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발자취
- 경기도 오산시 -
유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동양식에 아직까지도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관혼상제와 제사, 높은 교육열과 삼강오륜 등을 유교로 인한 대표적인 생활양식으로 꼽을 수 있을 텐데, 교회나 사찰에 비해 공자를 모신 사당인 궐리사는 아주 찾아보기 힘든 편입니다. 오산의 궐리사는 논산의 궐리사와 함께 우리나라 2대 궐리사 중 한 곳이라고 하니, 오산의 궐리사를 찾는 일에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트래블아이>가 드리는 오늘의 미션, ‘궐리사에 가서 유교의 다섯 덕을 배우고 오라!’입니다.
궐리사는 조선시대의 사당으로, 공자의 출생지가 중국 산동성 곡부현 궐리인 것을 따 ‘궐리사(闕里祠)’라고 한다. 특히 오산의 궐리사는 공자의 후손과 연관이 있다는데?
“공자의 64세손인 공서린이 우리나라에 건너 와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고 해. 그래서 정조가 직접 궐리사를 짓도록 명하고, 편액까지 내렸다고 하던걸?"
"궐리사에서는 봄과 가을에 공자의 초상화와 성상을 모시고, 공 씨의 후손이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해. 공자 말고도 주자의 화상도 모셔져 있다는데?”
솟을대문에 사고석담을 돌려 지은 오산의 궐리사. 언뜻 보기에는 사찰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이것만 기억하면 사찰과 궐리사를 구별할 수 있다?
“담장도, 건물의 형태도 모두 사찰과 비슷해. 언뜻 봐서는 다른 점을 쉽게 찾을 수 없겠는 걸? 궐리사 안내도에 성상전, 제기고, 성묘 등이 적혀 있는 것이 다르기는 한데…”
“우리가 지나온 대문을 한 번 봐. 외삼문에서 크게 다른 점이 있었어.” “아, 대문에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어! 이 태극문양을 찾으면 궐리사 구별이 쉽겠는데?”
하마비는 태종 13년에 예조에서 건의하여 처음으로 쓰게 된 표목. 이 표목에는 大小官吏過此者皆下馬라고 적혀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오산 궐리사에도 있다.
“하마비? 들어 본 적이 있어. 여기 적혀 있는 한자는 ‘대소 관리로서 이곳을 지나가는 자는 모두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잖아. 조선시대 유교의 위상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부분인 걸?”
“맞아. 하마(下馬)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지. 이 궐리사를 지나는 사람들도 모두 말에서 내렸겠지? 예전에 이곳은 아주 신성한 곳이었던 것이 분명해.”
궐리사 내에 위치한 공자의 석상은 중국 산동성 곡부현에서 가져온 것. 아주 신성하게 모셔질 법도 한데, 가을에는 공자 석상 앞에서 고추를 말리기도 한다고?
“공자 석상을 보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 같아. 사찰에 가서는 미륵상의 웅장함에 압도되기 마련인데, 이곳의 공자는 마치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느낌인데?”
“공자의 가르침, 오덕(五德)을 기억하니? 난 이 공자 상을 보니 그 중 첫 번째 덕인 인(仁)이 떠올라. 사람을 사랑하는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 말이야.”
오산 궐리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아름드리 은행나무. 사방으로 가지가 뻗은 모습이 아주 장관인데, 여기서도 유교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까?
“이 나무는 아마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 거야. 저 울창한 가지를 좀 봐. 궐리사를 위해 있는 나무가 아니라, 궐리사가 이 나무에 어우러져 있는 것 같지 않니?”
“유교에서는 자연을 인간의 부모이며, 인간은 자연의 자식이잖아. 자연을 함부로 훼손했을 리가 있니?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아름답다’는 유교의 덕목이 돋보이는 나무야.”
궐리사의 오른쪽에는 행단(杏檀)이 있다. 행단의 행(杏) 또한 은행나무를 뜻하는 말이라는데, 은행나무와 유교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옛날에 공자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고 해. 그래서 중국 곡부에서는 행단이라는 말이 바로 공자의 학당을 뜻하는 것이래. 오덕 중 지(智)를 배우는 곳이지.”
“2층으로 이루어진 누각이 아름다워. 이렇게 보니 우리나라의 건물 양식보다 중국의 건물 양식을 닮은 것 같기도 해. 붉은 색과 검은 색의 조화가 멋진 걸?”
궐리사에 보관되어 있는 성적도 목판은 공자의 76세손인 공재헌이 중국 산동성에 있는 성적도를 가져와 다시 새긴 것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유일한 성적도다.
“내삼문은 성묘와 성상전 두 곳에 있어. 성묘 내삼문 안에는 공자의 위패와 영정이 봉안되어 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지만, 성상전 내삼문은 들어가 볼 수 있어. 이 성상전 내삼문 안에 있는 것이 바로 성적도 목판이야.”
“공자께 예를 갖추어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어. 아, 예(禮)도 오덕 중 하나였지?”
종교로서의 유교는 쇠퇴하지 않았다 하기 어려우나, 궐리사를 찾는 발걸음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는 무엇 때문일까?
“조상이 믿어 온 것들에 대한, 그리고 조상에 대한 꾸준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명절이면 조상님께 제를 올리잖아. 이 믿음이 있는 한 유교는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수 있을 거야.”
“그게 바로 신(信)이지. 우리가 일상 속에서 갖추는 의(義)도 유교 덕택일지도 몰라.”
궐리사를 직접 돌아보며 배우는 유교의 다섯 가지 덕,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학교에서보다 조금 더 많이 와 닿았을 것 같습니다. 저 먼 중국 땅의 현자가 우리나라의 일상생활에 아직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롭고도 위대하게 느껴집니다. 비단 유교의 가치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꼭 지켜야 할 가치, 인의예지신. 자신이 이 중 몇 가지를 지키며 살고 있는지 한 번 되돌아보는 것도 정신적으로 한 걸음 더 성장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요?
