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발만 보고 있어도 현기증이 올라왔다. 대전역 1번 출구는 사람들로 붐볐다.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옮겨가고 있어서 그런지 반소매를 입고 있는 사람부터 가벼운 카디건을 입은 사람까지 통일감이라곤 없어서 더욱 북적임이 심했다.
현영은 1번 출구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가 생각보다 늦어지자 초조한 마음에 한쪽다리를 살짝 떨고 있었다. 애꿎은 휴대전화 버튼만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멀리서 할아버지 한분이 같은자리에서 두리번거리며 무엇인가를 찾는 것 같았다. 도와드릴까? 괜히 끼어드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순간에도 할아버지는 계속 1번 출구 주변만 두리번거렸다. 할아버지 옆에는 8살쯤으로 보이는 꼬마아이도 보였다. 옆에서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빠른 발걸음에 도무지 신경을 집중할 수 없는 듯 보였다.
안되겠다 싶어 할아버지께로 다가갔다.
“저기. 할아버지. 어디 찾으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 고맙네. 한밭교육박물관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되는지 모르겠네.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오늘따라 길을 자꾸 헤매네, 허허”
할아버지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옆에 꼬마 아이는 할아버지 옆에 꼭 붙어서 눈만 깜박일 뿐이었다.
“아, 한밭교육박물관이요? 여기에서 가까워요. 이 근처에요. 여기에서 가셔도 되고, 3번 출구로 나가시면 더 가깝고요.”
“아 그런가? 고맙네, 고마워.”
할아버지는 서양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중후한 노년의 신사 모습이었다. 어쩐지 박물관과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꼬마아이는 할아버지의 손주였을 것이고 주말을 이용해서 아이와 박물관 나들이를 하시려는 듯했다.
한밭이라. 대전에 쭉 살면서도 한밭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참 생소했다. 최근에는 한밭대학교나 한밭수목원, 한밭야구장까지 대전이라는 지명을 한밭이라는 옛 지명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에도 약간의 시대적 이질감이랄까? 그런데 아까 만난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한밭이라는 단어는 참 정감 있었다. 할아버지와 잘 어울린달까?
현영이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친구가 도착했다. 늦어서 미안하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친구는 오늘 약속시간에 늦은 대가로 오늘 현영이 하자는 것에 군말 없이 따른다고 했다. 현영은 잠시 고민하더니 친구에게 뜻밖의 장소에 가자고 했다.
한밭교육박물관이었다. 지금 그곳에 간다면 아까 마주친 할아버지와 꼬마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박물관? 무슨 황금 같은 주말에 박물관이야~ 우리가 무슨 열혈 초등생이니?”
“방금 전에 내가 하자고 하는 거 군말 없이 따른다며! 그리고 원래 배움에는 끝이 없는 거야!”
친구의 팔을 잡아당기다시피 하여 도착한 한밭교육박물관.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많았지만 역 근처처럼 복잡한 느낌은 아니었다. 정돈된 느낌이 가지런해 보이기까지 했다. 한밭이라는 느낌과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꼬마가 있는 그림이 썩 잘 어울리는 곳이기도 했다.
많은 꼬마손님들이 갖가지 민속체험을 하며 하하 호호 웃음소리를 냈다. 전시공간에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책들이 있었다. 현영은 전시를 구경하며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까 만난 할아버지와 꼬마아이를 찾는 중이었다.
‘벌써 가셨나? 아쉽네.’
현영이 관람을 마친 뒤 뒤돌아 나가려는데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할아버지와 꼬마아이 모습이 보였다.
현영은 빙그레 웃었고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바람은 쉽게 그칠 줄 몰랐다. 딸애가 겨우내 입으라고 옷을 사왔다. 남편 것이랑 내 것 두 개다. 나는 받아들자마자 대뜸 ‘어디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딸애는 비싼 거야, 됏수? 이런다. 비싼 거란다. 하기야 어디꺼냐고 묻는 말에 비싼 거라고 돌아온 대답이 썩 틀린 대답도 아니었다. 손주들을 마치 대단한 선물인양 품에 쥐어주고는 이제 틈만 나면 아이들을 맡기고 저들끼리 하하 호호다. 물론 손주 새끼들 안 예쁜 노인네야 없겠지만 저들 하는 짓이 얄미워 그런다.
