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듯 휴식하듯
- 전라북도 익산시 -
백제의 혼이 서려있는 익산은 금강변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자유로움으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새로운 명소들로 가득합니다. 커다란 공간에 조용히 걸음만 하더라도 과거 지역민들이 만선의 꿈을 안고 돌아오는 성당포구를 만날 수 있고, 서동과 선화의 꿈이 새겨진 궁의 정원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도 단순합니다. 그저 거닐며 일상의 쉼표를 찍고 돌아오면 됩니다. 익산의 호젓한 산책길을 따라 공원을 둘러보는 여행은 마음을 평온케 하고 힐링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호젓한 길 위에서 성당포구를 알리는 석상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성당포구 생태공원에 닿기 전 이곳의 역사도 가늠해볼 수 있다.
“시골풍경은 언제 봐도 정겨운 것 같아. 성당포구마을 입구에서 이런 생태공원도 만나게 되니 기분이 참 좋아. 그런데 과거에 이 포구에서는 무엇을 운반했을까?”
“조선시대 때 금강과 서해를 거쳐 한양으로 세곡을 운반하기 위한 곳이었다고 해. 포구에는 그 옛날 만선을 꿈꾸던 어부들의 흔적도 찾을 수 있을까?”
인적이 사라진 곳에 배 한척만이 쓸쓸히 정박해있다. 그 옛날 포구로 드나들던 사람들의 발자국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금강 물줄기는 이렇게 아름답게 흘러가는데 외로운 황포돛대만 덩그러니 머물고 있네. 황포돛배는 지난날의 시간들을 다 기억하고 있을 것만 같아.”
“이 곳은 왠지 시간의 흐름이 멈춘 공간처럼 느껴져. 만선의 꿈과 무사항해를 기원하던 조상들의 마음이 과거의 시간 그대로 물 위에 비춰지는 것 같아.”
뒤안길, 소달구지길로 들어서는 생태공원. 넓게 펼쳐진 자연에 절로 긴 호흡을 들이마셔 본다. 오래된 풍경과 정겨운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마음이 절로 풍요로워진다.
“느릿한 걸음으로 걷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되는 것 같지 않니?”
“맞아, 오래된 풍경과 고즈넉한 고향의 정취가 느껴지며 괜스레 웃음이 난달까?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흙길이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왠지 이곳은 시간도 천천히 갈 것만 같은데?”
혼자 걸어도, 함께 걸어도 좋은 공원길은 또 있다. 금마저수지를 끼고 있는 시원한 조각공원인 서동공원은 자전거하이킹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더 조용한 것 같아. 그래서인지 꼭 이곳이 나만을 위한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해.”
“콧노래가 절로 나와. 눈부신 햇볕도 마냥 즐겁기만 해. 혼자만의 공간에 있는 듯해서 사색에 빠지기 좋은 날이야.”
익산은 서동요를 통해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을 얻고 백제 무왕에 오른 서동의 탄생지이다. 4만평 부지의 서동공원에는 서동과 선화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른다.
“좋은 사람들과 저수지가 보이는 이 공원에 앉아 아름다운 분수를 보며 더위도 식히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서동과 선화의 사랑을 우리가 다시 이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지?”
“정말 그래. 잔디광장과 미륵광장, 수변광장, 야외무대 등이 꽃과 나무, 야외조명이 함께 어우러져 더 아늑한 맛이 있어. 과연 익산의 대표적인 나들이 장소로 꼽힐 만해.”
봄에는 철쭉이 환영하며 여름에는 저수지 물결이 푸르른 이 공원에는 궁남지 연못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한 백제 무왕의 전설을 이야기해보자.
“이 궁남지에 대해 삼국사기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백제 무왕 35년(634) 궁의 남쪽에 못을 파고 이십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다가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方丈仙山)을 상징한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 연못은 백제 무왕 때 만든 궁의 정원이었던 걸까?”
국내 유명 조각가의 작품과 서동요 조각을 비롯해 중앙광장에는 무왕 동상이 위치하고 있는 서동공원. 다양한 사진을 찍어 볼 수 있어 한층 재미가 있는 공간이다.
“백제가 삼국 중에서도 정원을 꾸미는 기술이 뛰어났었음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됐어. 삼한시대 마한의 역사와 생활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마한관도 이 근처에 있대.”
“그래? 그러면 거기 가기 전에 이걸 한번 봐봐. 십이지신상이야. 정말 멋있지 않니?” “정말. 저마다 개성이 참 독특한 조각들이네. 하나하나 전부 카메라에 담고 싶은걸.”
공원을 빠져나와도 정겨운 산책길은 계속된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 짙은 풀냄새와 멀리보이는 허수아비까지. 평범한 길 위에서 어느새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산책과 휴식이 있는 공원들을 둘러보니 지역 전체가 참 정겹다는 생각도 들어. 힐링, 이 단어만 떠올리고도 주저 없이 다시 찾게 될 것 같아.”
“맞아 언뜻 보면 평범한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작은 감동이 넘친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어.”
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복잡한 마음이 좀 가셨어’라는 생각이 들 때 아닌가요? ‘힐링’이라는 단어가 새삼 이 시대를 대표하는 우리네 삶의 도피처가 되어버렸고 실제 많은 사람들은 힐링을 위해 가깝거나 혹은 먼 곳을 찾아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작고 느린 여유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성당포구생태공원이나 서동공원처럼 말이죠. 여러분도 지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이곳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마음의 쉼표를 얻어가는 건 어떨까요?