두들겨라, 천년 신비가 열린다
- 충청북도 진천군 -
중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진천을 지나본 사람이라면 오른쪽 강변에 놓인 돌다리를 분명 봤을지 모릅니다. 순식간에 스쳐가는 풍경이기에 별 관심을 주지 않을 테지만, 이 다리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임을 알게 되면 보는 시각도 달라질 겁니다. 천 년의 세월을 간직한 이 농다리, 그 생김새부터가 매우 특이합니다. 무엇보다 이 돌다리와 마주했다면 무심결에 건너기보단 몇 번은 두드려보고 건너야 그 진가도 알게 됩니다. 어떤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는 걸까요? 바로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오늘 <트래블아이>가 던지는 미션입니다.
충북 진천 문백면 구곡리를 가로질러 흐르는 세금천에는 돌다리가 하나 놓아져 있다. 그 모양새가 워낙 특이해 그 유래나 전설따위를 알지 못해도 절로 눈길이 갈 것이다.
“저기 보이는 다리, 투박하지만 야무져 보이지? 길이가 약 90~100m쯤 되겠는데?”
“중간중간 돌들을 쌓아 교각을 만들고 길고 넙적한 돌을 사이사이에 얹어놓았어. 보다 보니 긴 벌레가 구불구불 몸을 비틀며 가는 듯해.” “저런 모양의 다리가 흔치 않은데, 좀 더 가까이 가서 보자!”
고속도로에서 볼 땐 상판이 돌덮개가 아니라 검은 나무판처럼 보였는데, 막상 와서 보면 넓적한 바위판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농다리는 더욱 특이하다.
“선암사의 승선교 같은 아치형도 아니고, 한강변 살곶이 다리처럼 편편하지도 않아. 어찌 보면 거대한 벌레같이 보여. 가만 보면 정말 지네의 형상을 하고 있는 듯하지 않아?
“정말이네.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퉁기며 건너는 듯한 모습이야. 자연석을 축대 쌓듯이 안으로 물려가며 쌓아올린 교각들을, 상판이 아래보다 넓어 지네발처럼 보이는 것 같아.”
<조선환여지승람>에는 고려초기에 임 장군이 하늘의 별자리 본 따 28칸(교각)으로 만들었다고 나와 있는데, 지금은 교각이 24개뿐이다. 어떻게 된 걸까?
“농(籠)다리라는 이름은 밟으면 움직이고, 잡아당기면 돌아가는 돌이 있다는 뜻이래. 이름처럼 보기에도 위태위태한데 교각이 이 정도 남아 있는 사실이 참 놀라워.”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아무렇게나 쌓은 것 같은 이 다리가 형태 그대로 천 년을 넘게 버텨왔다는 자체만으로 무척 신기해.”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알려져 있는 하천 한가운데 놓인 이 자그마한 돌다리는 고려 초기에 축조됐다고 전해지는 만큼 이곳에 서린 사연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유를 묻자 부친상을 당해 가는 길인데 다리가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지.
임연은 당장 용마를 타고 돌을 날라다 다리를 놓아주었는데 그게 바로 이 농다리라고.”
농다리는 유구한 역사뿐만 아니라 독특한 모양에서 엿볼 수 있는 건축방식의 지혜가 있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모양만 보고도 천년 동안 간직해온 비밀이 파헤쳐질까?
“교각의 생김새를 봐봐. 장마가 져 유속이 빠를 때도 그 물의 압력을 덜 받은 거지. 또 교각 틈새로 물이 넘쳐흐르면서 저 모습 그대로 유지가 가능했던 거야. 를 수 있었던 거야.”
“지네모양으로 휘어지게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했다라…. 이거야말로 농다리가 지닌 천년의 신비이자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아닐까?”
진천의 이 농다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다. 이 농다리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알리기 위한 축제가 매년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그 모양이며 지내온 역사도 대단하지만, 천 년 동안 마을과 마을을 이어준 역할을 해왔으니 지역이 자랑할 만해!”
“그래서 이 일대에 해마다 농다리축제가 열린다지. 농다리 놓기 체험, 상여 다리 건너기 등 각종 이색 볼거리가 펼쳐진다는데, 지금쯤 축제가 한창이겠다. 그곳으로 가볼까?”
축제기간만 해도 수만 명이 몰린다. 이렇게 농다리는 지역 경제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후손들이 조상들의 유물로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수변공원 일대에서 민속공연과 촬영대회 등 행사가 정말 다채로웠어. 특히 진천 농요시연은 모내기를 마친 뒤라 그런지 더욱 흥겨운 가락을 뽑아내 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지.”
“맞아. 축제를 직접 보고 농다리 직접 건너보면서 우리 조상들 우수성을 다시 한 번 알게 됐어 앞으로도 이곳에 더 많은 축제가 열렸으면 좋겠어.”
진천에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 농다리뿐만 아니라 다리 건너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또 한 번 신기한 광경과 마주하게 된다.
“가장자리에는 호수를 바라보기 좋게 나무 전망대가 마련돼 있구나. 여기가 충북에서 가장 큰 저수지라지? 아름다운 호수로도 이만한 데가 없겠어. 연인으로 보이는 저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것만 봐도 알겠어.”
“저들도 우리처럼 조상의 슬기를 배우고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일깨웠으면 좋겠다.”