남편과 나는 일찍이 정년퇴임을 마치고 그야말로 까마득할 줄 알았던 노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조용한 걸음으로 가까운 예배당에 나가 자식들 안녕을 바라고 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일도 없다. 손주들을 봐줄 때면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 과자 사달라고 해도 사주지 말고 꼭 사달라고 떼쓰면 유기농과자 사 먹여라, 비디오테이프 틀어주지 말고 책 읽게 해라, 당근은 잘 안 먹으니 곱게 다져 티 안 나게 먹여라. 별 유난을 다 떤다고 비웃으며 나는 너 그렇게 안 키웠다고 하면 이를 바드득 갈며 그래서 자기가 이런 거라며 대든다. 그러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염색 좀 하란다.
“엄마, 제발 염색 좀 할 수 없어? 진짜 할머니 같애.”
“그럼 내가 할머니지 아가씨게? 그리고 너도 곧 늙어 이것아.”
“누가 나는 안 늙는대? 그러니까 곱게 티 안 나게 최대한 안 늙어 보이게 살라는 거지.”
늙으면 늙는 거지 최대한 안 늙어 보이게 늙는 건 또 뭐람. 그리고 염색약 한 번 사다 준 적 없는 것이 매번 말로만이다.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딸애다. 딸애의 전화를 받으며 무심코 식탁에 놓인 달력을 보니 오늘이 5월 8일이다. 다른 때 같으면 나가서 밥한 끼 먹고 여느 때보다 두둑한 용돈이 담긴 흰 봉투 하나면 끝이더니 이번엔 무슨 일인지 가족야유회를 가잔다. 내가 억새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나. 지나간 말로 흘린 적이 있었는데 김 서방이 잊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침부터 김밥이다 유부초밥이다 바리바리 싸왔는데 딸애 가족은 캐릭터 돗자리에 유기농 과자, 유기농 과일이다. 김 서방은 웃으면서 하나 드셔 보라고 권했지만 딸애의 찌릿한 눈총에 됐다고 했다. 어느새 자기 둥지를 틀어 자기 새끼들만 돌보는 자식들을 볼 때면 언제 저렇게 컸나 싶다가도 젊은이들 상대로 피어오르는 질투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산 정상에 끝없이 펼쳐진 억새가 바람에 따라 한들한들 춤을 춘다. 흰색으로 보였다가도 금세 은빛을 띤다. 부스스 소리를 내며 일렁이는 억새를 보니 벌써 가을인가 싶다. 내 나이도 어느새 가을을 맞이했다.
꼿꼿하던 몸과 마음으로 살았던 2, 30대를 지나 점점 세월이 지나고 보니 스쳐 가는 바람에도 몸을 눕히는 60대가 되어버렸다. 손주가 은빛 억새를 보고 할머니 머리랑 똑같다고 깔깔거린다. 딸애는 거보라며 ‘진작 염색 좀 하지’란다.
난 이렇게 흰 아니 은빛 내 머리가 좋다. 늙는다는 것은 서러운 것도 슬픈 것도 아니니까. 그저 지나온 세월에 대한 정당함이라고 생각하니까. 늙음을 애써 감출 필요 뭐가 있을까. 바람에 흔들리듯 세월에 몸을 맡겨 이리저리 몸을 눕힐 줄 아는 지금의 나이가 좋다. 아무렴 좋다.
문밖에서 부는 바람소리에 촛대의 불이 미묘하게 흔들렸습니다. 달빛이 환하게 현의 방을 비추는 야심한 시각이었지요.
