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불안하다. 내가 로버트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3년 전. 로버트는 우리 학교의 교환학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인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온 나이기에 괜히 더듬더듬 말을 붙여 본 것이 인연이 깊어졌고, 우리는 어느 새 연인이 되었다.
창밖으로 로버트의 모습이 보였다. 성큼성큼 다가와 내 앞에서 환히 웃는다. 카페 안의 시선이 일순간 모두 나에게로 쏠리며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로버트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로버트 또한 그렇다. 우리 둘만 행복하면 다 괜찮은 거라 생각은 하고 있지만, 평생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나는 불안하다.
우리 둘은 아직 한 번도 다퉈 본 일이 없었다. 성격이 잘 맞아서이기도 하지만, 로버트가 상상 이상으로 나를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남들의 시선이다. 영국 남자와의 연애에서 결혼생활까지를 그리고 있는 웹툰이 큰 인기를 끈 이후로 젊은 사람들의 시선은 눈에 띄게 부드러워 졌지만, 우리가 손을 잡고 길을 걸을 때면 어르신들이 눈을 흘기며 혀를 차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오랜만에 보는 정장 입은 모습이 낯설었다. 오늘 저녁에 로버트는 처음으로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2년 넘게 사귀어 온 남자친구를 소개하겠노라 선언하고 집을 나왔는데, 그 남자친구가 미국인이라는 것은 아직 말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혹시 거리의 사람들처럼, 우리들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으실까.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내 선택에 불만이 없다. 행복하게 살 자신도 있다. 로버트는 나와 결혼 한 후에도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말했으므로, 지금 내 생활에서 많은 것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아이가 이런 시선을 견딜 수 있을까. 내가 눈 앞의 행복 때문에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테이블에 놓인 커피에는 입도 대지 않고 입술만 물어뜯고 있자, 불안한 마음을 눈치 챈 듯 로버트가 내 손을 잡았다.
“걱정, 안 돼.”
‘그럼, 안 되지. 우리 둘은 잘 헤쳐가 갈 수 있을 거야.’하고 나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다.
“점심으로는 뭐가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로버트가 좋은 생각이 났단다. 그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부대찌개 집이었다. 정장을 입고 부대찌개를 파는 식당에 올 줄은 몰랐는데, 로버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기세 좋게 이모를 부르며 부대찌개 2인분을 시킨다.
아직 한국어가 서툴지만, 그는 어디에 가서도 기가 죽지 않는다. 자라온 환경의 차이 탓일까. 나도 내향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걱정이란 게 없어 보이는 로버트를 보면 부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찌개가 끓자 로버트가 내 앞의 접시를 가져가 찌개를 덜어 주었다. 그런데 내 몫의 접시에는 햄만 가득 담겨 있었다. 건너다보니 로버트의 접시에는 김치만 담겨 있다. 의아한 내 표정을 본 로버트가 웃었다.
“혜연은 햄을 좋아하고, 나는 김치를 좋아해. 그래서 나는 부대찌개가 맛있어.”
문득 한국 전쟁 이후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부대에서 나온 햄을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고추장이나 김치 등의 재료를 넣어 끓인 것이 부대찌개라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버트는 마냥 즐거워 보였다.
처음에는 김치는 물론이고 라면도 잘 먹지 못하던 로버트인데, 매일같이 나와 함께 있다 보니 어느 새 김치 국물에 밥도 비벼 먹을 정도로 매운 맛에 익숙해졌다. 김치에 파를 얹어 먹는 모양새가 이제는 제법 한국인 같기도 했다.
“맛있을 거야, 앞으로도.”
문밖에서 부는 바람소리에 촛대의 불이 미묘하게 흔들렸습니다. 달빛이 환하게 현의 방을 비추는 야심한 시각이었지요.
“무릇 양반이라면 돈은 손으로 만지지 말고 쌀값을 직접 물어보아도 안 된다. 아무리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며 밥을 먹을 때에는 국부터 먹어서도 아니 된다.”
