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빠! 이번에는 진짜 맛집이라고 했잖아!”
한바탕 화를 내려다 오빠의 허탈한 표정을 보고 그만두었다. 그래, 또 허탕이었다. 국밥 한 그릇 먹자고 부산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오빠도 나도 날이 갈수록 짜증만 더해갔다. 사건의 시작은 한 달 전, 부산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갔다가 그 유명한 서면 돼지국밥을 맛보고 만 것이었다.
오빠의 제대 기념으로 남매끼리 떠났던 기차 여행. 하지만 여행 초반부터 예산을 초과해버린 탓에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이동하다 내려서 사진만 찍는 스파르타식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부산의 명소란 명소는 다 돌았지만, 배가 고프고 지치니 즐겁지가 않았다.
그 때 내가 묘안을 내 놓았다. 서면에 살고 계시는 외할아버지가 생각 난 것이다. 외할아버지를 깜짝 방문한다면 끼니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용돈도 넉넉히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먼저 연락을 드려 볼 것을 그랬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보는 손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정도로 냉장고를 채워 두지 않으셨던 것이다. 곤란해 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우리도 덩달아 초조해졌다. 할아버지는 고민 끝에 우리를 서면 시장으로 데리고 가셨다. 친구 분께서 하시는 유명한 국밥 집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구, 그 꼬맹이들이 벌써 이만큼 큰 거여?”
처음 보는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셔서 반갑게 우리의 손을 잡으셨다. 오빠도 나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친구 분께서는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할아버지 댁의 바로 옆집에 살고 계셨다고 한다. 대여섯 명의 직원들이 있는데도, 그 할머니께서는 우리에게 손수 국밥 두 그릇을 말아다 주셨다.
“순자 그 할망구가 지금까지 살아만 있었어도 이 양반이 여기까지 걸음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여. 그 할망구는 뭐한다고 그렇게 일찍 가 버렸대.”
넋두리 반, 국밥 반이었다. 그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와 절친한 사이셨던 모양이었다. 친손자를 보듯 따뜻한 눈길에 마음이 참 편해졌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 때 먹은 그 국밥이 정말이지 너무도 맛이 있었다.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서울로 돌아온 오빠와 나는 그 때 그 맛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에 온 서울의 돼지국밥 집을 다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다대기와 부추를 넣는 것은 물론 고기 위에 새우젓까지 올려 정석대로 먹었지만, 부산에서 먹은 그 맛이 나지를 않았다.
엄마는 기대에 가득 찬 모습으로 집을 나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잔뜩 실망 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오는 우리들의 모습이 퍽이나 재미있으신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엉뚱한 일을 많이 벌이기로 소문난 우리 남매지만, 이번엔 유독 별나다고 하셨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빠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오늘 밤 고백할게 너와 함께 돼지국밥을 먹고 싶다 부산으로 떠나자’라는 가사의 노래까지 틀고 있었다. 정말 부산으로 가야만 그 돼지국밥을 다시 먹을 수 있는 걸까. 국밥이라 우습게 봤는데 도무지 그 맛을 다시 볼 수가 없으니, 괜한 집착만 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밤 엄마는 새벽 내내 부엌을 들락거리셨고,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식탁 위에 돼지국밥이 차려져 있었다. 아마 밤새 돼지 뼈를 삶으신 모양이었다. 집에서 돼지국밥이라니, 이게 웬 일인가 했더니 엄마가 나고 자라신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
“할머니가 가르쳐 주신 지 하도 오래 돼서, 제 맛이 나려나 모르겠네.”
엄마는 멋쩍으신 듯 웃으셨지만, 우리의 칭찬을 은근히 기대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오빠와 나는 한 숟갈을 떠먹고는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가 찾던 그 맛이네.”