“무릇 양반이라면 돈은 손으로 만지지 말고 쌀값을 직접 물어보아도 안 된다. 아무리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며 밥을 먹을 때에는 국부터 먹어서도 아니 된다.”
다리가 저려오고 눈꺼풀이 점점 감겨왔지만 아버지를 실망시킬 수 없었던 현은 꿋꿋하게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하회마을에서 현의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현의 집안은 대대로 훌륭한 벼슬자리에 오른 유서 깊은 가문이었습니다. 그런 가문의 외아들인 현은 아버지와 가문의 대를 이을 귀한 증손인 것이지요.
아버지께서 침소에 드셨으나 현은 달빛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현은 이러한 양반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들에 대한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대한 답답함과 양반과 상민의 신분차이에 대한 위선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였습니다. 현의 집에서 머슴으로 지내는 만복이가 살금살금 대문으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독 야심한 밤 잦은 외출이 의심스럽던 만복이었습니다. 마음도 심란하고 마침 잠도 쉬이 오지 않던 현은 만복이의 뒤를 쫒기 시작하였지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향하던 만복이의 발걸음이 멈추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일곱 명 정도의 동네 머슴들이 모여 있었고 각자 하나같이 희한한 모양의 탈을 쓰고는 중얼중얼 말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이보게 선비, 나는 사대부 집안의 뼈대 있는 양반이라오.”
“이보게 양반, 나는 오대부 육대부 집안의 뼈대 있는 선비라오.”
가만히 들어보니 양반과 선비들을 비꼬는 식의 놀이마당 인 듯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재미있는 모양의 탈을 쓰고 있었지요.
마을의 머슴들이 모여 하나같이 양반과 파계승, 선비들을 비웃고 비꼬는 내용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본 것에 대한 충격과 거기에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만복이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현은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아까의 탈놀이가 잊히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아득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현은 짙은 어둠이 내려앉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만복이는 어김없이 대문으로 향하고 종종거리는 발걸음을 재촉하였지요. 그 뒤를 조용히 밟던 현은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다다랐고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만복이는 자신들이 양반을 희롱하였다는 사실이 들켜 엄벌을 받을까 두려웠고 무리들도 자신들이 모시는 양반에 알려질까 두려워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현은 뜻밖의 제안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이 무리에 끼워주시오. 탈을 쓰고 놀이를 한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오.”
어리둥절한 무리의 사람들과 만복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현은 단오하게 무리들을 설득하였습니다. 자신이 양반에 대한 위선과 회의감을 털어놓고 이 무리들에게 양반에 대한 허와 실을 말하며 양반인 자신이 직접 탈놀이를 하여 더욱 사실적인 탈놀이가 될 것이라며 끊임없이 설득하고 또 설득하였습니다. 끝내 무리는 현을 받아들이게 되고 현의 얼굴에 맞는 양반탈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매일 무리들과 연습을 하던 현은 본격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몇 회씩 놀이가 거듭될수록 현의 자신감은 날로 늘어나고 놀이판도 더욱 신명나고 재미있어 상민들 사이에 큰 입소문을 타면서 저잣거리의 큰 행사로 자리가 잡혔습니다.
처음에는 장단에 맞추어 어깨춤만 추며 몇 마디 대사로만 이루어졌던 탈놀이가 악기들이 늘어나 더욱 신명나고 대사들은 더욱 신랄해지며 구경꾼들도 함께 참여하는 큰 놀이마당으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놀이판이 점점 커지면서 양반들의 귀에도 하나 둘씩 탈놀이에 대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양반들은 치욕스럽고 화가 치밀었지만 하나둘 씩 그 내용이 궁금하긴 하였습니다. 이로써 양반들은 서로 쉬쉬하며 탈놀이를 보기위해 저잣거리로 나가는 양반들도 생겨나게 되고, 현은 무리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지요. 다른 마을에서도 소문을 듣고 탈놀이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늘게 되고 지금도 양반탈을 쓴 현은 신명나는 놀음 한 판을 벌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방학 끝물, 다음 학기가 마지막인 친구들끼리 모여 특별한 기억을 만드는 계획을 세우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맞는 마지막 방학인 만큼 정말 특별한 계획이 필요했는데, 바다도 계곡도 지겨울 정도로 다녀왔기에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야, 정말 이제 해외로 나가지 않는 이상 할 게 없는데?”