유교의 발자취
- 경기도 오산시 -
유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동양식에 아직까지도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관혼상제와 제사, 높은 교육열과 삼강오륜 등을 유교로 인한 대표적인 생활양식으로 꼽을 수 있을 텐데, 교회나 사찰에 비해 공자를 모신 사당인 궐리사는 아주 찾아보기 힘든 편입니다. 오산의 궐리사는 논산의 궐리사와 함께 우리나라 2대 궐리사 중 한 곳이라고 하니, 오산의 궐리사를 찾는 일에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트래블아이>가 드리는 오늘의 미션, ‘궐리사에 가서 유교의 다섯 덕을 배우고 오라!’입니다.
궐리사는 조선시대의 사당으로, 공자의 출생지가 중국 산동성 곡부현 궐리인 것을 따 ‘궐리사(闕里祠)’라고 한다. 특히 오산의 궐리사는 공자의 후손과 연관이 있다는데?
“공자의 64세손인 공서린이 우리나라에 건너 와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고 해. 그래서 정조가 직접 궐리사를 짓도록 명하고, 편액까지 내렸다고 하던걸?"
"궐리사에서는 봄과 가을에 공자의 초상화와 성상을 모시고, 공 씨의 후손이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해. 공자 말고도 주자의 화상도 모셔져 있다는데?”
솟을대문에 사고석담을 돌려 지은 오산의 궐리사. 언뜻 보기에는 사찰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이것만 기억하면 사찰과 궐리사를 구별할 수 있다?
“담장도, 건물의 형태도 모두 사찰과 비슷해. 언뜻 봐서는 다른 점을 쉽게 찾을 수 없겠는 걸? 궐리사 안내도에 성상전, 제기고, 성묘 등이 적혀 있는 것이 다르기는 한데…”
“우리가 지나온 대문을 한 번 봐. 외삼문에서 크게 다른 점이 있었어.” “아, 대문에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어! 이 태극문양을 찾으면 궐리사 구별이 쉽겠는데?”
하마비는 태종 13년에 예조에서 건의하여 처음으로 쓰게 된 표목. 이 표목에는 大小官吏過此者皆下馬라고 적혀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오산 궐리사에도 있다.
“하마비? 들어 본 적이 있어. 여기 적혀 있는 한자는 ‘대소 관리로서 이곳을 지나가는 자는 모두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잖아. 조선시대 유교의 위상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부분인 걸?”
“맞아. 하마(下馬)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지. 이 궐리사를 지나는 사람들도 모두 말에서 내렸겠지? 예전에 이곳은 아주 신성한 곳이었던 것이 분명해.”
궐리사 내에 위치한 공자의 석상은 중국 산동성 곡부현에서 가져온 것. 아주 신성하게 모셔질 법도 한데, 가을에는 공자 석상 앞에서 고추를 말리기도 한다고?
“공자 석상을 보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 같아. 사찰에 가서는 미륵상의 웅장함에 압도되기 마련인데, 이곳의 공자는 마치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느낌인데?”
“공자의 가르침, 오덕(五德)을 기억하니? 난 이 공자 상을 보니 그 중 첫 번째 덕인 인(仁)이 떠올라. 사람을 사랑하는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 말이야.”
오산 궐리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아름드리 은행나무. 사방으로 가지가 뻗은 모습이 아주 장관인데, 여기서도 유교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까?
“이 나무는 아마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 거야. 저 울창한 가지를 좀 봐. 궐리사를 위해 있는 나무가 아니라, 궐리사가 이 나무에 어우러져 있는 것 같지 않니?”
“유교에서는 자연을 인간의 부모이며, 인간은 자연의 자식이잖아. 자연을 함부로 훼손했을 리가 있니?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아름답다’는 유교의 덕목이 돋보이는 나무야.”
궐리사의 오른쪽에는 행단(杏檀)이 있다. 행단의 행(杏) 또한 은행나무를 뜻하는 말이라는데, 은행나무와 유교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옛날에 공자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고 해. 그래서 중국 곡부에서는 행단이라는 말이 바로 공자의 학당을 뜻하는 것이래. 오덕 중 지(智)를 배우는 곳이지.”
“2층으로 이루어진 누각이 아름다워. 이렇게 보니 우리나라의 건물 양식보다 중국의 건물 양식을 닮은 것 같기도 해. 붉은 색과 검은 색의 조화가 멋진 걸?”
궐리사에 보관되어 있는 성적도 목판은 공자의 76세손인 공재헌이 중국 산동성에 있는 성적도를 가져와 다시 새긴 것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유일한 성적도다.
“내삼문은 성묘와 성상전 두 곳에 있어. 성묘 내삼문 안에는 공자의 위패와 영정이 봉안되어 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지만, 성상전 내삼문은 들어가 볼 수 있어. 이 성상전 내삼문 안에 있는 것이 바로 성적도 목판이야.”
“공자께 예를 갖추어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어. 아, 예(禮)도 오덕 중 하나였지?”
종교로서의 유교는 쇠퇴하지 않았다 하기 어려우나, 궐리사를 찾는 발걸음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는 무엇 때문일까?
“조상이 믿어 온 것들에 대한, 그리고 조상에 대한 꾸준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명절이면 조상님께 제를 올리잖아. 이 믿음이 있는 한 유교는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수 있을 거야.”
“그게 바로 신(信)이지. 우리가 일상 속에서 갖추는 의(義)도 유교 덕택일지도 몰라.”