솔직히 말하자면, 엄마가 만든 돼지국밥의 맛보다 부산에서 먹은 돼지국밥이 훨씬 더 맛있었다. 그런데 돼지 뼈를 삶고 옮기다 데셨는지 엄마의 검지가 빨갛게 부어올라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돼지국밥 찾기를 그만두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진부한 말처럼, 맛의 비결은 역시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휴학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새내기로 맞았던 대학의 첫 봄은 너무 빨리 지나가버렸다. 남들도 다 겪는다는 미완의 러브스토리도 두어 개 생겼고, 아주 많은 사람들과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벚꽃 날리는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이야기를 하던 꿈같은 지난 봄. 올해도 캠퍼스에서 봄을 맞을 수 있었는데, 연년생인 동생이 사립 명문에 턱걸이로 합격하며 나는 휴학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동생의 학비를 위해 내 학업을 잠시 접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카페에서 시작한 파트타임의 아르바이트는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흰색과 푸른색으로 꾸며진 심플한 내부에 하얀 의자들이 놓인 카페는 내 취향에 꼭 맞는 곳이었고, 사장님께 라떼 아트를 배우는 재미도 쏠쏠했다. 직장인들이며 대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점심시간 대를 제외하고는 손님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별다른 사건 사고도 없었다.
문제는 이 사건사고가 없는 점이었다. 스물한 살이 맞는 봄 치고는 너무도 단조로운 이 봄. 동생의 SNS 페이지에 올라오는 대학 생활의 단면들을 감상하며, 왠지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여기에서 샷을 내리고 휘핑크림을 얹고 있고, 동생은 웃고 떠들고 공부하고 논다. 등록금 때문에 빚을 낼 수도, 갓 대학에 합격한 동생을 휴학시킬 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울한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정오 즈음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이어지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여행을 가기도 애매했고,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과는 시간이 맞지를 않았다.
작년 12월에 1학년의 두 번째 학기를 종강한 이후로 카페와 집만을 오가던 내가, 갑자기 카페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린 것은 순전히 기분 전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 날도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계양역에서 내려 계양대교 위를 건너가는데, 기차 한 대가 다리 밑을 지나갔다. 갑작스런 소음에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았는데, 눈을 떠 보니 아라뱃길 위로 지나는 유람선이 보였다.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아라뱃길이 그날따라 왜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을까. 계양대교를 따라 아라뱃길 위를 건넌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귤현타워 계단을 내려가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걷기 시작했다.
봄꽃이 꽃망울을 틔워내는 시기였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봄바람에 섞여 온 아련한 꽃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그러고 보니 봄이 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꽃구경 한 번 하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 못했다기보다는, 도저히 꽃구경을 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삼십 여 분을 걸었을까, 저 멀리 아라폭포가 보였다. 친구들한테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인공 폭포라고 해서 공원이나 캠퍼스에 조성되어 있는 작은 폭포를 상상했었는데, 아라폭포는 생각보다 꽤 컸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아라폭포 위로 올라 가 볼 수 있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왜 떨어지는 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폭포 안쪽에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옛날이야기 속의 신선이라도 된 것 같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폭포 안으로 들어갔다. 물줄기에 가려져 바깥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폭포 안에 쪼그려 앉아 머리 위에서 힘차게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아래로 흐른 물은 다시 위로 올라갈 것이고, 또다시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는, 또 위로 올라갈 것이다. 하루가 지나듯, 한 달이 지나듯. 그리고 일 년이 지나듯 말이다.
휴대전화를 꺼내 보니 사장님의 부재중 전화가 열통이 넘게 찍혀 있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문자와 함께. 그리고 동생이 보낸 메시지가 와 있다. 메시지를 읽기 전에 나는 폭포를 나와 내려가는 계단에 앉았다. 시원한 물소리가 귀를 때렸다. 물줄기를 따라 봄이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너를 기억하는 건 뭐하나 빼어나게 잘하는 것이 없어 풀죽어 있던 내게 가장 아끼는 오르골을 준 것이었다. 조그마한 오르골이 돌아갈 때면 아름다운 소리가 리듬에 맞추어 흘러나왔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였다. 너는 발레리나가 꿈이라고 했다. 꿈이라기보다는 장래희망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너는 세계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렸고 나는 그런 너의 발가락을 바라보았다.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 멋진 꿈이다. 세계최고가 되려면 발레를 얼마나 잘해야 할까?”
“아마 유학도 다녀와야 하고 콩쿨에 나가 상도 받아야겠지.”