구곡리에 있는 농다리는 100여 미터 길이에 자연석으로 된 돌다리입니다. 가만히 보면 진천지역이 명소라 자랑할 만큼 멋지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반듯하게 놓인 것도 아닙니다. 물길에 맞게 비스듬하게 교각이 세워진 구간도 있고, 들쭉날쭉한 것이 크기도 제각각입니다. 하지만 이 다리는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아주 중요한 다리입니다. 고려초에 축조가 돼 지금까지 어떠한 재난이 오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여러분은 고속도로를 지나다 이 다리를 발견하면 잠시 차를 멈춰세울 생각인가요?
과거의 시점과 마주한 동네
- 광주광역시 남구 -
광주를 연상시키는 단어는 '뜨거움'입니다. 역사가 숨쉬는 동네로 불리는 남구 '양림동'은 광주의 대표적인 주거지역으로 역사의 숨결이 배어있는 고택과 서양의 오래된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양림동에 터를 닦고 가옥을 지어 올려 정착을 하여 새로운 열린 공간으로서의 공존을 보여줍니다. 과거와 현재의 고택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남구는 여전히 뜨거운 이야기가 오고갑니다. 그래서 제안하는 <트래블아이>의 오늘 미션은 바로 '양림동에서 과거와 마주한 뜨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오라‘입니다.
버드나무가 울창한 숲이라는 뜻을 가져서일까? 아늑하고 따뜻함으로 걸어간 좁은 골목 끝에 비로소 옛집의 향기가 풍긴다.
“고택이나 종택은 거의 시골이나 오지에 있지 않아? 이렇게 광주 도심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다고?”
“그렇다니까, 이제 거의 다 왔어. 양림동이라고 들어 봤지? 저기 멀리 기와지붕이 보이는 걸 보니 제대로 과거를 찾아왔다.”
양림동에는 전통가옥 2채가 가까이 있다. 이장우 가옥과 최승효 가옥인데 안채와 사랑채, 팔작지붕을 보니 과거와 마주하였음을 실감한다.
“이야, 도심 한 복판에 이런 옛집이 있었다니. 마치 우리 할머니댁에 온 것 같아.”
“이곳은 최승효 가옥이야. 1920년대에 지어졌고 광주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곳이야. 곳곳에 옛것의 향기를 품어내는 고가구들을 보니 예스러움이 골기와만큼이나 깊은 것 같지?”
이장우 가옥과 최승효 가옥은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열린 공간이다. 오래된 주거공간에 역사가 깃들어 있고 현대 속에 자리하고 있기에 더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옥이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열린 공간이래. 디자인비엔날레라고 하면 굉장히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인데 좀 의외다.”
“아마, 진회색빛 높다란 빌딩 숲 사이에 올곧은 성품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특별한 것이 아닐까? 과거와 마주한 현대라고나 할까?”
20세기 초 선교사들이 들어와 정착한 동네로 서양식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현존하는 서양 건물 중 가장 오래된 주택 건물로 그 의미가 크다는데?
“이곳이 우일선 선교사 사택이구나. 회색빛 벽돌이 우리네 주택이랑 비슷해보여도 넓은 창이나 천장이 확실히 다른 것 같아.”
“개화기에 외국 선교사들이 선교활동을 하며살던 살림집인 이곳은 1층과 2층의 생활공간도 눈길을 끌지만 동향으로 한 현관을 주목해보는 것이 좋아.”
선교사들의 선교 흔적과 함께 당시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는 주택 건물은 네덜란드 식 건축양식을 보인다. 서양의 과거 건축양식의 발달도 속속들이 보이지 않을까?
“여기는 광주광역시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된 오웬기념각! 한 번쯤 이름은 들어봤지? 1900년대에서 선교와 의료봉사활동을 하던 오웬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친지들이 보낸 성금으로 건립되었다고 해. 회색벽돌과 창문 그리고 천장이 특히 더 아름다운 것 같아.”
“확실히 선교에 목적이 큰 곳이라 그런지 순례지로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구나.”
지나간 세월은 텅 비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수피아여고는 그렇지 않다. 여학생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세월의 공간을 대신하고 있어 전혀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다.
“때마침 종소리가 울리네, 여기는 다른 가옥과는 다른 학교건물이야.”
“그래서 그런지 다른 가옥들처럼 텅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차 있어 어쩐지 좀 새로운 것 같아.” “응, 마치 현재 진행형처럼!”
‘서양촌’이라는 이름의 동네라 그런지 골목골목마다 낯섦이 지그시 깔려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설렘과 동시에 낯섦이라는 뜨거운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꿈틀거린다.
‘서양촌’이라는 이름의 동네라 그런지 골목골목마다 낯섦이 지그시 깔려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설렘과 동시에 낯섦이라는 뜨거운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꿈틀거린다.
“그러네, 조금 낯설기도 한데 낯섦 때문인지 과거에 와 있다는 느낌은 조금 덜하다. 그래도 붉은 벽돌 건물은 좀 오래된 느낌이 들어, 수피아여고에는 무슨 역사가 깃들어 있을까?”
역사, 문화 관광지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양림동의 건물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겠지만 다녀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타고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역사와 문화가 골목마다 피어나는 양림동 투어 어땠어?” “광주의 새로운 면모를 봐서 좋았던 것 같아, 무엇보다 양림동이라는 곳이 과거와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새롭기도 하고.”
“그리고 더하자면 이렇게 누구든 새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라 더 특별한 것 같지?”
광주 남구 양림동이 문화관광지로서 많은 이들이 찾고 있습니다. 단순히 명소관광의 의미를 넘어서 단정하고 고즈넉한 고택의 모습과 당시 생소한 건축으로 양림동과 접촉을 한 서양의 고택들이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광주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하여 더욱 특별한 양림동의 건축물은 살아있는 건축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어느 곳보다도 진취적이고 현대적인 광주의 근대화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양림동’에서 과거와 마주한 그 순간 여러분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요?
