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경기 남양주시 한 눈에 다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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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별미
남양주를 대표하는 두 맛, 연잎 쌈밥과 장어구이
남양주 남한강 일대에는 연잎을 재료로 하는 맛집이 즐비하다. 연은 예로부터 식용으로 많이 애용되었으며, 잎과 줄기, 뿌리, 씨 등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식재료로 건강식으로 손꼽힌다. 특히 피를 맑게 하는 효능이 있는 연잎의 은은한 향기는 정신마저 맑게 해준다. 그리고 남양주의 연잎 쌈밥 맛집 주변에 국내산 손 두부와 보리밥 식당이 즐비해 있어 선택의 폭을 다양하게 넓혀준다. 또한 겨울 산세가 아름다운 운길산 주변으로는 두툼한 남양주 장어 맛집이 포진되어 등산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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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탐사
정약용의 모든 것, 남양주 다산유적지
오늘날 사회를 아우르는 주된 키워드가 힐링, 소통, 공감이 된 까닭을 헤아려보자면, 무엇보다도 그것이 실현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생활은 편리하고 개개인은 자유로운데, 삶은 점점 팍팍해져만 간다. 이같이 사소한 듯 또 사소하지만은 않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두고 종종 선조들의 지혜를 본받기 위해 과거로 눈을 돌리는 것을 보곤 한다. 그 가운데 자주 회자되는 한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다. 거추장스러운 담장을 허물고 백성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하고자 했던 실용의 아버지. 남양주에 마련된 다산의 유적지라면 복잡한 세상에서 잠시 여유를 누리기에도 알맞을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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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명물
하늘을 만질 수 있는 겨울 천마산(天摩山)
태조 이성계가 손이 석자만 더 높았으면 하늘을 만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여 유래된 천마산은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과 진접읍 경계에 있는 높이 812m의 산세가 험한 산이다. 서울 근교 레저시설로 스키어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지만, 등산객들에게는 사계절동안 신록, 녹음, 단풍 그리고 설경을 주는 더없이 매력적인 산행지로 팔방미인의 산이다. 특히 겨울의 천마산은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이 사방에 뻗어있어 어느 곳에서도 정상을 볼 수 있는 특이한 산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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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문화
마음 힐링길, 남양주 물의정원
지자요수요 인자요산(知者樂水仁者樂山)이란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북한강 변 둔치에 드넓게 펼쳐져 있는 물의 정원은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 앞으로 흐르는 북한강을 따라 자전거 길과 산책길이 함께 조성되었으며 넓은 잔디밭을 비롯해 습지, 갈대밭, 나무가 어우러져 멋스러운 풍광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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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이 사랑한 아름다운 절, 수종사
남양주시 조안면에 솟아 있는 산, 운길산. 이 산이 남양주 사람들은 물론, 전국의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비단 이 산이 가벼운 산행을 하기에 적합한 산이기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운길산은 산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보물을 품고 있다. 왕의 사랑을 듬뿍 받기까지 했다던 특별한 사찰, 수종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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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명물
스키장의 기본을 갖춘 곳, 스타힐리조트
새하얀 설원에서의 질주를 기대하며 차를 타고 이동한다. 얼마 후 도착한 경기 남양주시의 어느 한적한 곳. 두 개의 벽돌 기둥 사이를 지나게 되는 것이 마치 학교 교문에 들어서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문에는 ‘스타힐리조트’라고 쓰여 있다. 서울에서 약 32km 거리에 있어 수도권 거주자라면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곳. 방문하는 이마다 겨울여행의 진한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는 곳. 바로 스타힐리조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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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나무와 야생화 가득, ‘가까운’ 숲속에 묵어가다 - 축령산자연휴양림
축령산에 대한 이야기는 멀리멀리, 조선 왕조가 시작되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조 이성계가 신하들과 함께 이 산으로 사냥을 나왔었는데, 사냥감이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아 의아해했었다고 한다. 이에 몰이꾼이 ‘이 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산신제를 지내야 한다’는 말을 전하였는데, 정상에서 제를 지냈더니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잡혔더라는 것이다. [트래블투데이]를 익히 접해 온 트래블피플이라면 여기에서 두 가지 사실을 추론할 수 있을 것. 첫째, 이 산의 이름인 축령이 빌 축(祝)에 신령 령(靈)자를 쓴다는 사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산이 한양에서 쉬이 사냥을 나올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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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명물
여러모로 고마운 다리, 팔당대교