다리가 저려오고 눈꺼풀이 점점 감겨왔지만 아버지를 실망시킬 수 없었던 현은 꿋꿋하게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하회마을에서 현의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현의 집안은 대대로 훌륭한 벼슬자리에 오른 유서 깊은 가문이었습니다. 그런 가문의 외아들인 현은 아버지와 가문의 대를 이을 귀한 증손인 것이지요.
아버지께서 침소에 드셨으나 현은 달빛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현은 이러한 양반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들에 대한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대한 답답함과 양반과 상민의 신분차이에 대한 위선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였습니다. 현의 집에서 머슴으로 지내는 만복이가 살금살금 대문으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독 야심한 밤 잦은 외출이 의심스럽던 만복이었습니다. 마음도 심란하고 마침 잠도 쉬이 오지 않던 현은 만복이의 뒤를 쫒기 시작하였지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향하던 만복이의 발걸음이 멈추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일곱 명 정도의 동네 머슴들이 모여 있었고 각자 하나같이 희한한 모양의 탈을 쓰고는 중얼중얼 말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이보게 선비, 나는 사대부 집안의 뼈대 있는 양반이라오.”
“이보게 양반, 나는 오대부 육대부 집안의 뼈대 있는 선비라오.”
가만히 들어보니 양반과 선비들을 비꼬는 식의 놀이마당 인 듯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재미있는 모양의 탈을 쓰고 있었지요.
마을의 머슴들이 모여 하나같이 양반과 파계승, 선비들을 비웃고 비꼬는 내용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본 것에 대한 충격과 거기에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만복이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현은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아까의 탈놀이가 잊히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아득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현은 짙은 어둠이 내려앉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만복이는 어김없이 대문으로 향하고 종종거리는 발걸음을 재촉하였지요. 그 뒤를 조용히 밟던 현은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다다랐고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만복이는 자신들이 양반을 희롱하였다는 사실이 들켜 엄벌을 받을까 두려웠고 무리들도 자신들이 모시는 양반에 알려질까 두려워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현은 뜻밖의 제안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이 무리에 끼워주시오. 탈을 쓰고 놀이를 한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오.”
어리둥절한 무리의 사람들과 만복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현은 단오하게 무리들을 설득하였습니다. 자신이 양반에 대한 위선과 회의감을 털어놓고 이 무리들에게 양반에 대한 허와 실을 말하며 양반인 자신이 직접 탈놀이를 하여 더욱 사실적인 탈놀이가 될 것이라며 끊임없이 설득하고 또 설득하였습니다. 끝내 무리는 현을 받아들이게 되고 현의 얼굴에 맞는 양반탈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매일 무리들과 연습을 하던 현은 본격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몇 회씩 놀이가 거듭될수록 현의 자신감은 날로 늘어나고 놀이판도 더욱 신명나고 재미있어 상민들 사이에 큰 입소문을 타면서 저잣거리의 큰 행사로 자리가 잡혔습니다.
처음에는 장단에 맞추어 어깨춤만 추며 몇 마디 대사로만 이루어졌던 탈놀이가 악기들이 늘어나 더욱 신명나고 대사들은 더욱 신랄해지며 구경꾼들도 함께 참여하는 큰 놀이마당으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놀이판이 점점 커지면서 양반들의 귀에도 하나 둘씩 탈놀이에 대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양반들은 치욕스럽고 화가 치밀었지만 하나둘 씩 그 내용이 궁금하긴 하였습니다. 이로써 양반들은 서로 쉬쉬하며 탈놀이를 보기위해 저잣거리로 나가는 양반들도 생겨나게 되고, 현은 무리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지요. 다른 마을에서도 소문을 듣고 탈놀이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늘게 되고 지금도 양반탈을 쓴 현은 신명나는 놀음 한 판을 벌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느새 많이도 늙었다. 세월을 고스란히 견뎌온 자랑스러운 훈장들이 얼굴과 목 그리고 손 마디마디에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쌔액쌔액 숨소리를 내쉬며 늙어버린 주름처럼 꼬깃꼬깃한 옷가지를 가지런히 개고 있는 아내가 있다. 러닝셔츠와 사각팬티는 왜 함께 늙어버린걸까. 매번 아내가, 자식들이 새로 사다주는데 빨래를 개고 있는 아내를 바라볼 때면 빨랫감들이 항상 저렇게 볼품없이 축 늘어져있다.
