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을 떠나온 것이 벌써 햇수로 30년이 넘었다. 언젠가 다시 찾아오리라 마음먹었던 곳.
유난히 마당이 넓은 집이었다. 자그마한 나무들과 내 키보다 훌쩍 큰 담장에는 담쟁이넝쿨이 올망졸망 매달려 있었다. 담장 한 편에는 키가 자랄 때마다 그어놓았던 선이 있다. 담장을 뒤로하면 아버지가 시원하게 등목을 하시던 물이 졸졸 흐르는 수돗가가 있다. 아버지가 시멘트를 발라놓으시고는 밟지 말라고 그렇게 주의를 주셨는데 돌아다니다 발자국을 쾅하고 박아놓은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사 가야겠어.
그때에 아버지는 낮고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지만 꽤 울림이 있었다. 아버지는 조용히 엄마에게만 말한 이야기였지만 나와 우리 언니도 우리가 곧 이사를 가야 했음을 알았다. 나는 집을 떠난다는 아니, 동네를 떠난다는 상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언니가 왜 불안해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언니 왜 그래?”
“왜긴, 이 바보야. 우리 이사 간다잖아. 그럼 이 집에서도 못 살고 친구들도 못 만나게 될 거야.”
그랬다. 왜인지는 몰랐지만 아빠와 엄마가 집을 떠나야 했기에 나와 언니도 집을 떠나야 했다. 유난히 마당이 넓은 집이었다.
우리 집 뒷동네에는 자그마한 동산이 있었다. 동산에 올라가면 졸졸졸 실개천이 흐르고 풀피리 소리가 메아리쳐 울렸다. 졸졸졸 실개천이 흐르고 풀피리 소리가 메아리쳐 울렸다. 늙은 수탁의 울음소리에 눈을 뜨고 얼룩백이 황소의 게으른 울음소리에 잠이 들었다.
서울에 사는 아이들은 시골 근처에만 오면 똥냄새난다고 코를 틀어막았다. 여기에 지내면서 똥냄새라고 여기지 못했는데, 서울 친구들은 여간 깍쟁이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똥냄새가 아니고 고향냄새인 줄도 모르는 서울깍쟁이들이었다.
서울로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 한동안은 마당이 넓던 우리 집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길을 잃었고 울고 있었다. 낯설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분위기에, 이제는 남의 집이 되어버린 우리 집을 보고 나는 울었다. 꿈에도 잊히지 않는 우리 집이었다.
언젠가 꿈에서 나는 초인종을 눌렀고 그곳에서 나온 정말 그 집 주인에게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우리 집이었어요. 라고 하며 운 기억도 난다. 지금도 가끔 꿈을 꾸지만 꿈속에만 가면 나는 항상 다섯 살 그때의 어린 나로 돌아간다. 지금은 비록 울지는 않지만 길을 한참 헤매다 찾곤 한다.
이제야 왔다. 그곳에 여전히 실개천이 졸졸졸 마을을 휘돌아 나갔고 얼룩백이 황소는 게으르게 울었다. 담쟁이넝쿨은 내 키보다 훌쩍 큰 담장 전체를 휘감았고 여전히 수돗가의 발자국은 깊게 패여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꿈속에서도 잊히지 않았던 곳.
마당 넓은 집에 돌아왔다.
약간은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큰기러기의 보드라운 깃털 사이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다. 이제 가을도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강가는 아직 활기차다. 논병아리 가족들이 줄지어 쪼르르 헤엄치고 있고 청둥오리들도 무리지어 강가를 누볐다. 강가에서 유일하게 혼자인 희망이는 강가를 빙빙 돌며 헤엄쳤다. 가족들이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희망이는 날개를 괜히 접었다 폈다 하며 빨리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희망이는 큰기러기이다. 일찍이 가족들과 이별한 희망이는 강가에서 늘 외롭게 떠돌았다. 간혹 친구들을 사귀기 하였지만 그런 친구들은 금세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다. 그래서 희망이는 더욱 외로움에 자신을 가두기도 하였다.