40년 내공의 맛
- 광주광역시 광산구 -
꼭 광주 광산구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맛이 있습니다. 비주얼로 봐서는 마치 함박스테이크를 연상시키지만 분명 철판에 내오는 떡갈비입니다. 달달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시각부터 시작해 후각과 미각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송정떡갈비. 현재 광산구청 주변에 조성된 떡갈비 거리에는 12개 업소가 들어서 있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 골목은, 여전히 과거의 그 소박한 멋과 맛을 간직하고 있을까요?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맛과 멋을 갖춘 음식점들이 들어찰수록 구에서는 지속적으로 환경·위생까지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는 송정떡갈비거리. 어떤 계기로 특화거리로 발전한 걸까?
“와~ 여기에 ‘광산 ’ 지정서와 지정표지판이 부착되어 있구나. 친환경 식재료를 사용하면서 특색 있는 메뉴와 원조 맛을 대물림하고 있는 맛집만이 마크를 달 수 있다지?”
“과거 본연의 맛을 살리려는 식당과 늘 주민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지자체의 생각이 맞아 떨어진 거로구나!”
이제는 엄청나게 불어난 규모만큼이나 맛 또한 과거 주인의 정이 오롯하게 담긴 맛은 사라졌다고 아쉬워하는 이들도 간혹 있다. 과거의 떡갈비 맛은 어떠했을까?
“송정동도 이렇게 현대화됐구나.”
“예전 다 쓰러져가는 간판 하나 달랑 있던 송정떡갈비집이 문뜩 생각나. 허름한 곳에서 간혹 맛보던 그 맛, 아직도 고소한 그 맛이 남아 있지만, 왠지 그 시절이 사뭇 그리워지기도 하는걸."
하지만 그 큰 규모의 식당으로 발전했는데도 여전히 대기표를 받아야 하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불평불만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주인은 할머니가 아들과 며느리로 넘어갔지만 지금도 옛 이름 그대로야. 이 집은 오랜 전통의 레시피도 참 특이해. 양념비법을 고수하면서 직화로 구워내는 방식, 초벌 뒤에 한 번 더 철판에 내오는 것까지.”
”그러게. 아~ 옛날 양은그릇에 내어주던 갈비탕도 여전하네! 얼른 맛보고 싶다!”
산구청 주위에는 떡갈비거리가 조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송정떡갈비가 원조다. 메뉴는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름만 보고도 처음부터 여기가 바로 원조였으리라고 식객들은 짐작했겠지.” “맞아. 그런데 메뉴를 보니 예전과 좀 달라지긴 했어.”
“공깃밥, 비빔밥뿐이었는데 육회랑 냉면도 추가됐네. 식당을 유지하면서 변한 것도 그대로인 것도 모두 정감이 묻어나.”
야들야들하면서도 달콤한 이곳 떡갈비는 여타 갈비와 차이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시 쌈으로 먹는다는 것. 이제 직접 그 맛을 보는 일만 남았다!
“철판에 올려 내와 온기가 오래간다. 조리면서 익힌 갈빗살은 보드랍고 비린내도 전혀 없어. 야들야들하니 입에 착 감기는구나!”
“자, 이렇게 쌈을 싸서 먹어봐! 쌈장에 듬뿍 찍어 각종 야채를 올리고 천천히 음미하면 돼!” “음~ 달착지근함 뒤에 오랫동안 남는 고소한 맛이 참 풍성하다!”
언뜻 선술집 같은 분위기에 달콤한 떡갈비를 맛보고 있으려니 아까 차림표에서 보았던 후식냉면이 떠오른다. 어디, 다시 젓가락을 들어볼까?
“후루룩, 후루룩, 캬~! 갈비탕과 함께 먹는데도 전혀 느끼함이 없어!” “이 후식냉면도 국물이 참 맛깔나! 고기에 싸서 먹으니 더 좋네!”
“하하호호 웃음소리, 잔 부딪히는 소리, 듣기만 해도 배부른 소리들이 건넛방에서 넘어오니 흥이 더하는구나!”
떡갈비를 다 먹고 난 뒤 이것을 추가로 꼭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데. 이것을 빼놓으면 돌아가는 발걸음이 꽤 아쉽다고!
“잘~ 먹었다! 하지만 뭔가 섭섭하다고 해야 할까.” “후식으로 식혜를 배놓았구나!”
“이야~ 식혜 맛도 참 진하다. 요구르트도 선택할 수 있네.” “아이스크림도 셀프로 콘에 담을 수가 있으니 참 괜찮다!”
식당을 나오면서 무심코 던져본 질문, 예나 지금이나 역시 ‘떡갈비의 진수’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떡갈비 본연의 맛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옛날 아빠, 엄마와 손 붙잡고 와서 먹던 겁나게 맛있던 그 맛은 아니야.” “지금은 먹는 게 귀했던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의 맛과 낭만이 깃든 ‘멋있는 맛’이 빠져 있기 때문이겠지. 애석해하게도 영혼을 빼앗겨버렸다고나 할까.”
“맛이란 게 꼭 변하지 않아도 먹거리 홍수 속에 우리 입맛도 얄밉게 달라지는 건 아닐까?”
송정떡갈비거리는 미식가들의 발길을 이끌 정도로 이 나 있습니다. 먹는 게 귀했던 시절 광주 시골마을의 넉넉한 인심을 반추하려 물어물어 찾는 집들도 상당합니다. 분위기가 옛날과 많이 달라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그때의 ‘멋있는 맛’이 아닌지라 또 한 번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성과 인심은 여전합니다. 특히 송정떡갈비는 지금도 그때 이름 그대로입니다. 그 하나만으로도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기에 즐겁게 발걸음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광주의 넉넉한 인심을 쫓아 떡갈비골목에 한번 들러보는 건 어떠세요?