꽤나 당찬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너를 보니 정말 세계최고의 발레리나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름다운 발레복을 입고 사뿐사뿐 공중을 나는 너를 떠올리니 멋있다고 생각되었다. 이국적인 멋은 달리 형용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멋’으로 단정 지을 수 있달 까.
반면 나는 여전히 뭐하나 빼어나게 잘하는 것이 없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 네가 내 손에 쥐어주었던 오르골을 꺼내보았다. 약간은 녹이 슬어보였지만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지그시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그래, 엄마가 들려주던 가야금 소리와 비슷한 것 같은데?’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두 소리를 비슷하다고 느낀 건 왜일까.
서재 깊숙한 곳에 먼지와 함께 박혀있던 가야금을 꺼냈다. 엄마를 따라 몇 번 튕겨본 적은 있었으나 손끝에 물집이 잡힌 후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악기이다. 다른 아이들이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연주할 때 가야금을 연주한다는 것이 괜히 싫었던 적도 있다.
후. 하고 가야금에 쌓인 시간의 흔적을 털어냈다. 세월은 흘렀어도 가야금은 여전히 쟁쟁한 소리를 냈다.
손끝으로 세게 튕겨보았다. 여전히 손끝이 아렸다. 한 번 더 튕겨보았다. 공중을 가르고 소리가 울렸다. 제법 괜찮은 소리가 났다. 엄마는 뜬금없이 가야금은 왜 꺼내느냐고 청승맞다고 말했지만 내심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 같았다.
엄마는 꽤 유망한 가야금 명인이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가야금을 살포시 무릎에 얹어 손끝으로 음을 집어내는 모습을 보고 아빠는 첫눈에 반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 엄마는 나도 엄마를 따라 가야금을 하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기대를 모른척했다. 가야금은 엄마의 직업정도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좀 더 강하게 뜯어야지 소리가 나지.”
엄마가 한참을 듣고 있다 말씀하셨다. 엄마의 말대로 줄을 강하게 뜯어보았다. 울림이 들어간 소리는 꽤 웅장했다. 눈을 감고 백조의 호수의 음을 짚어보았다. 오르골에서 흘러나오던 선율처럼 내 손끝을 타고 고고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참을 가야금이 내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가야금은 그저 그런 악기였는데 어쩐지 조금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뭐하나 특별하게 잘 하는 것이 없는 내게도 특별함이 있지 않을까?
한참을 말없이 가야금만 바라보았다.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가 될 거야. 그러려면 유학도 다녀와야 하고 콩쿨에 나가서 상도 받아야겠지.’
나는 어쩐지 네가 가엽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너는 녹이 슨 오르골처럼 흔들리고 있지는 않을 까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도 녹이 슬지 않는 가야금은 점점 더 멋드러진 소리를 냈고 그 위에 살짝 손을 올려놓았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열어보니 웬 택배하나가 할아버지에게 와있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엔 할아버지의 오랜 고향친구의 이름이 적혀있다. 웬일인가 싶어 상자를 열어보니 고향에서 보내온 홍어다. 상자를 열자마자 코끝까지 전해지는 냄새를 보아하니 잘 삭혀진 홍어임에 틀림없다. 홍어를 지긋이 내려다보던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할아버지의 유년시절을 떠올리시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전라남도 나주이다. 영산포 하류에서 단출한 살림에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어부셨다. 아버지는 늘 배를 타셨고 아버지가 배를 타러 나가실 때면 집에는 늘 아들 혼자였다. 아버지는 작은 돛단배를 타고 나가시면 하루 이틀은 물론이고 길게는 열흘이나 한 달 동안도 못 들어오신 날도 있다. 바람이 불고 풍랑이 치면 더욱이 그랬다.
어린마음에 아버지에게 배 타지 않으면 안 되냐고 울고불고 떼를 써 보았지만 아버지는 단호했다. 우리 두 식구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사실 아버지가 열흘 동안이나 소식 없이 배를 타고 나가도 돌아오는 날이면 배에 잡히는 것은 고작 두세 마리가 전부였다. 다른 선원들과 잡아온 물고기들은 이미 다른 동네에 팔고 남은 작은 물고기라도 챙겨 온 것이다. 그나마도 오랜 시간 바다에 있어 상해버리기 일쑤였다.