별이 쏟아질 듯한 밤이 오자 희망이는 샛노란 달님을 보며 어김없이 가족들을 그리워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찬바람이 제법 쌀쌀해졌고 강가를 누비던 논병아리 가족들과 청둥오리도 서로 몸을 맞대며 추위를 견뎠다. 이제 겨울이 온 것이다. 외로운 희망이는 몸을 맞댈 가족도, 친구들도 없었다. 또 홀로 날개를 펄럭이며 강가를 빙빙 돌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그때 한 무리의 오리 떼들이 날아왔다. 언뜻 봐도 어마어마한 수의 오리 떼들이 날개를 펼치며 강가로 내려왔다. 희망이도 오리 떼들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수는 처음이었다. 큰 눈이 더욱 휘둥그레져 오리 떼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많은 오리의 무리에서 유난히 초록색의 멋진 머리를 가진 오리 한 마리가 희망이에게 다가왔다. 희망이는 자기도 모르게 한걸음 물러섰고 초록색의 머리를 가진 오리는 희망이에게 자신은 가창오리라고 소개를 했다. 희망이도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고 가창오리는 잘 부탁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늘 홀로 강가를 헤엄치던 희망이는 무리지어 헤엄치는 가창오리가 부러웠다. 일제히 하늘을 검게 수놓는 모습도 부러웠다. 그렇지만 가창오리들은 봄이 지나면 다시 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혼자가 될까 두려운 희망이는 가창오리와 친해지고 싶었지만, 또다시 상처를 받을까 봐 가창오리 주위만 맴돌 뿐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렇게 선뜻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희망이를 위해 가창오리는 갈대를 꺾어 피리도 불어주고 예쁜 꽃을 날개에 달아주기도 하였다. 어느새 마음을 열게 된 희망이는 가창오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멋지게 하늘을 날기도 하고 누가 더 빨리 헤엄칠 수 있는지 내기도 하였다. 붉은 노을이 스르르 하늘을 물들일 때 일제히 하늘을 수놓는 가창오리의 춤사위를 부러워하던 희망이도 파르르 날아올라 그 무리에 슬쩍 껴보기도 하였다. 시간이 흘러 못 보던 텃세들과 나그네새들이 날아와 친구가 되기도 하였다.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던 희망이었지만 가창오리와 함께 지내면서 먼저 친구가 되자고 손을 내밀기도 하였다.
그렇게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아니, 봄의 마지막이 왔다. 이제 가창오리들은 다시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할 때였다. 희망이는 슬퍼졌다. 가창오리의 주변을 빙빙 맴돌 뿐이었다. 가창오리는 함께 떠나자고 했지만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희망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떠나야 할 때가 왔다. 코끝이 찡해지고 날개가 떨려왔지만 희망이는 입을 꾹 다물며 떨어지려는 눈물을 삼켰다. 어젯밤 달을 보며 가창오리가 떠날 때 울지 않겠다고 가족들에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웃으며 가장 멋진 모습으로 떠나보내 주겠노라고 다짐을 한 희망이는 가창오리에게 잎사귀로 만든 멋진 나비넥타이를 선물하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가창오리도 희망이와의 추억을 잊지 않겠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라는 인사를 했다.
가창오리는 힘차게 날아올랐다. 가창오리가 날아오르자 나머지 오리들도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희망이를 위한 마지막 군무를 보였다. 붉게 물든 하늘위로 검은 가창오리 무리가 높게 날아올랐다가 아래로 내려오더니 희망이의 모습을 하늘에 수놓았다.
“안녕! 희망아, 가을이 되면 다시 돌아올게. 그때까지 건강해야 해!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희망이도 하늘을 보며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가창오리 떼들이 먼 길을 떠나고 나서야 희망이는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잘 가! 가창오리야! 보고 싶을 거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희망이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가창오리와 다시 만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창오리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희망이의 아름다운 날들은 계속될 것이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환승을 위해 모란역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사거리 너머로 시끌시끌한 장터가 눈에 띄었다. 오늘이 4일이니 모란장이 선 모양이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기일 전후로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이곳을 지나지만, 모란시장이 눈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는 줄곧 모란시장 얘기를 하셨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종종 나를 데리고 시장 구경을 가셨다는 것이었다. 너무 어렸을 때라 그런지 내 머릿속에는 모란시장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지만,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인지 나도 모르는 새에 길을 건너고 말았다.
집 근처에 대형 할인점이 생긴 뒤로 전통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것도 처음이었다. 고무줄 바지와 중국제 그릇들, 가짜 골동품, 싸구려 길거리 간식 등 식재료를 제외하고는 없는 이곳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지를 물었더니, 어머니는 웃으며 ‘다 사람 보러 가는 거지, 뭐.’ 하셨다. 구수한 음식 냄새와 함께 할아버지들의 사투리,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을 보러 온다더니, 정말 동네잔치 같은 느낌이었다. 개고기로 유명한 모란시장이지만, 장날이라 그런지 애완 강아지며 고양이, 토끼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사람이 신기한지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이 귀여워 그 앞에 한참을 서 있는데, 갑자기 시끄러운 뽕짝 소리가 들려왔다.
