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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별미
곱창하면 역시, 구리시의 '돌다리 곱창'!
경기 구리시 수택동 구리시장을 지나 돌다리길 뒤편으로 들어서면 구수한 곱창냄새가 진동한다. 이곳 돌다리길 곱창 골목은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한두 가게가 곱창을 메뉴로 자리 잡기 시작하여 지금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거리가 되었다. 곱창 요리를 찾는 손님들은 낮밤을 가리지 않는다. 점심때는 주부들이 많이 찾고, 저녁에는 곱창에 소주 한잔 걸치려는 손님들로 항시 만원이다. 특히 이곳 음식점들은 학생들에게 인심이 후하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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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명물
구리에서 환경을 찾다, 구리타워 들러 신재생에너지홍보관으로!
학습과 연계한 여행이라 하면 으레 과학관이나 전시관 등을 찾는 것을 생각하게 되곤 하는데, 구리시에서 즐길 수 있는 '학습 여행'은 조금 다르다. [트래블투데이]가 추천하는 구리 학습여행 코스는 구리타워를 먼저 찾고, 그 다음에 인접해 있는 신재생에너지홍보관을 찾아가는 것. 구리타워의 전망을 선사한 것이 구리자원회수시설이라는 점, 구리자원회수시설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정보 등을 함께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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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문화
[조선왕릉-원릉] 역대 최장기간 재위로 조선의 중흥기를 이끌다, 영조
44세. 바로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평균수명이다(실록 기준). 조선팔도의 산해진미를 먹으며 아름다운 여색을 마음대로 부리고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던 자리에서 조선의 역대 임금은 왜들 그렇게 짧게 살다 갔을까. 아마도 높은 칼로리의 음식, 부족한 운동량, 새벽부터 시작되는 신하들과의 경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예상한다. 것이다. 호화로운 생활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역대 임금들의 단명(短命)을 비웃으며 역대 최장기간 옥좌의 자리에서 군림한 왕이 있다. 바로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英祖, 1694~1776년)이다. 1724년부터 1776년까지 52년이라는 최장기간 왕위를 지킨 영조는 살기도 가장 오래 살았다. 무려 83세(1694~1776년). 오늘날과 비교해도 장수(長壽)한 편에 속한다. 오랜 그의 재위 기간만큼이나 영조가 남긴 발자취를 되돌아보기 위한 시간 또한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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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탐사
이천 년을 지나 아차산 자락에 다시 핀 고구려, 고구려대장간마을
아차산을 오르면 돌연 석성과 보루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그 유명한 아차산성, 그리고 아차산 보루군의 흔적이다. 아차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되었던 것이니, 그 역사가 천 년을 훌쩍 넘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가늠하기 힘든 세월을 지나왔으니, 많이 낡아버린 이 흔적. 앞으로 이천 년의 시간이 더 지나면 어떤 형태인지를 짐작하기도 쉽지는 않다. 걱정은 일단 접어 두자. 아차산 자락에 고구려가 다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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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체험
하수처리장 속 작은 생태계, 구리시 곤충생태관
물 부족 국가인 우리나라지만 수도꼭지의 물은 콸콸 잘만 나온다. 그러니 과연 물이 부족할까도 싶지만 실제로 대한민국의 수치는 날로 악화되고 있다고. 2014년 한 해만 해도 상수도관의 노후화로 6억 9100만 톤의 수돗물이 땅속으로 새어 나갔으며, 2050년에는 한국의 GDP가 물 부족 때문에 7.1퍼센트 감소될 거라고 예측한다. 심지어 나비나 잠자리 같은 곤충이 도외지에서마저 보이지 않은 지 오래니, 실생활은 어떨지 몰라도 생태계는 계속 위험을 경고하는 중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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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체험
광개토태왕을 만나러 가 볼까? 광개토태왕광장
‘성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대부분의 경우 조선시대의 군주들을 꼽곤 하는 것은 제법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조선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이 땅을 거쳐 간 수많은 왕조와 왕들을 일일이 기억하기도 힘든 일이나, 주목받아 마땅한 인물들은 분명히 있는 법. 고구려의 19대 왕이자 우리나라의 영토를 크게 확장했던 인물인 광개토태왕 또한 이들 중 하나임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이 광개토태왕,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구리시를 찾아가 볼 것을 권한다. 광개토태왕만을 테마로 삼아 조성된 몇 안 되는 공간들 중에서도 가장 큰 곳이 구리시에 위치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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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문화
[조선왕릉-건원릉] 500년 조선왕조의 개국, 태조
