갔습니다.
그중 가장먼저 만리포 해수욕장이 어깨에 힘을 잔득 주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할미바위, 할아비바위님! 태안에서 제일가는 해수욕장이라면 당연히 제가 아니겠어요? 저는 서해안에서 제일 멋있기로 3위 안에 꼽힌다고요! 그뿐인 줄 아세요? 사람들이 저를 찾으면 똑딱선 기적소리~ 만리포라 내 사랑. 이렇게 노래까지 흥얼거린다니까요!”
그러자 몽산포 해수욕장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습니다.
“허, 저는 아주 울창한 송림을 가지고 있어요. 몽산포 송림은 국내 최강으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당연히 제가 제일 으뜸이죠. 게다가 나를 찾는 사람들은 맛조개를 잡는 재미까지 있다고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안 그래요?”
머리를 꽁꽁 싸매고 있던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도 판결을 내기가 어려워 해수욕장들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러자 해수욕장들은 자신이 더 멋진 해수욕장이라는 것을 뽐내기 위해 사람들을 더 오래 머물게 하기위해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와 오물들을 눈감아 주었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쓰레기와 오물들로 가득해져버렸습니다. 보다 못한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는 해수욕장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옛날 어느 날이었어. 평화롭던 마을에 갑자기 큰소리로 뻥!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리 마을 앞바다가 온통 검은 그림자로 드리워졌지. 그러더니 끈적끈적하고 검은 기름때가 우리 마을 온 바다를 뒤덮기 시작했어. 숨도 쉬기 힘들 지경이었지. 기름때는 순식간에 깨끗했던 바다를 뒤덮고 바위와 돌, 그리고 바다 새들까지도 뒤덮었지.”
딴청을 하며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해수욕장들은 하나 둘 씩 점점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맑던 바다는 검은 바다로 변했고 물고기와 오리들은 떼죽음을 당했지. 바다에서 조개를 캐고 물고기를 잡아 생활하던 어민들도 한순간에 생활이 막막해진 거야. 이제 태안은 돌이킬 수 없는 버려지는 곳이라고 생각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어.”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을 줄 알았던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 그리고는 하얀 천을 들고 바다와 갯벌, 바위틈을 천천히 닦아내기 시작했지. 그렇게 모이고 모이던 사람들의 손이 닿는 곳이 다시 밝은 빛으로 변하더니 조금씩 검은 그림자들이 걷히기 시작했단다.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아름답게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건 다 우리를 위해 하나 둘씩 모은 마음들 덕분이겠지.”
해수욕장들은 그제야 서로 싸우던 자신들과 쓰레기로 더렵혀진 자신들을 부끄러워하며 이렇게 해수욕장들과 깨끗한 바다로 둘러싸인 마을을 자랑스러워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태안의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보답하고자 더 아름다운 절경을 선물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방학 끝물, 다음 학기가 마지막인 친구들끼리 모여 특별한 기억을 만드는 계획을 세우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맞는 마지막 방학인 만큼 정말 특별한 계획이 필요했는데, 바다도 계곡도 지겨울 정도로 다녀왔기에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야, 정말 이제 해외로 나가지 않는 이상 할 게 없는데?”
맞는 말이었다. 우리처럼 많이 놀러 다닌 대학생들도 없을 것이다. 전국 각지의 명소란 명소, 축제란 축제는 다 돌아다니는 우리들 네 명에게는 이미 국문과 유랑단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우리의 고민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마땅히 끌리는 곳이 없어서 애를 먹고 있는데 한 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 하나 있다. 우리가 안 해 본 거. 자전거 여행은 한 번도 안 해 봤잖아.”
“자전거 여행? 그건 제대로 가려면 한 일주일 잡고 가야 될 텐데, 우리한테는 이번 주말 밖에 시간이 없잖아.”
게다가 학교 근처에서 모두 자취를 하고 있는 터라 자전거를 소지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자전거라는 말에 다들 귀가 솔깃해졌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의 접이식 자전거 이후로, 자전거를 타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자전거 여행은 제치고서라도, 자전거를 빌려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데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고민한 결과 선택한 곳이 소래습지생태공원이었다. 폐염전과 염전 저수지, 그리고 풍차를 함께 볼 수 있는 자전거길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바로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 대학생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은 행동 개시를 서둘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말은 정말 맑았다. 너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처음에는 중심을 잡기도 힘들어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네 명 모두 신나게 소래길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길이라더니, 볼거리가 많았다.
넓은 들판 위에 빨간 풍차 세 대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을 보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전거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 큰 청년 넷이서 풍차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모습이 우리 스스로도 우스워 한참을 웃었다. 커플 단위로 사진을 찍으러 나온 사람들도 많았고, 체험학습을 나온 것 같은 어린 애들의 모습도 꽤 많이 보였다. 염전에 파란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는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난 사실 여기 걸어서는 몇 번 와 봤는데, 걸을 때랑은 기분이 완전히 다르네.”