맞는 말이었다. 우리처럼 많이 놀러 다닌 대학생들도 없을 것이다. 전국 각지의 명소란 명소, 축제란 축제는 다 돌아다니는 우리들 네 명에게는 이미 국문과 유랑단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우리의 고민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마땅히 끌리는 곳이 없어서 애를 먹고 있는데 한 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 하나 있다. 우리가 안 해 본 거. 자전거 여행은 한 번도 안 해 봤잖아.”
“자전거 여행? 그건 제대로 가려면 한 일주일 잡고 가야 될 텐데, 우리한테는 이번 주말 밖에 시간이 없잖아.”
게다가 학교 근처에서 모두 자취를 하고 있는 터라 자전거를 소지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자전거라는 말에 다들 귀가 솔깃해졌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의 접이식 자전거 이후로, 자전거를 타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자전거 여행은 제치고서라도, 자전거를 빌려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데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고민한 결과 선택한 곳이 소래습지생태공원이었다. 폐염전과 염전 저수지, 그리고 풍차를 함께 볼 수 있는 자전거길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바로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 대학생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은 행동 개시를 서둘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말은 정말 맑았다. 너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처음에는 중심을 잡기도 힘들어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네 명 모두 신나게 소래길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길이라더니, 볼거리가 많았다.
넓은 들판 위에 빨간 풍차 세 대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을 보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전거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 큰 청년 넷이서 풍차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모습이 우리 스스로도 우스워 한참을 웃었다. 커플 단위로 사진을 찍으러 나온 사람들도 많았고, 체험학습을 나온 것 같은 어린 애들의 모습도 꽤 많이 보였다. 염전에 파란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는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난 사실 여기 걸어서는 몇 번 와 봤는데, 걸을 때랑은 기분이 완전히 다르네.”
“맞아. 보이는 게 완전히 다른데?”
정말이었다. 나도 새내기 때 즈음에 혼자 소래길을 걸으러 나와 본 적이 있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소래길은 또 느낌이 달랐다. 걸을 때에는 꽃 하나, 풀 하나가 다 특별하게 보였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니 그 꽃 하나와 풀 하나가 포함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더 넓게, 더 멀리 볼 수 있게 된 것 같은 기분에 왠지 뿌듯해졌다. 좁은 시선으로 보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넓은 시선으로 보는 풍경도 특별했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다들 말이 없어졌다. 아마 다들 머리가 복잡할 것이다. 사실 어디론가 떠나는 일에 대해 우리의 마음이 급해진 것은, 앞으로 이렇게 추억을 만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압박감 때문일 것이었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데에만 열중하던 우리들이었는데 이제는 어느 새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말은 안 하지만 다들 졸업 후에 무엇을 하며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고, 이미 고시나 토익 준비 때문에 평소에는 집 밖으로 잘 나오지 못하는 친구들도 몇 있었다.
부인교에 걸린 구름 앞에서 우리는 하나같이 멈춰 섰다. 때마침 패러 글라이드 하나가 바람을 타고 미끄러져왔다. 파란 하늘 위에 노란 패러 글라이드가 미끄러지는 모습에 모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문득, 풍차 근처에서 연을 날리고 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들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연에 꿈을 매달게 될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한 마디가 흘러 나왔다.
“딱 오 년 뒤에, 다들 남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고 여기 다시 오자.”
어울리지 않게 웬 진지한 말이냐며 빈축을 샀지만, 친구들 모두 멋쩍게 웃는다.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치고 돌아오는 길,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장갑이며 목도리를 챙기지 않으면 집 밖에 나서기가 꺼려질 정도로 추워졌다. 어느 새 또 겨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걷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손발이 얼었다. 언 손을 비비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늘도 어머니는 일찍 잠들어 계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잠드는 일이 없으셨는데, 요즘 들어 기력이 많이 약해지신 것 같았다.