“늙었네. 젊다고 으스대고 다닌 게 엊그제 같은데.”
“늙은 거 이제 알았어요? 아이고, 난 진즉에 알았는데. 영감도 참. 꿈도 야무지셔.”
“당신은 여전히 고와. 여전히 예쁘다고.”
“아이고, 영감이 오늘 왜이래? 무슨 바람이 들어서? 호호”
말은 저렇게 해도 빙그레 웃는다. 아내는 웃는 모습이 예쁘다. 눈이 반달모양으로 지어지며 눈가에 주름이 지어진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아내는 여전히 반달모양의 눈으로 나를 보며 웃는다.
내일 모레가 아내 생일이다. 아들이란 놈은 근사한 곳에서 밥을 먹이고 밥값을 계산하는 걸로 생일 선물을 대신할 테고 딸내미는 양 팔에 손주새끼들 품고 와 아들내미가 내는 밥을 내는 얻어먹고는 흰 돈 봉투를 건네며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이행할 것이다.
아내가 좋아하던 것이 무엇이 있었나 생각하니 번뜩하고 떠오르는 것이 없다. 무엇이 좋을까? 가지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어보려다 만다. 물어보아도 분명 돈으로 주라고 늙어빠진 소리를 할 것이다. 힌트를 좀 얻고자 딸내미에게 전화를 건다.
“나다. 내일 모레 네 엄마 생일인거 알지?”
“어, 아부지. 빨리 이야기 해. 지금 민성이 학원 데려다 주러 가야해.”
“네 엄마 생일 선물 말인데. 뭐가 좋겠냐?”
“선물? 무슨 선물? 엄마 선물? 다 늙어서 무슨 선물이래? 우리 아부지 로맨티스트였네?”
이것이 늙은이들은 뭐 감정도 없는 줄 아나보다.
“됐고. 여자들이 뭐 가지고 싶은지나 말해봐.”
“음. 아무래도 화장품이나 보석 아니겠어? 늙어도 여자는 여자라고 하는 거 몰라?”
“알았어. 끊어. 내일 모레 늦지 않게 와.”
늙어도 여자는 여자라고? 하기야 아내는 늘 얼굴에 여러 가지 화장품을 발랐다. 스킨, 로션까지는 알아들어도 당최 그 다음부터는 말해줘도 모르겠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화장품이 좋을까.
시내로 나오니 젊은이들의 혈기가 왕성하다. 번쩍이는 불빛에 소란스런 스피커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들이 귀를 왕왕거리게 했다. 둘러보니 이곳저곳 죄다 젊은이들이 좋아할만한 것들뿐이다. 한 참을 화장품 가게 앞에 서성이니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던 여자가 할머님 드릴 선물 고르냐며 내 팔을 끌어당겨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천천히 골라보라며 상큼한 미소를 남긴 여자는 다시 밖으로 나가더니 마이크에 대고 사람들을 불러보았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이것저것 화장품들이 많았다. 도대체 뭐가 이렇게 많은지. 이것저것 둘러보는데 사장처럼 보이는 여자가 말을 걸었다.
“사모님드릴 선물 고르시나봐요?”
“예. 허허 그런데 이거 뭐 봐도 모르겠네요.”
“이쪽으로 오시면 주름개선 그리고 피부미백에 좋은 제품들 많거든요? 한번 보세요. 이 제품은 저희 가게에서 가장 잘 파리는 제품인데요, 한 번 써보신 분들은 다시 쓰는 경우가 많아요.”