궐리사를 직접 돌아보며 배우는 유교의 다섯 가지 덕,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학교에서보다 조금 더 많이 와 닿았을 것 같습니다. 저 먼 중국 땅의 현자가 우리나라의 일상생활에 아직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롭고도 위대하게 느껴집니다. 비단 유교의 가치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꼭 지켜야 할 가치, 인의예지신. 자신이 이 중 몇 가지를 지키며 살고 있는지 한 번 되돌아보는 것도 정신적으로 한 걸음 더 성장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요?
학교 앞 소소한 일상 탈출구
- 서울특별시 관악구 -
대학동은 가파른 고갯길에 놓여 있습니다. 대로변에서부터 멀어질수록 경사는 심해집니다. 사람들 왕래가 잦은 대로변 쪽에는 젊은 학생들이, 고갯길로 올라갈수록 오래 공부한 일명 ‘장수생’들이 자리합니다. 공부를 할수록 세상과 멀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며 세상을 참되게 바라보는 것일까요? 고시 9단을 꿈꾸는 이들이 사는 신림 9동은 아무래도 낯설지만, 낯선 그 곳을 지키는 장수생들이 있기에 아직 ‘녹두거리’의 풍경도 예전 모습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녹두거리’의 진풍경을 만나라!
‘황해도 빈대떡집’은 그 자체로 추억이다. 단연 압권은 모듬전과 빈대떡. 빈대떡은 돼지기름을 이용해 부쳐야 제 맛이라는데, 그 추억의 맛 한번 볼까?
“아유~ 오랜만이네. 동동주랑 해물파전 내줘?” “두 말 하면 섭섭하죠! 요즘 장사는 잘 되세요?”
“그럭저럭~. 우리 집이 80년대 가난한 대학생들, 고시생들한테 전이랑 술 싸게 팔아서 장사 이만큼 했지. 그래서 여기도 ‘녹두거리’라고 했잖아.”
많은 서점들이 들어서 있지만 고시생들이 즐비해 있는 만큼 고시전문서점이 3~4블록마다 자리한 것도 이곳만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쭉 둘러보니 도림천을 사이에 두고 고시학원과 고시전문 독서실 50여개, 서점·복사가게도 수십 곳이 성업 중이구나.”
“그래도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시간을 기억해내는 건 어렵지 않아. 이 ‘상원서적’도 여전하잖아. 90년 후반까지는 시위관련 전단지 인쇄물과 전공서적 제본이 주종을 이뤘지.”
‘행운분식’은 보통의 분식점들과 같이 여러 가지 메뉴가 있다. 하지만 이곳을 찾은 손님 중 90% 이상이 라볶이를 먹는데, 얼마나 맛있기에?
“밥은 주문 안 했는데요?”
“밥은 기본으로 드려요. 떡, 어묵 다 드셨으면 라볶이 국물에 김가루랑 깻잎, 깨 참기름도 뿌려드릴게요. 자, 공깃밥이랑 계란프라이 같이 비벼 드시면 돼요!” “와~ 정말 맛이 환상적이네요!”
서울에서 돼지국밥집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하지만 녹두거리에는 ‘원조돼지국밥’이 있다. 경상도 출신도 이곳 국밥은 맛있게 먹고 간다는데?
“이곳은 의외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경상도 출신 사람들도 있고 그 사람들이 권유해서 발붙였다가 단골이 된 서울 토박이들도 꽤 된다고 하대요?”
“그렇지. 우리 돼지국밥은 돼지 뼈를 푹 고운 육수에 고기랑 부추를 넣은 방식이 경상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방식 그대로야.”
녹두거리에 위치한 한 중고책방. 50평 남짓한 공간을 꽉 채우고도 남는 방대한 책들만큼이나 긴 머리의 범상치 않은 외모를 가진 책방주인도 명물이다.
“서울에, 아니 전국을 통틀어 이만한 중고책방이 없어요! 말이 중고책이지, 깨끗해서 새 책이나 다름없으니 쭉 둘러봐요.”
“사장님 명함에 새긴 ‘세상의 모든 책을 삽니다’란 글귀는. 좋은 책만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신가요?”
그 시절엔 무슨 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모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모일거리’와 ‘마실 거리’가 끝이 없고 늘 마무리는 우정 어린 눈물과 웃음이었다.
“한때 대학로의 전설이던 ‘캠브리지’가 완전 사라진 줄 알았는데 다시 부활했네요.” “캠브리지, 옥스퍼드, C&C 이 트로이카가 힘없이 쓰러진 데에는 대학문화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너무 옛 모습만 고수한 탓이 커!”
“그래서 이렇게 옥상 테라스까지 갖춘 현대식 캠브리지로 재탄생시켰군요!”
득도해서 퇴촌한 친구가 있었는가 하면,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폐인도 있었다. ‘대륭독서실’을 보면 치열한 고시생활에 폐인과 득도 사이가 멀지 않음을 재차 깨닫는다.
“솔직히 신림동에서 ‘득도’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거야. 득도하기 전에 빨리 붙어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 봐라. 외로운 고시촌 골방에서 '득도'한 사람들이 어떻겠냐. 대부분 오만하고 자기독선에 빠질 수밖에 없지.”
“맞아요. 시험에 떨어지는 것보다 그 횟수만큼 거만해지고 게을러지는 거더라고요.”