“일어서 보소. 품바 왔네, 품바!”
노점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던 할아버지 몇 분이 일어서시더니 음악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하셨다. 말로만 듣던 품바 공연이 펼쳐진 모양이었다. 색동옷을 입고 연지곤지를 찍은 아저씨들이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것을 구경하던 나는 어머니와 함께 모란장을 방문했던 기억 중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홉 살짜리의 눈에 비쳤던 품바 공연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넋을 쏙 빼놓을 만큼 시끄러운 것이었다. 저만치서 들려오는 흥겨운 가락에 얼마나 넋이 빠졌던지 나는 그만 어머니의 손을 슬그머니 놓고 공연단 앞으로 달려가고 말았는데,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으면 될 것을 또 어머니를 찾아 이리저리 헤맸었다. 삼십여 분을 헤맨 끝에야 울음이 터졌고, 근처에서 사탕을 파시던 할머니 한 분이 나를 얼른 안아 올렸다.
“왜 그러냐, 아가. 엄마 잃어버렸누?”
나는 고개만 끄덕거리며 엉엉 울었다. 우는 애 달래는 데 옛날 얘기만 한 게 어디 있겠는가. 할머니는 ‘옛날 옛날에 말이야’ 하며 이야기의 서막을 여셨다. 옛날 옛날에 북에서 온 사람 하나가 북한의 산 이름을 따서 ‘모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었다.
“모란봉도 모란봉이지만, 제 어미가 그리워서 어미 모 자를 쓰려고 했다고도 한디야. 딱 이 자리에서 너처럼 ‘엄마, 엄마’ 하며 울었단 거야.”
다 큰 어른이 엄마를 부르며 우는 모습이 우스워 울음을 그친 나는 할머니가 물려주신 사탕을 빨며 얌전히 어머니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찾아낸 어머니는 내게 매운 꿀밤 한 대를 먹이면서도 사탕을 봉지 가득 담아 손에 들려주셨다.
품바 공연이 끝나고 휑해진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줄곧 모란시장 얘기를 하셨다.
“거기 말이야, 오리도 팔고 병아리도 팔고 네가 좋아하는 커피 사탕도 팔았지.”
내가 어머니만큼 자란 다음에도 어머니는 가끔 비닐봉지 가득 커피 사탕을 사 오셨다. ‘어휴, 엄마는 왜 자꾸 시장 물건을 사오고 그래.’하고 나는 가끔 어머니에게 되려 짜증을 내기도 했다. ‘다 사람 보러 가는 거지, 뭐.’ 하며 멋쩍게 어머니의 모습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았다.
선농제는 농업 신인 신농과 후직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다. 선농제는 제왕의 왕도정치를 실천적인 권농책으로 강조해 일찍이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음력 1월인 맹춘에 지냈다고 했는데 지금은 너무 추워 파종을 못하기 때문에 개구리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뒤의 좋은 날을 골라 시행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경칩이 지나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임금님께서 곧 친경(임금님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하시는 날이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다. 올해는 음력 2월 9일 춘분에 맞춰 친경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어 궁궐에서는 임금님 행차에 앞서 이것저것 준비에 바쁘다.
임금님께서는 지난해 춘경을 하시며 상언과 격쟁을 열어 이야기를 직접 들으셔 백성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상언은 일반 백성들이 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글로 호소하는 것이고, 격쟁은 임금의 행차 중에 징이나 꽹과리를 쳐서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는 것인데 임금님께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문제 해결을 지시하기도 했다.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가뭄과 홍수를 겪고 있어 백성은 백성대로 굶주리고, 임금은 임금님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부덕 때문이라며 눈물을 보이시는 날이 많다. 그럴 때마다 임금께서는 신하들에게 거리낌 없이 말하라며 직언을 요청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민생을 살피기 위해 궁을 나서기도 하신다고 한다.
드디어 선농제의 날이 다가왔고 임금께서는 선농단이 있는 제기동으로 행차 하셨다. 올해도 가뭄이 심했다. 임금께서 하문하시길 “가뭄이 너무 심하다. 소나기가 내렸지만 안개가 끼고 흙비가 왔을 뿐이다. 기후가 이렇듯 순조롭지 못하니 벼농사 형편이 걱정되는구나.”라 셨다.