“음. 그래요? 잘 모르겠네요.”
“아, 그러시면. 이 제품 어떠세요? 머드로 만든 제품인데요. 이것도 인기가 좋아요. 부드러운 느낌이 강하고 촉촉해서 어머님들도 굉장히 좋아하시고요.”
머드라. 언젠가 아내가 얼굴에 희뿌연 것을 바른 기억이 난다. 아내는 팩이라고 했고 부드러운 것이 하고나면 촉촉해 진다고 했다.
아내에게 줄 선물이 손에 들려있다. 선물을 받을 아내를 떠올린다. 분명 뭐 하러 이런데 돈 쓰냐고 하겠지만 반달모양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어줄 것이다. 아내에게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검은 그림자가 걷히고 난 그 어느 날부턴가 조용하던 마을이 시끌시끌한 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어요. 그것은 다름 아닌 태안에 해수욕장들끼리 서로 자기가 더 멋있는 해수욕장이라며 싸우는 소리였지요. 해수욕장들끼리 싸우는 소리에 할미바위가 귀를 틀어막으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머리야.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고.”
그 중 유일하게 싸움에 끼지 않은 해수욕장이 바로 할미바위와 할아비 바위가 있는 꽃지 해수욕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해수욕장들은 꽃지 해수욕장에 있는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를 찾아가 누가 가장 멋있는 해수욕장인지 판결을 내 달라고 물으러 갔습니다.
그중 가장먼저 만리포 해수욕장이 어깨에 힘을 잔득 주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할미바위, 할아비바위님! 태안에서 제일가는 해수욕장이라면 당연히 제가 아니겠어요? 저는 서해안에서 제일 멋있기로 3위 안에 꼽힌다고요! 그뿐인 줄 아세요? 사람들이 저를 찾으면 똑딱선 기적소리~ 만리포라 내 사랑. 이렇게 노래까지 흥얼거린다니까요!”
그러자 몽산포 해수욕장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습니다.
“허, 저는 아주 울창한 송림을 가지고 있어요. 몽산포 송림은 국내 최강으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당연히 제가 제일 으뜸이죠. 게다가 나를 찾는 사람들은 맛조개를 잡는 재미까지 있다고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안 그래요?”
머리를 꽁꽁 싸매고 있던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도 판결을 내기가 어려워 해수욕장들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러자 해수욕장들은 자신이 더 멋진 해수욕장이라는 것을 뽐내기 위해 사람들을 더 오래 머물게 하기위해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와 오물들을 눈감아 주었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쓰레기와 오물들로 가득해져버렸습니다. 보다 못한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는 해수욕장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옛날 어느 날이었어. 평화롭던 마을에 갑자기 큰소리로 뻥!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리 마을 앞바다가 온통 검은 그림자로 드리워졌지. 그러더니 끈적끈적하고 검은 기름때가 우리 마을 온 바다를 뒤덮기 시작했어. 숨도 쉬기 힘들 지경이었지. 기름때는 순식간에 깨끗했던 바다를 뒤덮고 바위와 돌, 그리고 바다 새들까지도 뒤덮었지.”
딴청을 하며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해수욕장들은 하나 둘 씩 점점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맑던 바다는 검은 바다로 변했고 물고기와 오리들은 떼죽음을 당했지. 바다에서 조개를 캐고 물고기를 잡아 생활하던 어민들도 한순간에 생활이 막막해진 거야. 이제 태안은 돌이킬 수 없는 버려지는 곳이라고 생각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어.”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을 줄 알았던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 그리고는 하얀 천을 들고 바다와 갯벌, 바위틈을 천천히 닦아내기 시작했지. 그렇게 모이고 모이던 사람들의 손이 닿는 곳이 다시 밝은 빛으로 변하더니 조금씩 검은 그림자들이 걷히기 시작했단다.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아름답게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건 다 우리를 위해 하나 둘씩 모은 마음들 덕분이겠지.”