1960년대에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했다. 단순한 수공업품의 수출에서 시작하여 전자제품의 부품을 조립하여 팔았다. 나중에는 완전한 첨단제품을 생산하는 수준까지 도달하여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출 강국으로 성장했다. 100년도 채 걸리지 않는 경제발전에 대해 학자들은 서독의 경제발전을 지칭하는 ‘라인 강의 기적’에 빗대어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한강과 같이 흘러왔다 하더라고 빈말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는 한강을 건너 출퇴근을 하거나 이동을 한다. 트래블피플은 한강에 다리가 세워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흐르는 강물 위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수많은 사람과 차의 무게를 버텨야 하는 다리를 건설하는 모습은 경이로우면서도 그 원리가 궁금해진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다 보니 새삼 한강의 위에 있는 대교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대교가 없으면 우리는 배를 타고 물에 빠질 것 같은 무서움을 감수하며 건너야 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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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명물
서울 근교에서 찾는 쉼, 축령산자연휴양림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외방리 축령산(886m)과 서리산(832m) 사이 계곡에 자리 잡은 축령산자연휴양림은 1995년 개장하여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에서 관리하는 휴양림이다. 축령산의 상징인 축령백림(祝霊柏林)으로 불리는 전국 최대 규모의 잣나무 숲과 서리산 정상의 능선 약13,000㎡의 철쭉 군락지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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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명물
철마산 중의 으뜸 남양주 철마산
철마(鐵馬)는 민간 신앙에서 호환(虎患)을 퇴치하기 위해 마을신으로 모셔지기도 하고, 마을신이 타고 다니는 동물신의 의미를 지니기도 했으며 철광이 있었던 지역의 산에 붙여지던 이름이기도 했다. 부산, 인천, 삼척시, 청도군, 태안군, 금산군 등 꽤 많은 지역에 지명으로 사용하는 철마산 중 남양주 진접읍에 있는 철마산(711m)이 가장 높은 산이다. 국내 읍 단위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는 ‘진접읍’이 가장 높은 산인 ‘철마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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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문화
[조선왕릉-유릉] 한반도 역사상 최후의 군주, 순종
순종(純宗, 1874~1926년)은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매듭짓는 마지막 왕이었다. 한반도에 존재한 많은 왕조의 마지막이 그러했듯이 조선의 마지막 순간 또한 애통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첫째 아들로 태어난 순종은 자신의 어머니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고, 아버지 고종은 강제로 퇴위를 당하는 혼란 속에서 일제의 꼭두각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인물이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루이 14세의 말처럼 군주의 힘과 국가의 힘이 비례하는 체제 속에서 허상이 되어버린 순종의 모습은 곧 조선의 몰락을 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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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문화
[조선왕릉-사릉] 단종과 이별하여 평생 홀로 지냈던 불운의 여인, 정순왕후
조선 역대 임금 중 가장 비운의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단종(端宗)이다. 그렇다면 가장 비운의 왕비는 누구일까? 이 역시나 단종의 하나뿐인 부인이었던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년)가 아닐까? 오늘날의 ‘퍼스트레이디’에 해당하는 왕비의 자리는 언뜻 생각해보면 모든 여인이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행복한 자리였을 것으로 보이지만, 자유롭게 궁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고 여러 후궁을 거느리고 살았던 왕의 모습을 바라보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마냥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정순왕후는 왕비에 자리에 올랐어도 그녀는 단종과 함께 수양대군의 눈치를 보며 마음을 졸였으며 결국 단종은 영월로 유배되어 홀로 죽음을 맞이하니 그녀의 인생이 불운했다는 것에 이견을 갖는 이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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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문화
[조선왕릉-광릉] 개혁과 피바람의 두 얼굴, 세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매몰찬 군주인가, 세종의 뒤를 이은 치적의 군주인가. 아마도 많은 사람은 세조(世祖, 1417~1468년)를 전자(前者)로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권력에 대한 야망을 위해 조카에게 저지른 세조의 행동은 형제에게 칼을 들이대며 왕위에 오른 태종의 ‘왕자의 난’만큼이나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세조가 세종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놀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 세종은 그야말로 성군 중의 성군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세조와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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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문화
[조선왕릉-홍릉] 허울뿐이었던 황제, 고종
대한제국, 명성황후, 커피, 전기, 헤이그 특사⋯. 흔히 고종(高宗, 1852~1919년)하면 떠오르는 단어다. 부인 명성황후가 무참히 시해되는 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것도 모자라 강제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며 나라를 빼앗기는 모습까지 지켜봐야 했던 그를 후대는 한심한 임금 혹은 동정해야 할 비운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명복(命福) 고종은 본래 왕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60년간의 세도정치로 찌들어버린 정국을 뒤바꾸려는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와 흥선대원군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죽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부인으로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올라 대비가 되었지만 안동 김씨 세도가문을 친정으로 둔 시어머니 순원왕후에 밀려 불운한 궁중 생활을 했던 신정왕후와 조금이라도 정치에 관심을 보였던 왕의 재목들은 무참히 제거하는 세도정치의 상황을 간파하고 부랑자 생활로 위장했던 흥선대원군은 ‘고종’이라는 카드로 대동단결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