청계천을 따라 행차가 이어지고 동대문을 지나심에 들녘을 돌아본 뒤 말문이 막히신 듯. “날이 가물어 지력이 약해진 것을 보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원래 이 땅은 비옥한 편인가, 메마른 편인가?”라면 대언에게 물었다. “원래 이 땅은 메마른데다가 가물어서, 작년 홍수로 농사가 잘 안됐습니다.” 그러나 대언을 거짓을 고한 것이다. 원래 비옥한 땅인데 침통한 임금님의 용안을 본 그가 거짓을 아뢴 것이다.
선농단에 도착하신 임금님께선 풍요를 비는 선농제를 지내시고 하늘을 우러러 비를 내려 주십사 기우제를 지내셨다. 임금께서는 이농기의 가뭄과 여름철 홍수로 고통 받는 백성들을 생각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며 하늘에게 비를 내려 달라 빌고 또 빌었다. 선농제가 있는 오늘도 봄 가뭄으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선농제, 기우제가 끝나고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러 임금께서 서둘러 환궁해야 할 시간이 됐다. 임금님의 가마가 움직이는 순간, 거짓말처럼 하늘에서는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메마른 땅을 적셔주는 굵은 빗방울로 바뀌어 있었다. 모든 백성과 신료들이 뛸 듯이 기뻐하며 너나 할 것 없이 춤추고 흥에 겨웠다. 하지만 많은 비로 땅이 질어져 임금님의 가마를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겼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환궁하기로 했고 임금님의 수라상을 올릴 시간이 됐다.
하지만 임금님과 대신들 이외에 먹거리가 부족해 군관들이나 궁녀, 의원 등과 같은 궁인들은 먹을 게 없었다. 수라상을 받은 임금께서는 작년 흉년으로 고통받는 백성과 궁인들이 배를 곪고 있는데 어찌 혼자만 수저를 들 수 있느냐며 수라상을 물리라 하셨다. 어의와 대신들은 임금님의 하면을 거둬 달라 간청했다. 임금님께서는 모두가 같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셨지만 인근 백성들도 배를 곪고 있는 춘궁기로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때 임금님은 선농제에 풍년을 기원하며 쓴 소를 보시고는 그럼 소를 잡아 물어넣고 끓여 다 같이 허기를 달래자 하셨다. 이윽고 대신과 많은 궁궐 사람들, 굶고 있는 백성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쇠뼈와 고기를 삶아낸 국물에 밥을 말아 많은 사람들이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이 일이 있고 백성들은 임금님에 대한 칭송이 더 높아졌다. 그 후 백성들을 생각하며 선농제를 지내고 경작에 쓰인 소를 잡아 선정을 베푼 임금님의 높은 애민정신을 생각하며 그 음식을 선농탕이라고 불렀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설렁탕이 됐다. 어떤 사람들은 소를 잡아 설렁 설렁 끓여 설렁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설렁탕은 끓는 물에 뼈와 고기가 오랫동안 우러나야 진한 맛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설렁탕은 임금님의 백성을 굽어 살피신 마음이 베여있어 더욱 진한 향기가 나는 것일 것이다.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는 내게 너는 놀아달라며 짓궂게 내 품에 파고든다. 읽던 책은 마저 읽고 나가자고 해보아도 이내 무릎을 베고 눕더니 무슨 내용을 읽느냐며 귀찮게 군다. 취미로 플로리스트 과정을 배우고 있던 차라 책을 고를 때에도 이런 장르로만 손이 간다.
꽃말에 관한 책을 읽고 있던 중이다. 꽃말이라고 하면 10대의 여린 감수성에 내게 맞는 꽃말은 어떤 것일까 찾아본 것 이외에는 없었다.
“음~ 장미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아마 빨간 장미가 아닐까 싶어! 빨간 장미는 사랑, 절정, 기쁨, 아름다움이고 하얀 장미는 순진, 존경, 순결이래. 노란 장미는 질투라네!”
“너는 질투가 많으니까 노란 장미가 딱 잘 어울리겠다.”
그러고 보니 너는 장미꽃 한번을 사준 적이 없다. 그 흔한 장미꽃 한 송이도.
“꽃꽂이 하면서 예쁜 꽃들도 많이 봤겠다. 그치? 그럼 넌 어떤 꽃이 제일 좋아?”