해수욕장들은 그제야 서로 싸우던 자신들과 쓰레기로 더렵혀진 자신들을 부끄러워하며 이렇게 해수욕장들과 깨끗한 바다로 둘러싸인 마을을 자랑스러워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태안의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보답하고자 더 아름다운 절경을 선물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입맛이 어쩜 이렇게 토속적이야?
남자친구와 함께 밥을 먹어본 사람들이면 의례적으로 이런 말 한마디씩 꼭 한다. 하긴 금발의 외국인이 청국장, 김치찌개, 불고기 백반을 즐겨먹으니 그럴 만 했다.
그런 것이 외국인에게 갖는 첫 번째 편견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외국인이라고 다 햄버거나 빵을 좋아할 것이다 라는 편견. 남자친구는 처음에 토속적이라는 뜻을 몰라 물은 적이 있다. 한국적이고 좋다는 거라고 이야기 해주니 대번 웃으며 나는 토속적이에요 한다.
남자친구를 처음 만난 곳은 이태원의 한 음식점에서였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것인데 외국인과의 소개팅이라고 해서 나는 일부러 이태원에서 보자고 한 것이다. 일종의 외국인을 위한 내국인의 배려랄까. 처음 본 남자친구의 첫인상은 단정한 금발머리에 피부가 하얀 유럽풍 사람이었다. 평소 영어는 스펙을 쌓으며 만들어진 회화정도였기에 처음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고민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처음 보자마자 안녕하세요? 라고 정중히 인사를 하는 그의 모습에 네에. 라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맛도 예상하기 힘든 그리스식 샐러드와 파스타를 주문했다. 그도 평범한 파스타에 쁘띠 피자를 시켰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한국음식 중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외국인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니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내 입에서 삼겹살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였다. 삼겹살이 뭐 어떠냐고 생각하겠지만 처음만난 소개팅자리에 그것도 외국인 앞에서 비빔밥이나 김치볶음밥이 아닌 삼겹살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남자친구는 반가워하며 자기도 삼겹살 좋아한다며 ‘삼겹살 좋아! 삼겹살 좋아!’라며 서툰 한국말을 했다. 거기에 ‘소주 한잔까지!’를 빼먹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외국인인지 내가 외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우리는 어색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었다.
남자친구는 친구들을 만나러 이태원을 자주 가는 편이었다. 나는 이태원이 조금 무섭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마 낯선 사람들과 낯선 문화가 혼동되어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남자친구에게 한 적이 있는데 남자친구는 꽤 현명한 답을 했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문화가 있어서 무섭다고? 왜?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서울 전체가 다 낯선 사람들뿐이고 낯선 문화인데? 난 하나도 무섭지 않아! 오히려 즐거운 걸.”
정답이다. 조금 다르게 생기고 조금은 낯선 문화라고 겁부터 내는 내가 참 바보 같았다.
나는 이태원에서 프랑스식 요리나 커리, 케밥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 했다. 남자친구는 나를 많이 배려했고 이태원 맛집 지도라며 귀엽게 그림을 그려 온 적도 있다.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저 멀리 한 카페에서 남자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뭐 하고 있었어?”
“응, 오늘 파티가 있다고 해서 재미있는 옷들 좀 같이 구경하려고.”
“파티? 우와 재미있겠다. 할로윈 같은 건가?”
역시 외국문화 집결지답게 각 나라의 전통의상이나 만화 캐릭터들의 의상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남자친구의 나라 스위스의 전통의상을 골랐다. 남자친구는 알프스 소녀처럼 귀엽다고 했다.
의상과 액세서리를 치장하고 간 파티자리엔 역시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였다. 세계 갖가지 맛있는 음식들이 놓여있었고 술도 종류별로 있었다. 언어와 생김새가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였지만 이질감이나 거리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배려하면서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고 궁금증도 많아졌다.
이태원, 역시 자유로움 속에 정돈된 질서가 숨어있는 곳이다.