전국의 수많은 고시생들 가슴속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몇 년이고 속을 시커멓게 태우며 '심지(心志)'를 질기게 만들어야 결국 꿈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고시에 합격한 뒤에 ‘이 지긋지긋한 생활 끝내서 좋지만 스스로 좁아지고 어두워져서 세상에 나갈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나도 그랬지. "
"고시에 합격하든 아니면 중도에 포기하고 나가든, 어떤 순간이든 후회하고 싶지 않았어. 그게 내가 이 고시촌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고 사회에 나가서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
서울대 앞 녹두거리는 대학생들과 고시생들, 또 장수생들의 추억과 애환이 깃든 곳입니다. 현재 비교적 많은 패스트푸드점과 브랜드 간판을 내건 상점들도 들어서면서 80∼90년대와 같은 멋스러운 정취는 다소 떨어진 감도 없잖아 있지만 여전히 옛 기억을 반추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머물 수 있는 서점과 독서실, 빈대떡집과 돼지국밥집 등 추억거리들이 살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그때의 녹두거리를 걸어보는 건 어떠세요? 고단한 삶의 문턱에서 순간을 즐길 줄 알게 된 그 시절을 어느새 그리워하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과학으로 키우는 꿈
- 인천광역시 계양구 -
꿈 많던 어린 시절을 조금 더 알차게 보냈다면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 후회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미술가, 과학자, 정치인, 철학자…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아이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하지요.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최대한 많은 길을 보여주고, 그 중에서 자신의 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그래서 인천 계양구에서 진행될 이번 <트래블아이>의 이번 미션은 ‘과학을 즐겨라!’입니다.
인천 계양구에는 전국 최초의 어린이 전문 과학체험시설인 인천어린이과학관이 있다. 머리와 몸을 쓰는 기존의 과학관에서 과학을 넘어 감성을 깨우는 곳으로 개관하였다는데?
“학교에서도 이곳에 다녀온 친구들이 자랑을 하는 것을 몇 번 들었어요. 과학이라고 해서 어렵고 딱딱한 곳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마치 놀이터 같은 곳이었대요.”
“어렵고 딱딱한 느낌의 과학관은 오히려 과학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 하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번에 갈 과학관은 정말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어.”
인천 어린이 과학관은 그 외양부터 아이들을 설레게 하는 곳. 이곳은 몰려드는 어린이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100%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을 정도라는데?
“건물 벽에 무지개 빛깔 조약돌들이 가득 박혀 있는 것 같아요! 마치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기도 하고, 은하수 같기도 해요. 들어가기 전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안으로 들어가면 더 놀랄 걸? 자, 보렴. 네 마음에 쏙 들지 않니?” “알록달록하고 반짝반짝한 모습이 정말 예뻐요! 과학관에 왔다는 느낌이 안 드네요!”
과학관 안의 각 마을마다 권장연령이 있으니 이를 참고하면 좋다. 다만, 2층의 무지개마을은 영유아들만 입장할 수 있다. 인체마을의 권장 연령은 4~8세.
“학교에서 배운 내용들도 많고, 텔레비전이랑 책에서 본 내용들도 많아요. 아이들이 여기저기에서 놀고 있어요. 정말 놀이터 같은데요? 아, 이것 좀 보세요! 여기 이 사람 얼굴 모양에 있는 콧구멍에 공을 집어넣었더니 재채기를 해요!”
“구멍에 손을 넣으면 화면에 보이는 동물들의 감촉을 느낄 수 있는 이 시설도 재미있구나.”
2층의 비밀마을은 세계의 어린이를 만나보고 직업을 체험해 보는 곳. 다양한 직업들을 체험해 볼 수 있을뿐더러, 특별한 의상까지 준비되어 있다!
“저는 저기에 먼저 갈래요! 레스토랑에서 요리사 옷을 입어볼 수 있어요!” “너 어렸을 때에는 커다란 크레인을 운전해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저기에서 건축기사 체험도 해 볼 수 있는 모양이구나,”
“앗, 소방관이 되어 볼 수도 있어요! 고르기가 정말 어려워요. 그냥 다 해 볼게요!”
3층의 지구마을에서는 사람과 생물, 환경 작용에 대한 체험을 통해 지구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자연보호의 소중함을 알아볼 기회이지 않을까?
“선생님께서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고 하셨어요. 보세요, 지구가 온통 빨간색이네요.”
“분리수거 잘하고,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지 않고,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은 조금만 켜고!” “맞아요. 제가 잘못했던 것 같아요. 빨갛게 변해버린 지구를 보니 마음이 아파요. 마치 저한테 아주 많이 화가 난 것 같잖아요.”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도시마을. 과학의 원리에 대해 조금 더 알고, 미래의 과학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자!
“우주탐사와 해양탐사! 둘 다 정말 해 보고 싶었는데 여기서 체험해 볼 수 있네요!” “국제 우주 정거장이네? 들어가서 운동도 해 보고 침실도 구경해 보렴. 화성 탐사 로봇도 조종해 보고 말이야.”
“해저 탐사 로봇으로 바다 속에서 심해생물과 광물을 찾아 볼 수도 있어요. 정말 신나요!”
인천 어린이 과학관 안의 발매기에서 표를 구매하면 4D 영상관을 이용할 수 있다. 4D 영상관에서는 상영 시간에 맞춰 어린이 대상의 짧은 영화를 상영해 준다.
“입체 안경! 저 이거 정말 써 보고 싶었어요. 3D 영화랑 4D 영화는 거의 다 어린이 관람 불가잖아요?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는데, 오늘 드디어 체험해 보는군요!”