해운대를 돌고 돌아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
부산 해운대구의 '해운대 해수욕장'은 여러분 모두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다른 관광명소도 즐비해 있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모르실겁니다.. 부산 해운대구는 그저 여름 피서지로 생각하기엔 너무도 아쉬운 것들이 많습니다. 바다가 길게 뻗은 해운대의 경관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뽐내는 부산 해운대구는 국제적인 규모의 생사가 연중 열리는 축제의 도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트래블아이>미션은 '해운대구를 전부 다 둘러보라!'입니다
부산이 문화 불모지라는 말을 싹 씻어내 주는 고마운 곳. 이곳에서 제공하고 있는 문화는 부산의 문화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데?
“부산시립박물관은 고정되어 있는 미술 작품을 전시하기 보다는 부산, 영남권의 미술을 매번 새롭게 선보인다고 해.”
“부산미술을 비롯한 한국 전체적인 미술을 이해하고 보급하기위해 부산시립박물관은 문화적 가치를 잘 시행 하고있어.”
벡스코는 언제나 바쁘다. 첨단설비가 갖추어진 이 행사장에서는 과연 어떤 전시와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컨벤션 센터라고 하지만, 그 규모가 어마 어마 한 것 같아.”
“맞아, 축구장 크기의 3배에 이르는 단층 무주전시장부터 여러 홀이 갖추어져 있어서, 주요한 회의, 박람회 등을 개최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해.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고, 미래적인 복합전시를 이루고 있는 해운대구의 명물이지!”
부산 올림픽 공원의 넓은 잔디광장에는 크고 울창한 나무가 드문드문 심어져있다. 그 나무그늘에서 여유를 즐기는 이들의 표정이 한결 여유롭다.
“요트경기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산책로와 여러 조형물들은 올림픽 공원을 문화와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주었지.”
“하지만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조금 이상해.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푸른 바다에 떠 있는 수백척의 요트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요트위에 올라서고 싶은 마음이 치솟는다.
“이 요트 경기장은 국내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사용이 된다고 해. 국제영화제를 관람하러 온 사람들이 꼭 들리는 곳이라고 해.”
“이곳에 오기 전, 이곳을 배경으로 찍힌 영화를 미리 본다면 관광에 더 흥미롭게 요트 경기장을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 그대로를 공원으로 만들어졌다. 이미 노래로도 너무 유명한 이 곳 동백섬은 어떻게 갈 수 있을까?
“동백숲과 소나무 숲이 아름답게 만들어진 동백섬은 해운대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그렇다면 저 육계도가 동백섬으로 이어진 것일까?”
“맞아. 최근에 지어진 저 건물이 건립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기도 해. 자연경관에 의미가 더해진 것이지.”
때로는 다섯, 때로는 여섯으로 보이는 오륙도. 이러한 신비한 현상은 자연이 만들어낸 독특한 섬의 형태란다.
“방패섬과 솔섬이 하나의 섬이 되는 썰물 때와, 두개의 섬이 되는 밀물을 배경으로 신비한 배경이 만들어져 있어.”
“옛 어선들이 귀향하는 광경이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해. 붉은 노을 속의 흰 돛을 일컬어 오륙귀범이라 부르기도 했데.”
해운대 미포에서 송정해수욕장으로 이어진 달맞이 길은 해안선 일대와 언덕을 포함한 길이다. 이곳의 환상적인 풍경은 그 이름이 자자하다는데?
“소나무 숲과 동백섬이 이루어낸 숲과 함께 펼쳐진 바다와 해안가의 전경은 부산의 팔경으로 손꼽힌데.”
“그 뿐만이 아니라, 해운대 달맞이고개와 청사포의 야경 등은 대한 팔경에 포함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곳이라고 해.”
달맞이길에서 이어진 고개마루인 해월정. 이 곳에서 즐기는 월광욕은 관광객들이 부산을 떠나지 못할만큼의 감동을 선사한다.
“달맞이 고개의 끝자락인 해월정은 말 그대로 '달맞이 고개'라고도 부른다고 해. 달을 가잘 예쁘게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지.”
“부산시에서 선정한 야경이 아름다운 곳 베스트5에 든 곳이라고 하니, 다음 부산여행 때에는 다른 곳도 둘러보면 좋을 것 같아.”
부산에는 참 볼 것이 많습니다. 특히나 해운대구는 더욱 그러합니다. 최근 영화의 배경이 되고, 여름철이면 뉴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해운대 해수욕장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한 번쯤은 찾는 명소이지요. 하지만 이렇게나 아름다운 곳이 많고, 볼 것, 즐길 것이 많은 해운대까지 찾아와 바다만을 보고 가기에는 너무 아쉬운 여행이 아닐까요? 여러분이 부산 해운대구에 들린다면 꼭 한번 해운대 해수욕장을 돌고 돌아 있는 명소들을 둘러보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아쉬움 없이 가득 찬 여행을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기분 좋은 눈부심으로
- 대전광역시 동구 -
은빛물결의 반영(反映)에 기분 좋은 눈살을 찌푸립니다. 호반을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손끝으로 계절의 감성을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반복되는 삶에 여유가 동심원처럼 퍼져나가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대청호는 대전광역시와 충청북도 청원군 등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로 대청호 오백리길 등을 통해 사람과 물이 만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누구나 가끔씩 일상에서의 일탈과 팍팍한 일상에 단비를 꿈꿀 텐데요, 그래서 제안하는 <트래블아이>의 이번 미션은 ‘대청호의 반영을 두 눈에 담고 돌아오라’입니다.
반짝하는 순간 은빛물결이 찰랑인다. 나무가 물에 비친 것인지 물이 나무에 비친 것인지 모를 정도로 반짝하여 고개를 삐죽 내밀어본다. 풍경에 이끌려 잠시 걸어보기로 한다.