희뿌연 듯 하면서도 선명하고 어질러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깨끗한 곳. 언제나 또 언제나 새로운 곳, 그곳은 이태원이다.
이태원 프리덤!
또 한숨이다.
“내가 몇 번을 말해! 양말 거꾸로 벗어 놓지 말고, 한 번 입은 옷은 옷장에 넣어두지 말라고 한 말 또 까먹었어요?”
“그래. 그러니까 당신이 하라고 당신이.”
“내가 언제까지 당신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어야 되는데. 당신 정말 나 없어도 이럴 거냐고요!”
아내는 눈물 섞인 소리를 내뱉었다.
“없긴 누가 없다 그래. 그런 쓸데없는 소리 마.”
아내에 비해 꽤 담담한 어투다. 남자의 목과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으나 아내가 눈치 채기엔 남자의 말투가 너무 무심했다.
남자의 사전엔 책임감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학교에서도 반장은커녕 기준도 제대로 외치지 못하던 남자였다. 심지어 그는 나라와 국민들의 안위조차 자신의 가녀린 두 어깨에 짊어지는 것이 무거워 군대도 가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도 아내와 노모가 있다. 말하자면 그는 가장인 셈이었다. 부양해야할 가족. 남자가 생각하는 그 책임감이라는 것이 남자의 어깨에 잔뜩 얹혀 있는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나쁜 남편이었다. 아내가 아프기 전까지. 도무지 한 회사에 정착해서 다닐 생각도 못하던 남자를 아내는 조금도 채근하지 않았다. 그런 아내에게 남들은 저러다 화병에 걸려 제명에 못 죽을 거라고 했다. 말이 씨가 됐을까. 아내는 화병은 아니었지만 의사에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죄가 있다면 무책임한 남편을 방관한 죄일 것이다.
아내는 병원에 다녀온 뒤부터 남편에게 평소에 하지 않던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아마 자기 없이 남편 혼자 스스로 살아가는 삶을 익혀두게 할 작정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신경질을 부렸고 심지어는 아내의 짐을 싸 내보내려고 아내의 서랍을 뒤졌다. 그러다 발견한 약봉지와 진단서. 남자는 그날로 집을 나갔다.
남자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남자가 집을 나간 후로부터 보름쯤 지난 후였다. 남자는 그저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을 할뿐 다른 말이 없었다.
남자는 전국 방방곡곡 아내의 병에 좋다는 약을 수소문하며 찾아 다녔다. 전국에 유명한 의원들을 찾아가 아내의 진단서를 보여주며 고칠 수 있겠냐고 따져 묻듯이 소리를 지르기도 벌써 보름하고도 닷새가 넘어섰다.
남자는 중얼거리듯 조금만 기다려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남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착한 곳은 산청. 남자는 어렴풋이 산청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아내가 드라마를 볼 때였나 그럴 것이다.
남자는 몸에 좋다는 약초들을 찾아다니느라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남자는 간만에 어느 선술집 자그마한 방에 몸을 뉘었다.
숨을 쉴 때마다 앙상한 갈비뼈 윤곽이 드러났다 사라지곤 했다. 아내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 본적이 있을까. 그동안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생각했다.
피곤한 몸이라 금세 잠이올 줄 알았는데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문득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뚜르르, 한참을 신호가 흐르고 딸깍 소리가 났다.
“여보세요.”
“나야. 별 일없지?”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 없으니까 편하지 뭐, 안 그래? 양말 뒤집어 놓는 사람도 없고.”
“당신도 참. 그나저나 어디서 뭐 하고 다니는 거예요?”
“내일 올라가. 그 때까지만 기다려. 꼭.”
남자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어디 아프지는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럼 아내와 자신 모두가 말을 잇지 못할 것 같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내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소와 다름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아내혼자 이별을 준비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왜 내게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으나 남자는 여전히 무심한 어조로 기다리라는 말뿐이다.
통화를 하는 남자의 손에는 아내에게 가져다 줄 한 아름의 약초와 한약재가 쥐어져있었다.