“글쎄. 꽃은 다 너무 예쁘고 각자가 가진 매력이 다 달라서. 근데 오늘은 장미!”
“오늘은 장미? 뭐가 그래. 그럼 내일은 또 다른 꽃으로 바뀐단 말이야?”
“그럴 수도 있지 뭘. 어차피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들도 다른데 사시사철 같은 꽃만 좋아하라는 법 있어? 오늘은 수요일이니까 빨간 장미!”알아들었을까? 이렇게까지 빨간 장미를 받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데 못 알아 듣는다면 정말 미련 곰탱이라고 불러줄 것이다.
이야기가 금세 또 싫증이 났는지 내가 보고 있는 책을 뺏어가더니 나가자고 성화다. 나가면 어차피 밥, 커피, 영화. 영화, 밥, 커피의 반복일거면서 굳이 왜 나가서 시간을 보내야 하냐고 물으려다 그만 둔다.
“어디 갈 건데?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그래서 이렇게 보채는 거야?”
“그냥. 네가 가면 좋아할 만한 곳이 생각이 나서.”
남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온 곳은 풍암호수 수변공원이었다. 그곳은 때마침 장미축제가 한창이었다. 공원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은 장미꽃들의 지릿한 향기에 금세 매료되었다. 그곳에는 연인, 가족, 친구 등 다양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더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장미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문득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가 떠올랐다.
“여기 있는 장미를 다 모으면 백만 송이가 될까?”
“백만 송이? 글쎄. 감이 안 잡히네. 그런데 아니지 않을까? 수백만 송이면 그게 다 얼마야?”
백만 송이 장미의 노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했다. 한 여자를 향한 구애의 도구로 전 재산을 털어 백만 송이 장미를 선물한 남자. 여자는 백만 송이 장미가 주는 아름다움만큼 황홀했을까?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포토존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생각에서 일까 포즈를 취해가며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확실히 꽃이 예쁜 곳에는 사람이 많았고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차례가 돌아왔다.
색색 깔의 장미로 둘러싸인 터널 같은 곳에서 브이자를 그렸다.
천천히 장미꽃을 둘러보는데 장미의 종류가 이렇게 많았나 싶기도 하고 장미처럼 생기지 않은 장미꽃도 많았다. 프린세스 오브 모나코, 코사이, 람피온과 같이 이름들도 모두 귀족적이었다.
“이름들이 하나같이 다 멋있네. 마치 공주님 이름 같아.”
“그럼 얘한테도 예쁜 이름 하나 지어줘봐.”하며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뭐야. 갑자기?”
“뭐긴, 네가 오늘은 빨간 장미가 좋다며. 그래서 준비한 거지. 얼른 이름이나 지어줘.”
“쳇, 둔감한 척 하더니만.”
그렇다면 이 장미의 이름은 빨간 장미를 위하여!
딸아이가 또 무릎이 다 까져서 왔습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그랬는지 빨갛게 살갗이 찢어져서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들어옵니다. 흐르는 물에 상처를 씻어주고 바람을 호호 불어주었지요. 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다시 생기를 되찾습니다.
어릴 적 넘어져 무릎이 다치거나 상처가 나면 우리엄마도 반창고를 붙여주지 않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저 깨끗한 물에 씻고 소독을 하여 바람을 쐬어주는 것이 제일이라고 하셨지요. 여섯 살에 나는 우리 엄마가 계모인가 생각한 적이 있답니다. 나도 친구들처럼 예쁜 곰돌이 반창고를 붙이고 싶었는데 엄마는 상처가 덧난다며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독약을 발라주고 따가울까 봐 호호 불어주는 모습을 보고 우리 엄마로 확신을 하긴 했지만요.
사실 상처가 난 곳에 물이 닿고 소독약이 닿으면 따갑기 때문에 반창고를 붙이는 것인데 엄마는 그것도 모르나 보다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에 씻어 치료하는 것은 할머니 때부터 엄마까지 쭉 이어져 내려온 치료법으로 다 이유가 있다고 했지요.
옛날 신라와 백제가 전쟁 할 당시 싸움에서 크게 다친 아들의 약을 애타게 찾던 어머니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백설이 온 땅을 뒤덮은 곳에 날개를 다친 학 한 마리가 눈이 녹은 물웅덩이에 날개를 적셔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아들의 상처를 물에 담그게 하여 치료하였다는 전설이 있다고 말이지요. 엄마는 옛말 그른 것 하나 없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들은 체 만 체하였답니다.