“저 왔어요, 어머니.”
어머니가 깨시지 않게 나지막한 인사를 건네 보았다. 식탁에는 어김없이 내 몫의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몇 달 전,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었다. 어깨와 허리에 잦은 통증을 느끼시는 것 같은 모습에 모시고 갔던 것인데, 병원에 갔더니 왜 이제 왔느냐는 말을 들었다. 큰 병은 아니나 젊을 때에 고생을 많이 하셔서 일찍 무리가 온 것이라 하셨다.
“저한테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그럼 빨리 병원에 왔을 텐데.”
“나이 들면 여기저기 쑤시고 그런 거지, 뭘 그런 걸 일일이 보고를 하냐.”
어머니의 말에 멍해졌다. 나는 이제야 겨우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어머니는 벌써 노인이 되어가고 계셨던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모습이 싫어 아프다는 말을 속으로 꾹꾹 눌러 담고 계셨을 어머니를 상상하니, 코끝이 짠해져왔다.
여자 친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머니와 보내기로 결심했다. 내일 저와 함께 어디를 좀 가자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당연히 혼자 집에 계실 것을 예상하셨는지 아주 기뻐하셨다.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곳이 어디가 있을까 했더니, 번화가나 케이크는 아무래도 어머니에게 어울리지가 않았다.
고심 끝에 결정한 곳은 정자항. 오랜만에 어머니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 해 드리고 싶기도 했고, 겨울하면 대게였으며, 어머니도 대게를 무척 좋아하시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예요, 크리스마스니까 무엇 하나는 빨간 색이어야 하지 않겠어요?”
내 애교 아닌 애교에, 어머니가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셨다.
휴일이라 그런지 차가 조금 밀렸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가족 단위로 북적이는 정자항에서,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수족관 안에 알이 꽉 찬 대게들이 엉켜있는 것을 보니, 대게 제철인 것이 실감났다. 저희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버둥거리기도 하는 모습이 정말 신선해 보였다. 평소에 자주 먹는 꽃게도 꽃게지만, 제대로 게 먹는 기분을 내려면 역시 대게가 최고다.
이왕에 먹는 거 좀 더 좋은 걸로 먹자 싶어서 박달대게를 선택했고, 젊은 시절에 바닷가에 사셨다는 어머니는 자신 있게 가장 실한 대게를 골라내셨다. 가게 2층이 바로 초장집이라 돌아다닐 필요 없이 바로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어머니가 건너편에 앉은 내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셨다.
“석규야, 기억나니? 너 어렸을 때에도 여길 한 번 왔었단다. 그 때는 네 아버지도 함께 왔었는데, 아버지 손바닥보다도 훨씬 더 큰 대게가 무섭다며 네가 우는 탓에 애를 좀 먹었지. 그랬던 꼬마가 이제는 다 컸구나.”
정말로 신기하다는 듯한 어머니의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 때 나는 혼자서는 게를 먹지 못할 정도로 겁이 많았다. 게를 만지면 날카로운 집게발이 나를 물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어머니는 혼자 나를 키워내느라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다. 식당 일이며, 가정부 , 청소부 일까지. 어머니가 안 해 보신 일을 찾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드디어 우리 앞에 푹 삶아진 대게 세 마리가 나왔다. 종업원이 가위를 들고 대게를 자르려는 것을, 내가 직접 하겠다며 돌려보냈다. 어머니 몫의 앞 접시에 내가 직접 손질한 대게를 한 조각씩 올렸다.
“저도 이제 다 컸으니, 안심하시고 저한테 의지하셔도 돼요.”