“4D도 과학의 일부니까 말이야. 지금부터 볼 영화는 과학 영화인데도 그렇게 좋니?” “그럼요! 과학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과학의 이모저모에 대해 둘러보았다면, 충전된 창의력을 발휘해 볼 수도 있다. 비누 만들기, 망원경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코너가 있으니, 한 가지를 선택해 보자.
“전 빨대로 모양을 만드는 체험을 해 볼래요. 멋진 건물을 지어 볼 거예요!” “좋은 생각이구나. 저 안쪽에서 친구들이 벌써 작품들을 만들고 있는데? 저 아이는 탑을 쌓았고, 또 저 아이는 예쁜 집을 지었구나.”
“아이참, 지켜보지만 말고 빨리 가요! 저도 잘 할 수 있단 말예요.”
인천 어린이 과학관은 지식뿐만 아니라 감성이 함께 자라는 공간이라 더 매력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분야의 과학을 직접 만져보며 놀고, 이 과정을 통해 감성이 자라는 동안 아이들의 꿈도 한 단계 더 성장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미래의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과학책 한 권을 권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이미 과학과 친구가 된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과학이 어렵지 않을 테니까 말예요.
한반도 중심에서 맛본 아삭한 맛의 향연
- 강원도 양구군 -
양구의 5월은 파릇파릇한 싱그러움에 젖어드는 때입니다. 쌀쌀한 기운이 겨울을 몰아내면 비로소 따뜻한 볕이 들며 5월의 향기를 무르익게 합니다. 향긋한 봄내음과 함께 곰취의 풋내가 실려 오면서 말입니다. 무릇 한 지역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는 그 지역의 특산물과 특산품을 유심히 보라고 하였습니다. 특산물은 지역의 환경이나 주민들의 터전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하는 오늘의 미션은 ' 양구 곰취와 함께 5월의 푸름을 만끽하고 돌아오라’입니다.
5월이 오면 어느새 양구는 초록으로 물들어 있다. 봄이 오는 소리가 저만치 들려오니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리듯 잃었던 입맛도 다시금 돈다.
“봄에 나들이 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멀리 올 필요가 있어? 요즘 만사가 다 귀찮다니까.”
“그러니까, 입맛도 없다며. 그게 다 봄 타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오늘 제대로 봄 좀 타보자고. 봄 하면 산나물, 산나물하면 곰취 아니겠어?”
곰 발바닥을 닮았다고 하여 곰취라고 불린다던가? 널찍하고 커다란 잎은 곰발바닥을 닮았을지 모르지만 두껍지 않고 부드러운 것은 발바닥과 거리가 멀지 않을까?
“그런데 곰취랑 곤달비랑 구분하기가 힘들다. 둘 다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 아주머니께 여쭤보자.”
“곰취는 잎자루에 홈이 있고 곤달비는 홈이 없이 둥근모양이에요. 어려우면 더 맛있는 게 곰취다 생각하면 쉽지요?”
곰취는 진한 향과 쌉싸름한 맛으로 산나물 중 으뜸으로 불린다. 곰취를 재배할 때면 멀리서부터 곰취 향이 전해져 대암산 자락을 물들인다.
“음, 약간 쌉싸름한 맛이 있긴 한데, 맛이 오묘하다. 단 맛도 느껴져. 무엇보다 향이 진하게 감돌아. 깻잎이나 다른 산나물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 들어.”
“곰취가 원래 대암산 인근에서 많이 채취되었는데 거기는 남산신이 지켜서 나물들이 달콤하다고 믿었대.”
곰취는 태생이 그렇듯 무농약, 무공해로 재배되어 친환경 건강식품으로 인기 만점이다. 입안에 퍼지는 향만으로도 온몸에 건강함이 퍼진다. 이것이 웰빙 아닐까?
“곰취 이거 정말 건강한 나물이에요. 부드럽고 연한 것이 먹고 나면 요즘사람들 좋아하는 그 힐링!”
“그래, 힐링이 절로 된다니까!” “꽤 아삭아삭한 맛이 일품이야. 자, 아~ 해봐.”
5월이면 이곳은 곰취를 즐기는 방법들이 더욱 다양하다. 이맘때는 곰치를 가장 실하게 맛보는 시기이기도 하다.
“자, 곰취에 잘 익은 삼겹살 한 점 올려 먹어볼까?” “돼지고기 비린내도 살짝 잡아주고 은은한 향이 고기랑 꽤 잘 어울리는데? 상추나 깻잎 저리가라야.”
“그뿐인 줄 알아? 곰취절임에 싸 먹어도 그만이야. 배는 부른데 자꾸만 손이 가네.”
반찬부터 요리까지 곰취의 다양한 변신은 양구만의 색다른 별미로 자리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곰취요리부터 맛을 볼까?
“곰취전병, 곰취찰떡, 곰취절임, 곰취장아찌 말만 해.” “곰취로 만들 수 있는 반찬들이 이렇게나 많아요?”
“그럼요. 간식거리로 제일 인기 있는 곰취찐빵도 있는데요? 곰취가 들어가 건강하고 은은한 향이 남아있어 곰취 반찬 하나면 반찬투정 할 필요가 없다니까!”
웰빙바람이 불면서 산채, 특히 곰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서 곰취는 마을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보물이다.