엄마는 할머니와 동네에 아주 오래된 온천에 자주 가셨습니다. 전설이야기도 여기에서 들은 이야기이지요. 동네에 으리으리하게 세워진 좋은 찜질방들도 많은데 엄마랑 할머니는 꼭 유성온천으로 가셨답니다. 특히 몸이 여기저기 쑤신다거나 마음에 근심이 쌓이면 어김없이 온천을 찾으셨지요. 한참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 먼저 나가겠다고 투정을 부리면 엄마는 온천을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해지는 것처럼 마음도 개운해진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마음에 근심이 물에 씻겨 내려간다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친구들이랑 놀기보단 엄마랑 온천에 가는 일이 더 잦았습니다. 엄마는 꼭 수고했다고 온천에 가 그동안의 몸 고생, 마음고생을 다 씻겨 보내라고 하셨지요.
지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가 더 그립습니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온천에 갔던 날이 떠오릅니다.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으시고는 말씀하셨다.
"그저, 몸이나 마음이나 같은 법이다. 상처가 덧날까 꽁꽁 싸매고 있으면 그 속이 더 곪아 터지는 법이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셨지요.
어렸을 때 나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뜨거운 물에 몸을 숨이 턱턱 막히는데 왜 그렇게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지. 그런데 지금 이렇게 엄마를 그리워하며 내 딸아이의 손을 잡고 유성온천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엄마의 말에 일리가 있나 보다 생각이듭니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내 딸아이도 나를 기억할까요? 문득 엄마가 보고 싶어지는 날입니다.
주말인 오늘은 승호가 가장 기다리는 날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아빠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지요. 눈을 뜨자마자 승호는 아빠에게 달려갑니다. 오늘의 목적지가 궁금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빠는 어떤 영문인지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아빠 다리에 매달려도 보고 힌트라도 달라고 졸라보아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그저 잠자코 아빠만 믿고 따라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궁금증과 기대에 한껏 들뜬 승호는 연신 싱글벙글하며 동생인 연호에게 자랑도 늘어놓았습니다. 드디어 출발입니다. 아빠 차에 탄 승호는 엄마와 동생에게 인사를 한 뒤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는 바람에 승호는 그만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출발한 뒤 무려 3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잠에서 깬 승호는 도로 이정표를 보고 강원도 태백에 와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승호는 속으로 오늘 아빠와 둘이 등산도 하고 맛있는 한우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 그런데 도착한곳은 태백산도 아니고 한우고기집도 아닌 석탄박물관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급격히 실망한 승호는 투덜거리고 싶었지만 아빠가 목적지도 알려주지 않고 여기로 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일단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책에서만 보던 광부들이 캄캄한 동굴에서 석탄을 캐는 모습과 그 시대 광부들의 삶을 모형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형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아빠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옛날 옛날에 승호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니까 아빠가 딱 승호만한 나이였을 때였어.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승호 할아버지는 여기 보이는 사람들처럼 석탄을 캐는 광부셨어. 할아버지도 이렇게 검은 때가 온 몸을 뒤덮어도 열심히 일하셨지. 우리 승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삼겹살 있지? 그것도 사실 이렇게 하루 종일 탄가루에 뒤덮여 있는 광부들이 검은 가루가 씻겨 내려가라고 먹었던 음식인거 알았니?
그리고 아주 가난하던 시절 가족들의 끼니와 교육을 위해 앞이 보이지도 않는 어두컴컴한 지하 막장에서 땀 흘려 일하셨단다. 할머니는 노란 양은 도시락에 부족하지만 정성스레 담은 도시락을 매일 싸드렸어.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지. 달그닥 달그닥 빈 도시락 통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도 반가운 마음에 버선발로 뛰어나가셨던 모습이 생생해. 석탄 캐는 일이 목숨을 내놓고 일할만큼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도시락 소리가 들려야만 안심을 하곤 했었지. 승호 넌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정말 멋진 일을 하시던 분이셨어.”