“젊은 청년이 혼자 왔나보네. 어디 코스를 가려고 하는지 고민 하는 것 같은데 혼자 왔으면 아무래도 추동 호반길이 괜찮지."
"나중에 여자친구랑 같이 오면 호반낭만길 코스도 다녀가 보라고.” “네, 감사합니다.”
오백리라는 이름에 엄두가 안나 한 걸음, 두 걸음 주변에 손짓하는 풍경만 보고 걸어본다. 어느새 뒤를 돌아보면 시작점이 콩알만 하게 희미해진다.
“5시간에 걸쳐 걷는 길이 괜찮을까? 혼자 생각하며 걷는 데는 수변길만큼 좋은 곳은 없다니까, 그럼 한 번 걸어볼까?"
"오백리길이라고 해도 힘들거나 지치지는 않네, 아마도 주변 경관에 빼앗긴 시선과 완만한 산세 때문일 거야. 무엇보다 걷고 싶은 길 12선에 꼽힌 길이라 그런지 휴식하기에 괜찮은 것 같은데?”
사진 찍기 좋은 명소란다. 걷고 걸어 만난 곳에 추억 한 조각 남겨두고 간다. 두 발로 걷는 기쁨이 여기에 있다.
“저기, 혼자 왔어요? 여기가 사진 찍기 좋은 명소라잖아. 사진 한 번 찍고 가요. 내 찍어 줄 테니. 자, 하나 둘 셋!” “감사합니다.”
“여기가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얼마나 멋있는지 몽환적인 분위기가 아주 그만이에요.”
가을에 찾은 대청호는 짙은 갈색빛이다. 나무가 반영된 탓인지 푸른 빛깔의 호수도 갈색빛으로 물든다. 다음 계절의 대청호는 어떨까?
“수변길이라고 해서 물 따라 걷는 것만 생각했는데 중간 중간 산과 사람들을 만나니 더 새롭구나. "
"자연 그대로의 멋과 향이 남아있어서 진풍경을 만들어. 은은한 물향이 사람들이 닦아놓은 길과 어울려 더 아름다운 것 같아. 물에 비치는 나무 때문일까 어쩐지 가을이 더 깊어지는 기분이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대청호를 메운다. 쓸쓸하기만 할 것 같은 혼자만의 여행이 외롭지 않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어울린 진풍경이 더 없이 정겨운 친구가 되어준다.
“혼자 온 여행이라 꽤 쓸쓸했는데, 이렇게 아이들 웃음소리와 가족들의 화목한 이야기가 들려 전혀 외롭지 않을걸. "
"저기 갈대를 보며 좀 더 걸어야겠다. 대청호와 더 가까이 마주할 수 있다니까. 한적하기만 한 거리에 웃음소리가 어쩐지 시끄럽지 않고 정겨운 이야기처럼 들려오네.”
찬샘정에서 바라보는 대청호는 또 다른 느낌이다. 눈길 닿는 곳마다 반짝이는 대청호에 보물이라도 숨겨져 있는 것일까?
“하아, 여기가 찬샘정이로구나. 사진으로만 봤었는데 역시 절경은 절경이구나. 수면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마치 자그마한 보물이 반짝이는 것 같구나.”
“젊은 청년 혼자 왔는감? 숨 좀 고르고 가시게나. 크게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쉬면 마음속에 가득 있던 시름이 저 대청호와 함께 흘러내려간다니까.”
가을을 만끽하기에 수변공원이 최고라면 봄의 벚꽃비를 맞고자 한다면 대청호 회인선 가로수길이 최고다. 그렇기에 대청호는 다음 계절에 대한 기대로 눈이 절로 반짝인다.
“할아버지도 혼자 오셨어요?”
“가끔 와. 길게는 못 걷고 짧은 구간을 아들내미가 데려다 주지. 그나저나 여기 처음 왔는감? 대청호는 언제 봐도 아름답지, 아름다워. 봄에는 꼭 옆에 예쁜 처자 데리고 오라고. 대청호 회인선 벚꽃길에 그렇게 젊은이들이 많다고. 아주 예뻐.”
대청호가 가장 무르익는 계절이 언제라고 묻는다면 쉬이 대답할 수 가 없다. 언제나 은빛 물결은 찰랑일 테고 대청호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 반영이 눈부실 테니까.
“다음계절이 기다려지는 곳이라니, 두 눈에 대청호의 아름다운 물결을 담았으니 봄에는 벚꽃을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지금처럼 가을에는 낭만을, 겨울에는 설경을 담으로 또 와야겠구나. "
"언제나 그 자리에서 아름다움을 지키고 있는 대청호는 늘 새로운 눈부심으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사람들이 한 해가 떠나가고 새해를 맞이하며 목표를 세우는 것 중에 하나가 의외로 여행이라고 합니다. 여행을 계획하고 꿈꾸지만 일상에서의 생활 때문에 쉽게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면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여유를 만끽해보는 건 어떨까요? 팍팍한 삶의 작은 탈출구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들꽃이나 바람결을 느끼며 기분전환을 하는 것도 일상에서 재충전의 시간이 되어줄 것입니다.
빛 그린 어울림 마을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
인왕산 입구 홍제동 어귀에는 ‘개미마을’이라 불리는 동네가 있습니다. 약 1,000만 관객을 울린 영화 ‘7번방의 선물’ 속 주인공인 6살 지능의 사내 용구가 어린 딸과 오순도순 살던 산동네를 떠올리면 마을이 조금 쉽게 그려집니다. 실제 이 마을은 서울의 몇 남지 않은 산동네이자 달동네입니다. 부녀의 소꿉장난 같은 살림살이가 행복했던 그 풍경에 발을 디뎌봅니다. 그새 칠이 많이 벗겨진 꽃그림, 나무그림의 벽화는 수년이 지나고 보니 외려 아련한 맛도 있습니다.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개미마을에서 소담한 멋을 간직하고 돌아오라!