태조 이성계,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가 조선을 건국한 인물이라는 것쯤은 쉽게 아는 사실이다. 위화도 회군을 통해 당시 고려 실세였던 백전노장의 최영을 몰아내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그리고 그가 잠들어 있는 건원릉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고려 변방의 장수에서 한 나라의 태조가 되기까지 그리고 아들 사이에 벌어진 피바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의 이야기를 건원릉에서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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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문화
[조선왕릉-현릉] 세종의 숨은 조력자, 문종
나라를 건국한 태조, 왕자의 난을 일으킨 태종, 훈민정음을 반포한 세종, 조선의 르네상스를 꽃피운 정조 등 조선 역대 왕들의 업적과 일화는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기록물 덕분에 다른 시대의 왕조와 비교해 상세하게 알려졌다. 하지만 조선왕조 500년사 역대 27명의 왕 중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게 다가오는 왕이 있다. 세종의 맏아들이었던 문종(文宗, 1414~1452년)이다. “태정태세 문단세⋯” 역사를 공부 할 때 맨 처음 암기하는 조선 왕들의 이름에서 문종은 쉽게 외워지는 인물이지만 훈민정음 반포, 천문학의 발전, 농업 진흥, 4군 6진 개척 등 어마어마한 업적을 남긴 아버지 세종의 그늘에 가려져서일까? 문종에 대한 업적이나 일화를 역사교과서에서 접하기란 쉽지 않다. 동구릉의 경내에 위치한 문종의 무덤 현릉 역시 신경 써서 돌아보지 않는 한 쉽게 지나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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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문화
[조선왕릉-경릉] 세도정치 속에서 일어난 천주교 탄압과 삼정의 문란, 헌종
세도가문 척결로 왕실의 중흥을 꾀했던 효명세자의 꿈이 무산되고 순조마저 세상을 떠나자 1834년 어린 헌종(憲宗, 1827~1849년)이 8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조선왕조 역대 가장 어린 임금이었다. 정치는 대왕대비인 순원왕후(순조 비)가 수렴청정하였고, 정권을 장악한 가문의 성씨(姓氏)만 바뀌었을 뿐 세도정치는 계속되었다. 어린 헌종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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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문화
[조선왕릉-혜릉] 타고난 품성과 총명함으로 세자를 섬겼던 연상의 여인, 단의왕후
조선 제20대 임금인 경종의 첫째 부인이었던 단의왕후 심씨(端懿王后, 1686~1718년)는 청은부원군(靑恩府院君) 심호(沈浩)의 딸로 1686년(병인년)에 태어났다.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서 1688년 10월 경종이 태어났으니 단의왕후가 경종보다 2살 더 많다. 11살 때 세자빈의 자리에 오른 단의왕후는 자신보다 어린 경종을 극진히 보필했다고 한다. 어머니와는 달리 심성이 착했던 경종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서인들의 당파싸움에서 실증을 느끼고, 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숙종의 계비)가 죽자 숙빈 최씨는 장희빈이 자신의 거처에 신당(神堂)을 차려 놓고 인현왕후를 저주했기 때문이라고 밀고를 하면서 결국 장희빈은 사약을 받고 죽는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심신이 약해진 어린 경종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단의왕후뿐 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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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문화
[조선왕릉-수릉] 강직한 대리청정의 표본, 효명세자
추존왕 문조(文祖, 1809~1830년)는 조선 제23대 임금인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으며, 제24대 임금 헌종의 아버지이다. 왕세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아들 헌종에 의해 익종으로 추존왕이 되었고 이후 고종에 의해 문조익황제로 추존되었다. 사실, 후대엔 문조라는 이름보다는 효명세자(孝明世子)로 더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순조-헌종-철종’으로 이어지는 3대 60여 년에 걸친 세도정치의 시발점과 맞닿아있었다. 아버지 순조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영조 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한다. 1803년 친정을 시작하면서 순조는 장인 김조순(안동 김씨) 등 외척가문에 맞서 적극적인 국정운영을 펼치지만 1809년 유례없는 기근과 1811년 홍경래의 난에 부딪히며 점점 힘을 잃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건강까지 나빠지면서 영·정조대의 탕평책에도 굴하지 않았던 세도가문의 정치 세력에게 국정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결국, 순조는 마지막 반전의 카드로 아들 효명세자를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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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문화
[조선왕릉-숭릉] 당쟁과 재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풀지 못한 아버지의 한(恨), 현종
수많은 업적을 남기며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에 하나로 꼽는 아버지 세종과 숙부로부터 당한 슬픈 죽음이 ‘단종애사’로 전해지고 있는 아들 단종 사이에 껴서 역대 임금 중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문종처럼 여기 또 한 명의 '어떤 왕이었더라?' 라는 말을 내뱉게 하는 임금이 있다. 바로 조선 제18대 임금 현종(顯宗, 1641~1674년)이다. 북벌 정책과 대동법 실시 등 ‘화끈한’ 업적을 남긴 아버지 효종과 정치, 경제, 군사 그리고 사랑(인현왕후와 장희빈) 등 다방면에서 후대에 많은 이야기꺼리를 남긴 아들 숙종 사이에서 현종은 좀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과연 후대에게 드러나지 않은 존재감만큼이나 그의 15년 재위기간(1659~1674년)은 조용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