“곰취에서 농민들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아무렴 그렇지. 곰취로 자식들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도 다 보냈는걸. 남편 없인 살아도 곰취없인 못 산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어? 그러니 이렇게 찾아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곰취의 진한 맛과 향이 양구의 향처럼 돋아나는 5월이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곰취를 채취하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건강한 푸름이 가득하다.
“김영랑 시인의 <오월>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 떠올라.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진다.’ 딱 양구를 보고 말하는 것 같아. 마을 온통 곰취 세상으로 푸르러 진 것 같아.”
“산채 하나만으로도 계절을 만끽할 수 있다니 놀라워!”
곰취의 고장 양구에서는 5월이면 건강한 웰빙 바람이 불어옵니다. 각종 환경오염과 식재료의 안전성이 부각되는 요즘, 믿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음식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자연 속에서 그대로 채취된 곰취를 찾는 사람들의 수요도 늘고 있습니다. 매년 5월에 열리는 곰취축제에서는 곰취로 만든 다채로운 음식들을 맛보며 직접 채취할 수 있는 체험들도 마련된다고 하니 나들이 계획이 있는 분들에게 딱 좋은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5월의 푸름을 만끽하고 싶다면 지체 말고 양구로 떠나보세요.
두들겨라, 천년 신비가 열린다
- 충청북도 진천군 -
중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진천을 지나본 사람이라면 오른쪽 강변에 놓인 돌다리를 분명 봤을지 모릅니다. 순식간에 스쳐가는 풍경이기에 별 관심을 주지 않을 테지만, 이 다리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임을 알게 되면 보는 시각도 달라질 겁니다. 천 년의 세월을 간직한 이 농다리, 그 생김새부터가 매우 특이합니다. 무엇보다 이 돌다리와 마주했다면 무심결에 건너기보단 몇 번은 두드려보고 건너야 그 진가도 알게 됩니다. 어떤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는 걸까요? 바로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오늘 <트래블아이>가 던지는 미션입니다.
충북 진천 문백면 구곡리를 가로질러 흐르는 세금천에는 돌다리가 하나 놓아져 있다. 그 모양새가 워낙 특이해 그 유래나 전설따위를 알지 못해도 절로 눈길이 갈 것이다.
“저기 보이는 다리, 투박하지만 야무져 보이지? 길이가 약 90~100m쯤 되겠는데?”
“중간중간 돌들을 쌓아 교각을 만들고 길고 넙적한 돌을 사이사이에 얹어놓았어. 보다 보니 긴 벌레가 구불구불 몸을 비틀며 가는 듯해.” “저런 모양의 다리가 흔치 않은데, 좀 더 가까이 가서 보자!”
고속도로에서 볼 땐 상판이 돌덮개가 아니라 검은 나무판처럼 보였는데, 막상 와서 보면 넓적한 바위판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농다리는 더욱 특이하다.
“선암사의 승선교 같은 아치형도 아니고, 한강변 살곶이 다리처럼 편편하지도 않아. 어찌 보면 거대한 벌레같이 보여. 가만 보면 정말 지네의 형상을 하고 있는 듯하지 않아?
“정말이네.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퉁기며 건너는 듯한 모습이야. 자연석을 축대 쌓듯이 안으로 물려가며 쌓아올린 교각들을, 상판이 아래보다 넓어 지네발처럼 보이는 것 같아.”
<조선환여지승람>에는 고려초기에 임 장군이 하늘의 별자리 본 따 28칸(교각)으로 만들었다고 나와 있는데, 지금은 교각이 24개뿐이다. 어떻게 된 걸까?
“농(籠)다리라는 이름은 밟으면 움직이고, 잡아당기면 돌아가는 돌이 있다는 뜻이래. 이름처럼 보기에도 위태위태한데 교각이 이 정도 남아 있는 사실이 참 놀라워.”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아무렇게나 쌓은 것 같은 이 다리가 형태 그대로 천 년을 넘게 버텨왔다는 자체만으로 무척 신기해.”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알려져 있는 하천 한가운데 놓인 이 자그마한 돌다리는 고려 초기에 축조됐다고 전해지는 만큼 이곳에 서린 사연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유를 묻자 부친상을 당해 가는 길인데 다리가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지.
임연은 당장 용마를 타고 돌을 날라다 다리를 놓아주었는데 그게 바로 이 농다리라고.”
농다리는 유구한 역사뿐만 아니라 독특한 모양에서 엿볼 수 있는 건축방식의 지혜가 있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모양만 보고도 천년 동안 간직해온 비밀이 파헤쳐질까?
“교각의 생김새를 봐봐. 장마가 져 유속이 빠를 때도 그 물의 압력을 덜 받은 거지. 또 교각 틈새로 물이 넘쳐흐르면서 저 모습 그대로 유지가 가능했던 거야. 를 수 있었던 거야.”
“지네모양으로 휘어지게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했다라…. 이거야말로 농다리가 지닌 천년의 신비이자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아닐까?”
진천의 이 농다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다. 이 농다리의 우수성과 역사성을 알리기 위한 축제가 매년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그 모양이며 지내온 역사도 대단하지만, 천 년 동안 마을과 마을을 이어준 역할을 해왔으니 지역이 자랑할 만해!”
“그래서 이 일대에 해마다 농다리축제가 열린다지. 농다리 놓기 체험, 상여 다리 건너기 등 각종 이색 볼거리가 펼쳐진다는데, 지금쯤 축제가 한창이겠다. 그곳으로 가볼까?”