“맞아. 보이는 게 완전히 다른데?”
정말이었다. 나도 새내기 때 즈음에 혼자 소래길을 걸으러 나와 본 적이 있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소래길은 또 느낌이 달랐다. 걸을 때에는 꽃 하나, 풀 하나가 다 특별하게 보였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니 그 꽃 하나와 풀 하나가 포함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더 넓게, 더 멀리 볼 수 있게 된 것 같은 기분에 왠지 뿌듯해졌다. 좁은 시선으로 보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넓은 시선으로 보는 풍경도 특별했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다들 말이 없어졌다. 아마 다들 머리가 복잡할 것이다. 사실 어디론가 떠나는 일에 대해 우리의 마음이 급해진 것은, 앞으로 이렇게 추억을 만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압박감 때문일 것이었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데에만 열중하던 우리들이었는데 이제는 어느 새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말은 안 하지만 다들 졸업 후에 무엇을 하며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고, 이미 고시나 토익 준비 때문에 평소에는 집 밖으로 잘 나오지 못하는 친구들도 몇 있었다.
부인교에 걸린 구름 앞에서 우리는 하나같이 멈춰 섰다. 때마침 패러 글라이드 하나가 바람을 타고 미끄러져왔다. 파란 하늘 위에 노란 패러 글라이드가 미끄러지는 모습에 모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문득, 풍차 근처에서 연을 날리고 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들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연에 꿈을 매달게 될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한 마디가 흘러 나왔다.
“딱 오 년 뒤에, 다들 남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고 여기 다시 오자.”
어울리지 않게 웬 진지한 말이냐며 빈축을 샀지만, 친구들 모두 멋쩍게 웃는다.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치고 돌아오는 길,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또 한숨이다.
“내가 몇 번을 말해! 양말 거꾸로 벗어 놓지 말고, 한 번 입은 옷은 옷장에 넣어두지 말라고 한 말 또 까먹었어요?”
“그래. 그러니까 당신이 하라고 당신이.”
“내가 언제까지 당신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어야 되는데. 당신 정말 나 없어도 이럴 거냐고요!”
아내는 눈물 섞인 소리를 내뱉었다.
“없긴 누가 없다 그래. 그런 쓸데없는 소리 마.”
아내에 비해 꽤 담담한 어투다. 남자의 목과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으나 아내가 눈치 채기엔 남자의 말투가 너무 무심했다.
남자의 사전엔 책임감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학교에서도 반장은커녕 기준도 제대로 외치지 못하던 남자였다. 심지어 그는 나라와 국민들의 안위조차 자신의 가녀린 두 어깨에 짊어지는 것이 무거워 군대도 가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도 아내와 노모가 있다. 말하자면 그는 가장인 셈이었다. 부양해야할 가족. 남자가 생각하는 그 책임감이라는 것이 남자의 어깨에 잔뜩 얹혀 있는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나쁜 남편이었다. 아내가 아프기 전까지. 도무지 한 회사에 정착해서 다닐 생각도 못하던 남자를 아내는 조금도 채근하지 않았다. 그런 아내에게 남들은 저러다 화병에 걸려 제명에 못 죽을 거라고 했다. 말이 씨가 됐을까. 아내는 화병은 아니었지만 의사에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죄가 있다면 무책임한 남편을 방관한 죄일 것이다.
아내는 병원에 다녀온 뒤부터 남편에게 평소에 하지 않던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아마 자기 없이 남편 혼자 스스로 살아가는 삶을 익혀두게 할 작정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신경질을 부렸고 심지어는 아내의 짐을 싸 내보내려고 아내의 서랍을 뒤졌다. 그러다 발견한 약봉지와 진단서. 남자는 그날로 집을 나갔다.
남자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남자가 집을 나간 후로부터 보름쯤 지난 후였다. 남자는 그저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을 할뿐 다른 말이 없었다.
남자는 전국 방방곡곡 아내의 병에 좋다는 약을 수소문하며 찾아 다녔다. 전국에 유명한 의원들을 찾아가 아내의 진단서를 보여주며 고칠 수 있겠냐고 따져 묻듯이 소리를 지르기도 벌써 보름하고도 닷새가 넘어섰다.
남자는 중얼거리듯 조금만 기다려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남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착한 곳은 산청. 남자는 어렴풋이 산청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아내가 드라마를 볼 때였나 그럴 것이다.
남자는 몸에 좋다는 약초들을 찾아다니느라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남자는 간만에 어느 선술집 자그마한 방에 몸을 뉘었다.