아내와 이혼 한 뒤에도 별 탈 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외국에 나가서 살고 있는 딸은 몇 년 전에 오붓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결혼식장에서 딸의 손을 잡아주지는 못했지만, 딸과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내기는 했다. 딸에게도 이제는 귀여운 딸이 생겼다. 아내와 이혼한 이후로 자주 만나지 못해서일까, 딸도 이제는 삼십 대 중반이 되었지만 내게는 여전히 아이가 아이를 낳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나이 들어 한 가지 취미가 생겼다. 바로 철새들을 사진에 담는 것이었는데,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많이 새들을 담고 싶은 마음에 딸이 결혼한 바로 그 해에는 낙동강 하류로 이사까지 왔다. 사실은 이사를 결정했을 때, 아내가 지금 이 곳에 살고 있다고 들은 것을 조금 염두에 두기도 했었다.
“왜? 왜, 할아버지. 한국, 눈 오는 나라!”
“민주야, 거 가만히 있지만 말고 유리한테 여기 따뜻해서 눈 안 온다고 영어로 설명 좀 해 줘 봐봐.”
나는 매년 설날만 되면 난감한 상황에 처하곤 했었다. 손녀가 태어난 이후로 딸은 일 년에 한 번, 설에만 내 집에 다녀가곤 했는데, 겨울이 없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나고 자란 손녀딸은 부산에서 항상 눈을 찾는 것이었다. 여섯 살 배기 손녀딸은 부산에서는 좀처럼 눈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눌한 한국어로 매년 눈을 보여 달라 보채다가 종국에는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한층 더 난감한 상황이 찾아왔다. 딸이 돌연 유리만 내게 맡기고는, 제 남편이랑 아내의 집에 다녀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손녀가 잠든 사이, 딸과 사위가 슬그머니 집을 나섰다. 유리는 역시나 일어나자마자 눈을 찾기 시작했고, 나는 유리의 손을 잡고 딸이 사전에 일러 준 장소로 향했다.
유리가 신이 나서 하도 뛰어 다니는 통에 나는 혹여 유리를 놓칠까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부산시민이 된지도 어느 새 칠 년 차인데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다. 내가 종종 철새 사진을 찍으러 오던 생태공원에 부산에 단 하나 뿐인 눈썰매장이 열린 것이다.
눈썰매장은 눈을 찾으러 나온 아이들로 가득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 눈에 봐도 예쁘장한 혼혈아인 유리를 보고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는데, 나는 손녀 애의 보호자인 것이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일 년에 꼭 한 번 밖에 못 보는 아이인지라 손녀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고, 무엇보다 철새처럼 아이도 곧 제 부모를 따라 내 손을 떠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손녀와의 첫 외출인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할아버지! 여기!”
슬로프를 미끄러져 내려오며 손녀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이는 신이 난 모양이었지만, 할아버지 되는 입장에서는 불안하기만 하다. 나는 손녀가 넘어질세라 얼른 썰매가 오는 쪽으로 달려가 손녀를 받아 안았다.
그런데 손녀 쪽으로 달려오다가 발걸음을 멈추는 한 사람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그 곳에는 이십 여 년 동안 자글자글하게 주름이 져 버린 아내가 서 있었다.
사위는 떠나기 전에 내 손에 먼 타국의 이름이 적힌 비행기 티켓 두 장을 건네주었다. 그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황망한 표정으로 서 있으려니, 딸애가 다가와 티켓을 쥔 내 손을 잡으며 가만히 말을 걸어 왔다.
“아빠, 있잖아. 옛날에 엄마는, 한 번쯤은 아빠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고 집에 찾아 와 주기를 바라고 있었어. 아빠가 돌아와야 할 곳이 언제나 우리 집으로 정해져 있었으면 했었어.”