개미마을까지 가는 얼개는 간단하지만 쉬운 길도 아니다. 골목이 미로처럼 얼기설기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가파른 계단을 쉼 없이 오른다. 이 ‘고생길’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젊은이가 그 정도 혈기로 힘들다 소리는, 쯧쯧~. 우리 노인들은 몇 번이나 다리를 쉬며 집으로 가곤 해도 그나마 좋은 날은 낫지. 해마다 겨울이면 연탄을 지고 이 계단을 올라 다녔지. 그것도 이제 이력이 나서 괜찮아. "
"달동네 사는 게 왜 힘든 줄 알아? 바로 겨울 추위야 추위. 길이라도 얼어 봐,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한 걸음 떼기도 힘들어.”
마을로 향하는 가파른 길은 쉼이 없다. 하지만 보람도 있다. 정상에 다다를 즈음 입구에서 올려다 본 마을은 마치 성곽을 연상케 하는데!
“여느 달동네가 그러하듯 이 동네도 낡은 지붕과 지붕이 면을 겹치고 있어. 집과 집의 경계가 상당히 모호한 게 마치 성곽이 둘러쳐진 것 같기도 해.”
“슬레이트 지붕을 인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그렇지. 대부분 50년은 족히 된 것 같아.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아래에서 볼 때와는 전혀 딴판이구나.”
한눈에도 홍제동 개미마을은 그리 부유하지 않다. 하지만 복고의 멋이 제대로 살아 있다. 예스런 아이템들을 발견하는 건 지금부터는 그리 힘을 들이지 않아도 가능하다.
“앗, 공중화장실이야! 이제 시민공원 정도나 가야 있을 법한 화장실이 여기서는 아직도 일상으로 자리하고 있네. 이곳엔 마을버스도 저렇게 커다란 소리를 내며 겨우 오르는구나.”
“산 아래로 삐져나온 커다란 바위 위에 집들이 아슬아슬하게 걸터 있어. 바위 사이로 골목이 구불구불 나 있는 것도 그렇고, 저 집은 대문이 바위 사이에 나 있는 것 같아.”
개미마을의 시작은 바로 천막촌에서부터다. 당시 그 모습이 마치 서부 인디언마을 같다고 하여 ‘인디언촌’이라 부르기도 했다. 마을사람들은 그 이름을 어떻게 기억할까?
“6·25 터지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와 임시 거처로 천막 치고 모여 살기 시작했지. 그래서 ‘인디언촌’이라지만, 인디언처럼 소리 지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가능성도 있어. '
"난 그래서인지 여기 한 30년 넘게 살았지만 그 이름은 영~ 별로였어. 봐봐, 지금은 다들 개미처럼 열심히 일한다고 ‘개미마을’, 얼마나 듣기 좋아?”
홍제동 개미마을이 출사장소로 유명세를 타게 된 건 아름다운 벽화들이 거리마다 즐비하기 때문이다. 새옷으로 단장한 담벼락은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실 이 동네에 산다고 하기가 좀 그렇기도 했지. 친척들 오라고 하기도 민망하고…. 그런데 동네 분위기가 이렇게 바뀔 줄 몰랐어. "
"그전까지 동네 벽들이 온통 금가고 낙서들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마을이 몰라보게 밝아졌지. 개발 찬반도 심해서 담벼락마다 험담이 가득했는데 그걸 덮어줬으니 이보다 고마울 데가 없어.”
이제 주말이면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로 꽤 북적인다.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 벽과 골목 곳곳에 그려진 그림들을 연신 렌즈에 담는다. 다양한 벽화 속 그림들을 감상해보는 건 필수다.
“이곳 벽화에는 ‘환영’, ‘가족’, ‘자연친화’, ‘영화 같은 인생’, ‘끝 그리고 시작’ 등을 테마로 한 그림들이 50개도 넘는대. 예전의 개미마을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야. 그림만 다 돌아보고 나가도 대형 전시회를 감상한 기분이겠는걸?”
“전시회는 사진을 찍을 수 없잖아. 여긴 얼마든지 셔터를 누를 수 있고 연출도 가능하지.”
개미마을에는 텃밭이 참 많다. 텃밭마다 고추와 상추, 대파가 심어져 있고 각종 채소가 자란다. 텃밭 가꾸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인생고락이 느껴질까?
“그나마 우리 마을 바뀌기 시작한 건 학생들 찾아와서 붓 하나씩들 잡고 담벼락에 그림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라지. 그래도 사람들 사는 건 웬만해서는 잘 안 바뀐다고.”
“하지만 말이야. 이곳 사람들, 바깥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가난하지도 않고. 다들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왔을 것 같아. 저 텃밭들을 좀 봐. 시장 안 봐도 1년은 너끈히 먹겠어.”
개미마을에 저녁이 왔다. 산등성이 마을에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빛은 참 따스했다. 마치 개미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한국전쟁 후에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천막 짓고 살던 ‘인디언촌’에서 시작했는데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지금 이 사람들이 얼마나 인정 넘치는지 누가 알아주나? "
"아프면 서로 돌봐주고 좋은 일 있으면 같이 기뻐해주고…….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기대면서 하루하루 살아가, 우리는.”
족히 40년은 된 낡은 집들이 고스란히 캔버스가 된 홍제동 개미마을은 이제 서울의 또 하나의 명소로 자리 잡은 듯 보입니다. 눈에 익은 ‘삼거리 약수터·연탄가게’, 영화 속 오지 않는 아빠 ‘용구’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버스정류장, 산기슭까지 다닥다닥 묻혀 있는 낡디 낡은 집들까지 지난날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을 법도 한 왠지 모를 아련함이 진하게 묻어나는 개미마을입니다. 여러분은 이곳에 가면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추억의 느낌을 어떤 색깔로 칠하고 돌아올 생각인가요?