숨을 쉴 때마다 앙상한 갈비뼈 윤곽이 드러났다 사라지곤 했다. 아내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 본적이 있을까. 그동안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생각했다.
피곤한 몸이라 금세 잠이올 줄 알았는데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문득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뚜르르, 한참을 신호가 흐르고 딸깍 소리가 났다.
“여보세요.”
“나야. 별 일없지?”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 없으니까 편하지 뭐, 안 그래? 양말 뒤집어 놓는 사람도 없고.”
“당신도 참. 그나저나 어디서 뭐 하고 다니는 거예요?”
“내일 올라가. 그 때까지만 기다려. 꼭.”
남자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어디 아프지는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럼 아내와 자신 모두가 말을 잇지 못할 것 같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내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소와 다름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아내혼자 이별을 준비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왜 내게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으나 남자는 여전히 무심한 어조로 기다리라는 말뿐이다.
통화를 하는 남자의 손에는 아내에게 가져다 줄 한 아름의 약초와 한약재가 쥐어져있었다.
산은 그저 산일뿐이야. 어떤 의미를 갖다 붙인다고 해도 산이라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몰라? 이런 논리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결혼을 약속한 둘이 유일하게 말다툼이 시작하는 곳 바로 산이다. 남자는 산이 좋았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모든 것이 적당했으면 하는 여자의 바람이 그리 욕심인 걸까? 여자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였으나 남자의 산사랑 만큼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악몽 같던 첫 데이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둘은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둘이 소개팅을 하던 날 여자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질문을 했다.
“취미가 뭐예요?”
“등산이요.”
남자의 한껏 격양된 목소리는 무심코 던진 돌에 반응하는 개구리처럼 번뜩였다. 등산이라는 단어는 무미건조하고 일반적인 취미 중 하나였으므로 특별할 것 없다고 여겨지기 쉬웠으나 남자의 등산사랑은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었다.
여자는 어쩐지 남자의 체구가 더 탄탄해보였고 요즘 트렌드에 맞게 자기관리 하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등산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 같다고 말하겠지만 그때의 남자는 듬직하고 씩씩해보였다.
“그럼, 막 높고 험한 산들도 잘 타시겠네요?”
“그럼요, 언제 한 번 같이 등산 가실래요?”
그렇게 둘의 첫 데이트는 등산이었다. 보통 연인들처럼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자기 한입 나 한입을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손을 잡아주면서 그렇게 도란도란 구경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계절을 생각하지 못했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산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은 멋있었으나 그 현장에서는 발이 푹푹 빠졌으며 몇 걸음 안가 금세 체력이 바닥이 나기 일쑤였다. 더군다나 등산이라고는 동네 언덕배기 정도 오르락내리락 한 것이 전부였던 여자에게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 험준한 산행을 한다는 것은 더욱 체력소모가 큰 일이었다. 가족과 함께였다면 벌써 징징거리며 내려가겠다고 떼를 썼겠지만 명색이 첫 데이트에서 내려가겠다고 신경질을 부리는 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저렇게 황홀한 표정으로 산을 오르는 남자에게.
어느새 여자는 조금씩 뒤쳐졌고 조금 쉬었다 가자는 말도 잦아졌다. 여자는 내색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표정에서 지치고 짜증이 섞인 표정이 새어나왔다. 남자는 여자의 심경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연신 감탄사만 내뱉고 있었다.
“이야, 정말 멋있지 않아요? 이건 돈 주고도 경험하지 못한다니까. 제가 이래서 산을 끊을 수가 없어요.”
“네, 그러네요...”
남자는 여자가 이와 비슷한 어조로 대꾸를 해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자는 달랐다. 여자의 눈에 산은 그저 산이었고 힘든 건 힘든 것이었다. 그제야 여자의 마음을 눈치 챈 남자는 서둘러 여자의 상황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어디 아픈 건 아닌지 오늘 너무 무리한 것은 아닌지.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정상에 쌓인 눈처럼 쉽게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안해요. 정말. 제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저도 여기는 처음 와본 곳이라.”
남자는 말끝을 흐렸다.
“제가 산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남들은 산을 정복했다는 묘미나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얻었다는 마음에 희열을 느낀다고 하는데 저는 좀 다르거든요. 뭐랄까. 숨이 차는 느낌이 좋다고 할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정말이지 한 발자국도 내딛기 힘을 때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나뭇가지에 고스란히 쌓여있는 눈과 흙과 솔방울을 밟을 때 사박사박 내는 소리. 그런 게 좋아요.”
남자는 제법 진지했고 남자의 말을 듣는 여자는 더욱 진지했다.
“산, 산, 산! 이번엔 또 어떤 산인데?”
“너와 처음 갔던 곳, 그곳에서 너에게 해줄 말이 있어.”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