대게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구수하고도 포근한 겨울의 냄새가 났다. 어머니는 오래도록 대게에 손을 대지 않고, 가만히 웃고만 계셨다.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계획된 마지막 여행이었다. 여섯 살짜리 딸아이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지 못해서인지 김밥을 싸 가자고 성화였다. 잠이 많아 아침마다 깨워서 유치원에 보내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아이가 나보다도 일찍 일어나 고사리손으로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남편은 아직 자고 있는 것 같았다. 딸아이가 아빠를 깨우겠다며 쪼르르 건넛방으로 달려갔다.
“마지막으로 민주가 가고 싶다고 했던 섬이나 다녀오자. 텔레비전에서 본 이후로 벌써 열 번도 넘게 조른 것 같아.”
나는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을 꾹꾹 참으며 말했다. 사소한 일로 시작된 다툼이 어느새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그게 무엇 때문이었더라, 아마 설거지나 빨래 같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던 것 같다. 각방을 쓰게 된 지도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은 날도 허다했다. 다른 건 다 괜찮았다. 우리 둘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점점 더 소극적인 성격이 되어가는 민주를 두고 보기가 힘들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는지, 먼저 이혼을 제의해 왔다. 이상하게도 그때 내게는 딱히 이혼을 거절할만한 구실도,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다.
섬에 다녀온 뒤에 이혼 서류 같은 것들을 정리하고, 민주에게도 엄마 아빠의 결정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마지막 여행이 될 터였다.
서울에서는 두 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장고항에서 고작 십 분.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섬이라기에 민주가 멀미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장고항에서 섬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국화도. 생각할수록 기억하기도 쉽고 참 예쁜 이름이었다. 고작 여섯 살밖에 안 된 민주도 텔레비전에서 한 번 본 섬 이름을 기억하고 한 달이 넘게 국화섬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을 정도니까 말이다. 국화도는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송이의 국화처럼 작았다. 민주가 옷소매를 잡고 늘어지며 외쳤다.
“엄마, 나 토끼섬!”
토끼섬이 뭔가 했더니 도지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남편이 민주를 안아 올려 목마를 태워 주었다. 민주는 신이 나서 토끼섬, 토끼섬 하고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른다. 국화섬은 세 개의 섬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세 개 중 가운데에 있는 가장 큰 섬을 이르는 말이기도 한다고 했다. 위성을 거느린 행성처럼, 썰물 때에는 도지섬과 매박섬으로 가는 길이 모두 열린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도지섬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아주머니 한 분이 도지섬에 가는 것을 만류하신 것이다.
“지금 가면 안 될 텐데. 지금 밀물이라 들어가면 못 나올 수도 있어요. 잠깐 물놀이하면서 썰물 때까지 기다려 봐요.”
밀물이었다. 민주가 토끼섬 못 가냐며 울먹이다가, 끝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도 나도 당황하여 일단 민주를 달랬다.
“민주야, 아주머니 말씀대로 좀 이따 썰물 때 가면 되잖아. 응?”
민주는 밀물이 싫다며 막무가내였다.
울다 지친 민주를 남편이 안아 재우는 동안 머리를 식힐 겸 산책을 나왔다. 나는 그때야 안내문을 제대로 들여다보았다. 도지섬은 지대가 높아 밀물 때에만 길이 끊기고, 매박섬은 지대가 낮아 썰물에만 길이 열린다고 한다. 남편과 나, 그리고 민주도 밀려오는 파도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한다. 나는 도지섬이 될까, 매박섬이 될까. 나는 왈칵 울음이 쏟아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민주는 국화섬처럼, 도지섬과도 매박섬과도 매번 이별을 되풀이하며 살게 될 것이다.
뒤따라 나온 줄도 몰랐던 남편이 달려와 나를 일으켜주었다. 왜 우느냐고 묻는 남편에게 나는 조금 전의 민주가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보, 밀물이야.”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예쁜 꽃도 금방 시들고 아끼던 보석들도 금세 싫증 나고 마는데. 아니,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마음이 바뀌는 건 한순간이라고들 하는데 과연 세상에 영원한 것은 과연.