축제기간만 해도 수만 명이 몰린다. 이렇게 농다리는 지역 경제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후손들이 조상들의 유물로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수변공원 일대에서 민속공연과 촬영대회 등 행사가 정말 다채로웠어. 특히 진천 농요시연은 모내기를 마친 뒤라 그런지 더욱 흥겨운 가락을 뽑아내 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지.”
“맞아. 축제를 직접 보고 농다리 직접 건너보면서 우리 조상들 우수성을 다시 한 번 알게 됐어 앞으로도 이곳에 더 많은 축제가 열렸으면 좋겠어.”
진천에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 농다리뿐만 아니라 다리 건너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또 한 번 신기한 광경과 마주하게 된다.
“가장자리에는 호수를 바라보기 좋게 나무 전망대가 마련돼 있구나. 여기가 충북에서 가장 큰 저수지라지? 아름다운 호수로도 이만한 데가 없겠어. 연인으로 보이는 저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것만 봐도 알겠어.”
“저들도 우리처럼 조상의 슬기를 배우고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일깨웠으면 좋겠다.”
구곡리에 있는 농다리는 100여 미터 길이에 자연석으로 된 돌다리입니다. 가만히 보면 진천지역이 명소라 자랑할 만큼 멋지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반듯하게 놓인 것도 아닙니다. 물길에 맞게 비스듬하게 교각이 세워진 구간도 있고, 들쭉날쭉한 것이 크기도 제각각입니다. 하지만 이 다리는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아주 중요한 다리입니다. 고려초에 축조가 돼 지금까지 어떠한 재난이 오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여러분은 고속도로를 지나다 이 다리를 발견하면 잠시 차를 멈춰세울 생각인가요?
숭고한 정신을 찾아서
- 서울특별시 동작구 -
동작구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아마, ‘충효의 도시’ 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립 현충원이 자리하고 있는 동작구에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순국선열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 숭고함 앞에서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것은 당연한 일. 어쩌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한 삶은 그들이 주신 선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트래블아이가 선택한 동작구의 여행 코스 또한 단연 현충원! 이곳에서 트래블아이가 드리는 미션, ‘현충원에 깃든 호국 정신의 흔적을 찾아내라!’
국립묘지의 정면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거대한 분수이다. 이 분수의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는데, 어떤 분수일까?
“충성분수탑이야. 펄럭이는 태극기의 모습과 금방이라도 함성을 지를 것 같은 순국선열들의 모습. 너무나도 생생해서 눈을 뗄 수가 없구나.”
“제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있었던 일인데도 마음이 아파요. 얼마나 굳은 각오를 가져야 전쟁터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일까요? 존경하고, 또 감사해요.”
현충원으로 통하는 문, 현충문이 보인다. 현충원에 들어서기 전, 잠시 몸과 마음가짐을 단정히 하는 순간을 갖도록 하자.
“아름답고도 웅장해요. 저 안에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분들이 잠들어 계신 건가요? 빨리 만나 뵙고 싶지만, 그 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을래요.”
“오늘따라 어른스러운 모습인데? 벌써부터 이곳에 너와 함께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회원들의 성금으로 만든 종인 호국종. 이 종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고, 언제 울리게 되는 종인지 생각해 보자.
“호국종? 용감히 싸우다 전사하신 분들의 넋을 기리고, 또 앞으로의 평화를 기리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종이 아닐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매년 6월 25일이 되면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이 종을 치곤 한다고 들었단다.”
현충원은 한국전쟁의 순국선열들만을 기리는 곳이 아니다. 경찰충혼탑 앞에 서면 국민을 보호하는 경찰의 업적을 실감할 수 있을 것.
“너 아주 어렸을 때 꿈이 경찰관이었던 것, 기억나니? 그 때 나는 혹시 네가 위험하기라도 할까봐 반대를 했었지. 경찰에는 아주 큰 용기와 숭고한 정신이 필요한 것 같아.”
“맞아요. 위풍당당한 경찰관 아저씨들의 모습에 반했던 것 같아요. 이제 저 호랑이 두 마리가 그 분들을 지켜드리고 있으니, 조금은 안심이네요.”
현충원에는 그야말로 수많은 순국선열들이 안치되어 있다. 묘역을 찾아 그 풍경을 직접 눈에 담은 사람들에게 순국선열들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데?
“세상에, 숨이 막혀 오는 것만 같아요. 평소 이분들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제 태도를 반성하게 돼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나라를 지켜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 맞아. 평소에 이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지.”
현충원 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수많은 이름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이름 하나 하나에 한 사람 몫의 삶이 담겨 있으니, 가볍게 지나치지 말도록 하자.
“걸음이 점점 느려지는구나. 생각도 많아지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야.”
"저도 그래요. 어떻게 이곳에서 웃거나 뛰어다닐 수 있겠어요? 다음에 이곳을 찾을 때에는 꼭 꽃 한 송이를 준비해야겠어요.” “좋은 생각이구나. 꼭 그렇게 하도록 하자.”
국립서울현충원이 만장됨에 따라 국립대전현충원이 개원하였으나, 서울현충원 안에는 충혼당이 추가 건립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기 나무 너머로 보이는 저 건물이 바로 충혼당이군요.” “그래, 맞아. 서울에 고인을 모시기를 희망하는 유족들을 위해 건립했고, 2006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곳이란다.”
“현충원의 규모는 정말 엄청나군요. 이곳에 담긴 마음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겠지요?”
현충원 앞에는 ‘충효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이 있다. 이 길의 끝에서 또 하나의 특별한 장소를 만날 수 있다는데, 그곳은 어디일까?