변하지 않도록 지켜낸 것들
- 경상북도 경주시 -
신라 천년수도로 도시 그 자체로 문화유산이라 불리는 곳. 수학여행과 교과서여행의 메카로 역사공부는 물론 휴양지의 힐링 감성까지 만끽할 수 있는 곳, 바로 경상북도 경주입니다. 신라의 역사를 모두 품어 문화적 유적이 되어버린 이곳 경주에는 수많은 국보, 보물들이 산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통, 역사, 문화를 이해하고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볼 것, 배울 것이 많은 경주에는 많은 절대반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의 <트래블아이> 미션은 ‘경주의 또 다른 이면을 체험해보자!’입니다.
역사는 흐르고, 또 흘러온 역사는 쌓인다. 그리고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또 어떤 것은 없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역사의 배경이 되어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연환경은 그 모습을 지켜내는 단 하나의 것이란다.”
“그렇다면 수많은 역사가 지나온 경주의 본 모습은 모두 자연에서 시작되었겠네요. 경주의 자연이 정말 궁금해요!”
마음을 씻는 마을. 도의 근본인 마음 닦음을 자연에서 저절로 느낄 수 있는 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옥산세심마을의 자연은 어떠할까?
“독락당 주변의 산과 자계천의 바위에는 ‘사산오대’라는 이름이 붙어있단다. 그 중 하나인 세심대는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로 이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되었어.”
“자연을 그대로 느끼고,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탐방코스도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니 마을을 씻고 정비하기에 좋은 곳인 것 같아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 아름답고 고풍스런 조선시대 건축이 100여 채나 있고, 선비문화가 있고, 조선시대 반가의 삶이 있다.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 종가가 500여 년 동안 전통을 잇고 있는 유서 깊은 반촌마을이야. 그만큼 다양한 가옥 구성을 볼 수가 있지!”
“와~ 마을 안에서는 유교 전통문화와 관습 등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참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네요. 시골집에서 하루 민박하면서 전부 경험해보고 갔으면….”
월성 서편에는 교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신라때 국학이라는 학교시설이 있었던 마을이며, 지금의 경주향교가 그 터라고 알려진 유서 깊은 마을이다.
“마을 안쪽 넓은 골목길 안쪽에 경주최씨 종가댁과 소종가의 대문이 시선을 가로막는군요. 종가댁은 현재 몇 대째 살고 있을까요?”
“1700년경 이 가옥을 지었다고 하니까 족히 9~10대는 이어오고 있지 않을까?” “경주 최부자집으로 널리 알려진 최씨의 종가는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토함산 석굴암 통일대종 광장에서 31일 밤 11시부터 새해 오전 1시까지 시민들의 소원성취와 우리 민족의 번영을 기원하는 타종과 소망기원 대제 행사가 성황리에 열린다.
“토함산을 타고 넘어오는 공기와, 그 너머 동해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쏟아지면 꼭 호랑이가 나타나 힘을 과시하느라 포효할 것 만 같아요.”
“그래, 그만큼 건강한 자연과 본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이곳에 그 기운이 응집되는 듯해. 토함산 석굴암에서 맞는 새해는 얼마나 특별할까?”
추령고개를 넘어 협곡을 가로지르는 멋진 도로를 지나면 무려 1500년 전 세워진 신라 대표 사찰 기림사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그 역사만큼이나 많은 설화를 가지고 있다. “선덕여왕 때 천축국 승려 광유가 창건하고 원효대사가 확장한 이곳 탄생설화를 들어본 적 있니?”
“글쎄요. 그 설화만 보면 여기가 신라 최초의 사찰이라 추정하기도 한다던데요. 아참! 또 다섯 가지의 맛을 내는 약수가 나온다는 오정수에 관한 설화는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장군수는 일제가 두려워 막아버렸다는 이곳 우물들 이야기는 설화가 아닌 실화란다.”
기림사 골짜기에 위치한 골굴암의 높은 암벽을 따라가면 자연굴을 이용하여 만든 12개의 석굴을 만날 수 있다. 이중 가장 윗부분에 특별한 분을 모셔놨다는데?
“겸재의 ‘골굴석굴’에는 목조전실이 한때 묘사되었다는데, 지금은 바위에 그 흔적만 있네.”
“그래도 이 바위에 새겨진 부처의 얼굴은 아직 생생한걸요! 평판한 신체, 직선적인 신체 윤곽선, 얇게 빚은 듯한 계단식 옷주름, 무릎의 물결식 옷주름, 어깨의 V꼴 옷주름 등이 모두 살아 있어요!”
신라, 그리고 신라를 있도록 했던 경주의 자연. 경주에서 흘러온 역사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채 쌓여왔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자연과 함께 하지 않을까?
“경주는 잘 보존되어온 역사와 문화재만 유명해서 자연경관이 이렇게 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
“네, 역사만큼이나 잘 보존되어온 자연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니. 문화재만 알고 지식자랑을 했던 것이 부끄러워지는걸요?”
신라 천년간의 역사가 흘러가며 남긴 기록들과 문화재는 모두 경주의 자연을 배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화려하게 꽃피었던 신라 역사의 토대가 된 자연경관은 앞으로도 경주의 발전과 함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도 성장하게 할 것입니다. 문화재만 관리하기 바쁜 요즘 시대의 관광지. 하지만 경주는 문화재와 더불어 변하지 않는 자연을 이어오는 세계적인 문화유산 도시임이 분명합니다. 여러분도 몇 번이고 보았던 문화재가 지겹게 느껴진다면 새로운 경주의 보물을 찾아 나서보는 것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