그 날, 아내는 딸과 사위를 따라 왔던 자리에서 나를 마주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던지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나는 인파를 헤치고 있는 그 뒷모습에서 미움이나 경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설렘이나 사랑은 더더욱 아닌 미묘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내게도 그렇듯이 아내에게도 아쉬움이 깊게 남았으리라. 제가 사는 낙동강 하류에 어느 새 나도 흘러들어 있던 것을, 아내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계획된 마지막 여행이었다. 여섯 살짜리 딸아이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지 못해서인지 김밥을 싸 가자고 성화였다. 잠이 많아 아침마다 깨워서 유치원에 보내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아이가 나보다도 일찍 일어나 고사리손으로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남편은 아직 자고 있는 것 같았다. 딸아이가 아빠를 깨우겠다며 쪼르르 건넛방으로 달려갔다.
“마지막으로 민주가 가고 싶다고 했던 섬이나 다녀오자. 텔레비전에서 본 이후로 벌써 열 번도 넘게 조른 것 같아.”
나는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을 꾹꾹 참으며 말했다. 사소한 일로 시작된 다툼이 어느새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그게 무엇 때문이었더라, 아마 설거지나 빨래 같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던 것 같다. 각방을 쓰게 된 지도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은 날도 허다했다. 다른 건 다 괜찮았다. 우리 둘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점점 더 소극적인 성격이 되어가는 민주를 두고 보기가 힘들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는지, 먼저 이혼을 제의해 왔다. 이상하게도 그때 내게는 딱히 이혼을 거절할만한 구실도,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다.
섬에 다녀온 뒤에 이혼 서류 같은 것들을 정리하고, 민주에게도 엄마 아빠의 결정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마지막 여행이 될 터였다.
서울에서는 두 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장고항에서 고작 십 분.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섬이라기에 민주가 멀미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장고항에서 섬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국화도. 생각할수록 기억하기도 쉽고 참 예쁜 이름이었다. 고작 여섯 살밖에 안 된 민주도 텔레비전에서 한 번 본 섬 이름을 기억하고 한 달이 넘게 국화섬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을 정도니까 말이다. 국화도는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송이의 국화처럼 작았다. 민주가 옷소매를 잡고 늘어지며 외쳤다.
“엄마, 나 토끼섬!”
토끼섬이 뭔가 했더니 도지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남편이 민주를 안아 올려 목마를 태워 주었다. 민주는 신이 나서 토끼섬, 토끼섬 하고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른다. 국화섬은 세 개의 섬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세 개 중 가운데에 있는 가장 큰 섬을 이르는 말이기도 한다고 했다. 위성을 거느린 행성처럼, 썰물 때에는 도지섬과 매박섬으로 가는 길이 모두 열린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도지섬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아주머니 한 분이 도지섬에 가는 것을 만류하신 것이다.
“지금 가면 안 될 텐데. 지금 밀물이라 들어가면 못 나올 수도 있어요. 잠깐 물놀이하면서 썰물 때까지 기다려 봐요.”
밀물이었다. 민주가 토끼섬 못 가냐며 울먹이다가, 끝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도 나도 당황하여 일단 민주를 달랬다.
“민주야, 아주머니 말씀대로 좀 이따 썰물 때 가면 되잖아. 응?”
민주는 밀물이 싫다며 막무가내였다.
울다 지친 민주를 남편이 안아 재우는 동안 머리를 식힐 겸 산책을 나왔다. 나는 그때야 안내문을 제대로 들여다보았다. 도지섬은 지대가 높아 밀물 때에만 길이 끊기고, 매박섬은 지대가 낮아 썰물에만 길이 열린다고 한다. 남편과 나, 그리고 민주도 밀려오는 파도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한다. 나는 도지섬이 될까, 매박섬이 될까. 나는 왈칵 울음이 쏟아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민주는 국화섬처럼, 도지섬과도 매박섬과도 매번 이별을 되풀이하며 살게 될 것이다.
뒤따라 나온 줄도 몰랐던 남편이 달려와 나를 일으켜주었다. 왜 우느냐고 묻는 남편에게 나는 조금 전의 민주가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보, 밀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