모든 것이 변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 옛날부터 사람들은 춤과 노래를 즐겼으며 그곳에는 항상 술이 빠지지 않았다. 술의 신 디오니스소 시대부터.
2차도 모자라 3차까지 가자는 진호를 극구 뜯어말리느라 택시를 잡았다가 보내기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줄지어 서 있는 가로수 나무에 헛구역질을 해대면서도 막무가내다. 연호는 만취한 진호의 모습이 놀랍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그저 말없이 택시에 탑승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딱 한 잔만 더 하자니까. 엉? 딱 한잔만. 아니면 노래방 갈까? 너 우리 집에서 얻어간 포도 생각해봐 짜식. 근데 술 한 잔도 더 못해? 치사한 놈”
연호는 진호의 주사를 더는 들어줄 수 없다는 듯 가까스로 잡은 택시에 구겨 넣듯이 진호를 밀어 넣었다.
진호네는 과수원을 했다. 포도농사. 장마철이면 한 해 농사를 망칠까 가슴을 졸였으며 알이 실하지 않을까 상품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늘 부모님은 사서 걱정을 했다. 진호가 서울에 올라와 직장을 갖기 전까지 부모님을 도와 포도재배를 했다. 어린아이 만지듯 조심히 다루라는 부모님의 말에 조심스럽게 포도를 땄다. 가만히 포도를 본 진호는 포도껍질에 낀 흰 당분을 보고 연호를 떠올렸다. 연호의 혀에 낀 하얀 백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연호는 유난히 진호네 포도를 좋아했다.
원래 포도껍질에 하얗게 낀 것이 맛있거든. 바로 당분이 많이 있다는 증거야. 이런 말을 하는 와중에도 진호는 연호의 혓바닥을 바라보았다. 분홍빛과 보랏빛이 적절히 섞인 혓바닥에 낀 하얀 것을.
몇 시간 전 진호는 문득 연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에 술 한 잔 하자는 것이다. 할 말이 있다고. 퇴근시간의 극심한 러시아워 때문에 연호는 약속장소에 30분 정도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금요일임을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연호가 앉아있는 진호를 발견했을 때 이미 진호는 얼굴이 조금 붉어있었고 이미 술을 마시고 있는 상태였다.
“뭐야, 내가 조금 늦은 사이 혼자 시작한 거야?”
“그러길래 누가 늦게 오래? 약속시간도 안 지키고 말이야. 엉? 내가 클라이언트였다면 넌 꽝이야 인마. 알아? 클라이언트는 삼분도 안 기다려 준다고.”
“그래, 알았어. 근데 웬 와인이야? 너 포도 지긋지긋하다고 와인은 입에도 안 대던 애가?”
“그냥, 나 내려가서 살까 봐. 과수원 일이나 하고.”
“갑자기 왜?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은. 없었어. 그런 거.”
연호를 만나기 두 시간 전. 팀장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진호를 불렀다. 진호네가 과수원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이번 와인열차 기획에 담당으로 진호를 추천할 예정이라고 언지를 주었다. 월말에 인사고과가 있던 차에 팀장의 부름은 진호에게는 틀림없는 기회였다.
“김대리. 내가 자네 팍팍 밀어주고 있는 거 알지? 그래서 말인데…”
진호는 연호가 보고 싶어졌다. 팀장의 혓바닥에서 하얗게 낀 백태를 보아서일까.
“피자, 햄버거, 치킨 이런 거 자극적이고 식욕당기지. 거기에 적당한 알코올까지 더해지면 더 좋고.” 남자는 비꼬듯 이야기한다. 남자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내뱉은 말이었다.
아내는 그렇게 이야기 하지 말라며 노여워했다.
“남의 새끼는 칼로리에 온갖 영양 다 계산해가면서 먹이고 정작 내 새끼는 피자, 햄버거, 자장면 이런 거나 먹이고. 이게 말이되? 어?”