“이 길을 쭈욱 따라가면 사육신 공원이 나온다고 해.” “사육신과 현충원을 잇는 길이라니, ‘충효길’이라는 이름이 정말 잘 어울리네요. 그럼, 다음 행선지는 그곳으로 정해 볼까요?”
“좋지. 산책하는 동안 생각이 많아질 것 같아.”
가끔, 우리가 바쁜 삶을 핑계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 수많은 분들의 고마움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트래블아이>와 같은 생각이 드신다면, 지금 당장 현충원으로 향해 보세요.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도 잠시, 그곳에 인사를 드리러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홀가분해질 테니까요. 이어지는 행선지, 사육신 공원은 어떤 곳일까요? 그곳에서도 애국정신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숭고한 넋이 잠들어 있는 곳
- 인천광역시 연수구 -
두 눈을 감으면 꿈결인 듯 몽롱한 기억이 혹은 마치 어제 겪은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것은 실감(實感)의 차이에서부터 오는 것으로, 겪은 것 같은 느낌 혹은 겪고 있음에도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의 차이 말이다. 현재 휴전을 실감하지 못하는 세대들도 연수구의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을 둘러보면 실로 전시상황임을 실감하게 되고 숭고한 영령들의 넋 앞에 절로 경건해진다. 그래서 제안하는 <트래블아이>의 이번 미션은 ‘숭고한 넋을 기리고 잠들어 있는 아픔을 실감하고 오라’입니다.
때는 1950년,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을 시작하는 최대 규모의 상륙작전이 계획된다. 작전명은 ‘인천’이 아니었을까?
“갑자기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왜? 그것도 애까지 데리고. 어렸을 때는 그렇게 무서워하더니.”
“아이 유치원 숙제 때문에. 그런데 할아버지가 인천상륙작전 참전용사라고 하지 않았어?” “그래, 그래서 너 어렸을 때 종종 데리고 왔었는데 벌써 새까맣게 까먹은 거니?”
굳은 표정의 수호비와 사진자료들, 위압적인 전투기와 탱크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저 그것들에 당시의 아픈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면 된다.
“이곳은 여기에서 지금 우리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열심히 싸워주신 분들을 기리는 곳이야. 그러니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단다.”
“그렇지만 여긴 너무 조용하고 무서운 탱크도 보이는 걸요? 저기 무서운 표정의 아저씨도 그렇고.”
아이가 조몰락거리던 손을 번쩍 들며 묻는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냐고. 그렇게 아이는 점점 실감이 나나보다. 그럴 땐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해요?”
“글쎄, 그러고 보니 엄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네, 아마 이때처럼 지금도 열심히 나라를 지키고 있는 멋있는 군인아저씨들이 계시니까 안전할거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아이가 낯선 할아버지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이내 여기에 할아버지가 보인다고 한다.
“어! 엄마, 할머니! 여기 할아버지가 보여요.” “어디보자, 엄마는 잘 안 보이는데?”
“잘 보세요. 저기서 열심히 싸우고 계시는 거 안보이세요?” “그럼 눈을 감고 마음으로 찾아볼까?”
두 눈을 감으니 실제 겪은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웅장한 총성들이 귓가에 맴돈다. 더불어 호국영령들의 얼굴도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엄마, 울어요? 왜 울어요? 엄마도 무서운 거예요?” “아니, 갑자기 엄마의 할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그래. 저기 사진들 보이지?
전쟁이 났을 때 상황이란다. 저기에 엄마의 할아버지가 계셨어. 그래서 너무 자랑스러워서 눈물이 나오는 거야.”
가슴이 저민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리라. 평소에는 실감하지 못하였기에 더 먹먹한 것일 것이다. 생생한 흔적들이 눈앞에 펼쳐져 그만 눈물이 맺힌다.
“어쩐지 전쟁이라는 단어나 평화에 대한 의미조차 멀게만 느껴졌는데,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줄 몰랐어요.”
“그래, 우리 같이 참전유공자 가족들도 그런데 요즘 세대 사람들은 오죽하겠니.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도 발길 한 번 않는 이들도 많다더구나.”
고개를 숙여 묵념을 한다. 아이도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묵념을 한다. 마음을 다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꼭 감은 두 눈과 앙다문 입술이 마음을 대신하는 듯하다.
“자, 이제 묵념하고 가자. 눈감고 호국영령에게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다하는 거야.”
“무슨 생각했어?” “전쟁나지 않게 해달라고요. 그리고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요.”
자유와 평화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영령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눈으로 보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 마음을 다하여 기리는 것이 아닐까?
“아이 숙제 덕분에 새로운 시간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매번 무슨 날이면 텔레비전으로 슥 보고 지나갔는데, 이렇게 할아버지께서 가까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에요.”
“그래, 이렇게 잠잠히 잠들어 있는 아픔을 조금이라도 실감하고 넋을 기리는 것만으로 아이에게도 충분히 뜻 깊은 시간이 되었을 게다.”
땅이 요동치고 하늘이 울리던 그날의 기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집니다.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나 흉터는 남을지언정 얼룩은 점점 옅어지겠지요. 그렇듯 기억도 점점 희미해집니다. 침략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위기 앞에 목숨 바쳐 민주주의를 지켜낸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이곳에서 가끔씩이라도 우리가 기억해야 하며 그 뜻을 소중히 기리고 굳은 입술과 표정으로 전달되는 그 단단한 마음을 실로 실감하고 느끼고 돌아오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