이야기를 하는 아빠의 눈이 잠시 붉어졌습니다. 개구쟁이 승호도 이야기를 듣고는 얌전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습니다. 아빠가 왜 오늘 다른 곳이 아닌 태백에 석탄박물관에 왔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 승호는 4시부터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두 시간 뒤에 아빠가 회사에서 돌아오실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승호는 아빠와 석탄박물관에서 들었던 아빠의 이야기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아 아빠도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빠 몰래 승호가 맛있는 저녁밥을 만들어드리기로 마음먹은 것이지요. 서툰 솜씨지만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아빠가 들어오셨습니다. 으쓱한 마음에 승호는 아빠에게 달려가 품안에 쏙 안기며 아빠를 위한 멋진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삼겹살에 돼지고기 김치에 돼지껍데기 등 돼지고기로 가득한 한 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빠 귀에 대고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아빠, 아빠도 할아버지처럼 정말 멋진 아빠에요!”
아빠도 승호도 정말 푸짐하고 따뜻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이 어디든 산을 오르는 것이 미연은 영 못마땅하다. 서울의 많고 많은 곳 중에 산이라니. 미연은 혀를 끌끌 찼다.
“너도 참 너다. 이 넓은 서울에 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동네 산이니?”
“왜, 좋잖아. 자 공기한번 쭉 마셔봐. 이렇게 맑은 공기를 돈 안내고 마시는 걸 감사해야해. 그리고 멀리 가지 않고 등산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아!”
“웃겨. 너랑 주말을 보낸다고 온 내가 바보다.”
미연은 투덜거리면서도 연수의 뒤를 곧잘 쫒아온다. 리본 끈으로 길을 안내하는 곳곳에는 이야기가 있는 관악산 둘레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아, 힘들어. 원래 이렇게 힘든 코스였어? 동네산이 뭐 이래?”
“여기만 넘어가면 내리막길이야. 조금만 힘내. 너 다이어트 한다며, 한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지방 타는 소리가 들리지~ 안 들려?”
“놀리냐, 힘들어 죽겠구만. 물이나 좀 줘봐.”
관악산 둘레길 제2구간은 물과 바람 공기가 참 시원했다. 작고 아담한 계곡을 지나면 장승과 솟대가 등산객을 반긴다. 한여름이면 여름의 냄새가 나고 가을이면 또 가을의 냄새가 나는 곳이다. 흙길을 걷다보면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번갈아가며 나왔다. 오르막을 오르다 지칠 즈음이면 내리막길이 나와 쉼을 주었고 땀이 식을 만하면 다시 오르막길이 나왔다. 작은 들꽃은 휴식을 함께 기뻐해주기라도 하듯 아담하게 피어있다.
희진은 미연이 올라올 수 있도록 보폭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뒤에서 미연의 등을 살짝 떠밀어주기도 하며 미연의 힘을 나누고자했다.
“어! 다람쥐다. 여기 다람쥐가 다 있네.”
“그러게, 귀엽다.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소풍 온 어린애들 같아.”
“소풍? 소풍이라면 소풍이지. 점심으로 김밥도 싸왔으니까, 제대 론데?”
미연과 희진은 마주보고 웃었다.
관악산 제2구간은 돌산 조망점에 올라 서울시내를 바라 볼 수 있으며 인근 호수공원도 둘러볼 수 있는 코스라고 했다. 미연과 희진도 곧 돌산 조망점 지점에 도착하였다. 한숨 돌리고 큰 바위에 털썩하고 주저앉으니 서울시내가 한눈에 다 담겼다. 이곳이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뭉친 다리근육을 털고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오이를 꺼냈다.
“경치는 좋네.”
“거봐, 따라오길 잘했지? 땀 흘리고 먹으니까 더 맛있는 것 같다. 그치?”
“이래서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걸까?”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턱 끝까지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려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공기가 좋아서 오는 사람도 있고, 바람을 좀 더 많이 느끼고 싶을 수도, 그냥 산이라는 것 자체가 좋아서 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야기가 있는 둘레길은 친구와, 가족과 연인 등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의 산을 오르는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산이 주는 행복과 시원함은 각자의 추억대로 되가져갈 것이다.
누군가 산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있다고 했다. 흙길로 걷기도 했다가 딱딱한 아스팔트를 걷기도 하며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평지를 걷다 내리막길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곳에 바람도 있고 물도 있고 나무도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구간까지 정복하고 나니 석수역이다. 꽤나 긴 코스를 마치고 내려오니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꽤나 알찬 주말을 보낸 것 같은 뿌듯함과 쾌감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그저 그런 주말이었다면 집에서 밀린 잠을 잔다거나 텔레비전이나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50분.
“드디어 도착. 음, 막걸리에 파전 어때?”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