남편은 그동안 꾹꾹 눌러 담은 분노를 아내의 얼굴을 향해 쏟아 붓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간 지나온 일들을 단편적으로 본다면 남편이 던진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여자와 남자는 맞벌이 부부다. 남편은 대학병원 의사로 늘 병원 아니면 서제에 있었고 수술이 있을 때면 특히 더 예민하게 굴었다. 수술이 있고 늘 환자를 대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누구보다 심할 것이라는 걸 아는 아내였기에 아내도 그동안 남편에게 잔소리 한번 심하게 하지 않았다.
아내는 학교에서 아이들 영양식단을 책임지는 영양사로 근무하고 있다. 아내는 누구보다 체계적이고 영양이 가득한 음식플랜을 짰다. 아내가 짠 음식대로 조리되어 나오는 음식들을 학생들은 남김없이 먹었다. 키가 크고 뼈가 튼튼해질 수 있는 친환경 유기농 영양만점 식단이었기에.
끝내 아내는 눈물을 보였다. 남편은 아내가 울고 있는 줄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아내를 달래줄 마음이 당시에는 조금도 들지 않아서 일 것이다.
식탁에는 이미 시킨 지 오래되어 퉁퉁 불어터진 자장면이 놓여있었고 자장면을 사이에 두고 남편과 아내는 식탁의 각각 모서리에서 뾰족한 모서리보다 더 뾰족한 말들을 주고받았다.
몇 달 전부터 학교급식의 안전과 영양실태에 대한 감시가 심해지면서부터 아내는 더욱 꼼꼼하게 영양식단을 짜야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신경을 덜 쓰기 시작했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집에 갈 때 뭐 사갈까? 라고 한 말이 시작이었다. 그러면서 의례적으로 저녁은 할머니한테 먹고 싶은 거 시켜달라고 하라고 말하던 아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전히 아내는 훌쩍였고 자장면 그릇을 가지러 온 배달부의 초인종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남편은 진료일정을 미루고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녀오자고 말했다. 그러니 아내에게도 학교 일정을 조율하라고 말했다. 아내도 알겠다고 수긍했다.
그렇게 떠난 곳은 완주. 완주에 도착하니 와일드 푸드 체험이라는 것이 진행되고 있었다. 모처럼의 여행이라 그런지 아이는 신이 났고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아 끓여 먹어보기도 하고 잠자리채로 곤충들을 채집하고 튀겨먹어 보기도 하며 모처럼 가족 같은 분위기를 냈다.
아내는 아이와 남편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도 좋아졌다. 남편과 아이를 위해 저녁상을 준비했다. 남편이 잡아온 물고기에 소면을 넣어 끓인 철렵국을 만들기로 했다.
‘아!’ 외마디 비명이 차마 목구멍으로 나오지 못하고 턱밑에서 머물렀다. 다행히 뜨거운 뚝배기 그릇을 들고 있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가벼운 국자가 아내의 손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 아내는 얼마 전 손목이 시큰거리며 가끔 끊어질 듯한 고통을 호소하며 정형외과를 찾은 적이 있다. 의사는 직업으로 인해 온 질병으로 진단을 했고 아내는 며칠 째 음식을 하는 것도 무거운 그릇을 드는 것도 벅차했었다.
남자는 떨어진 국자를 집어 들었다. 남자는 순간 의사의 직감이었는지 아내에 대한 마음이었는지 아내의 손목에 이상이 있음을 감지했다.
“왜 그동안 말하지 않았어. 의사 남편 두고도 써먹지도 못하냐, 바보같이.
내일 우리 병원에 와, 다시 검사받자.
그리고 이렇게 무거운 국자는 내게 줘. 철렵국은 내가 끓이는 게 훨씬 맛있다고.”
“이렇게 나오니까 좋다. 공기도 좋고 이곳에서 나는 음식들로 바로 요리하고. 영양이고 식단이고 따로 짤 필요가 없네. 여기 내려와서 살까?” 아내는 웃으며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