하루는 아버지가 배를 타러 나가러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 오늘은 꼭 일찍 오셔야 해요. 아버지랑 먹으려고 남겨둔 생선이 있단 말이에요.”
“알겠다. 오늘은 꼭 일찍 들어오마.”
알겠다며 빙긋 웃어 보이시던 아버지는 그날도 그 이튿날도 들어오시지 않았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매일 나루터에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강가를 바라보았다. 그 때 배 한척이 들어왔고 그 배에는 아버지가 타고 계셨다. 기쁜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아버지와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와 함께 먹으려고 항아리에 담아두었던 생선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항아리에서는 이미 코를 톡 쏘는 진한 향이 나며 생선이 푹 삭아있었다. 할아버지의 실망한 모습을 본 아버지는 원래 이 생선은 이렇게 냄새가 날 때 먹어야 제 맛이라며 아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왜 싱싱할 때 먼저 먹지 않고 기다렸어. 이 아비가 언제 올 줄 알고….
매일 놀아주지도 못하고 넉넉하게 맛있는 반찬도 만들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생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코끝이 찡해졌다. 그 모습을 본 아들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이렇게 기다려준 아들을 실망시키기 싫었던 아버지는 삭혀진 생선을 크게 한입 물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톡 쏘는 맛이 나며 상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다음날이 되어도 색이 변하지도 않고 먹고 하루가 지났음에도 배가 아프다거나 탈이 나지도 않아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그 때의 아버지는 분명 아들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에 하늘도 감동하여 탈이 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할아버지는 홍어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어보았다. 여전히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생각해보면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도는 것이 잘 삭혀진 홍어의 속성 때문이겠지만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전히 홍어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에 코끝이 찡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에게 홍어는 아버지의 또 다른 마음이다.
언제부턴가 어색한 사이를 메우는 공간이 문화예술의 공간이 되었을까?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있다. 미술작품을 보면서 작품을 바라보는 안목을 확인하고 취향이 우회적인지 노골적인지를 확인한다. 젊은이들은 그곳에서 문화를 나누고 한숨을 돌린다.
그리고 티켓 단 두장만으로 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일 수 공간이다.
“효진씨,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오늘 저녁이요? 야근만 없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데 왜요?”
“다른 건 아니고, 저한테 뮤지컬표 두 장이 생겼거든요. 혹시 안보셨으면 같이 보실래요?”
“우와, 그거 엄청 빨리 매진 된 거라 구하기 힘든 건데. 갈래요!”
민수는 효진이 일하는 곳 상사이다. 효진이 이곳에 입사한 후로 가까이에서 가장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민수의 컴퓨터 모니터로 효진이 보낸 매신저가 날아왔다.
‘대리님! 이따 퇴근하고 정문 앞에서 봬요. 저녁은 제가 쏠게요^^’
민수는 그 메시지 하나로도 충분했다. 어렵사리 친구놈에게 구걸하다시피 표를 산 것이, 거의 표 두 배 가격을 주고 산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순간이었다.
모처럼 칼퇴를 하고 나서니 멀리서 효진이 보였다. 하늘높이 손을 들어 내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효진은 정말 보고 싶던 뮤지컬이었다며 재차 기쁨을 표했다. 공연이 끝나고 둘은 근처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서울의 밤은 여전히 화려했고 잠들지 않았다.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공연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아 공연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했고 그중에 효진과 민수도 속해있었다.
효진은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더니 화려하게 반짝이는 불빛을 보면서 말했다.
“가만 보면 서울은 참 희한한 동네인 것 같아요. 동네라고 하기도 좀 그렇지만.”
“어떤 점에서?”
“음,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잖아요. 이렇게 건물들에 불이 켜져 있는것도 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일 테고. 그런데 그 속에서 이렇게 숨 좀 돌려보겠다고 공연도 보고 미술도 관람하고 하는 걸 보면 참 딱해요. 서울사람들도.”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러네. 서울이라는 동네가.”
“그렇죠? 서울에 야경이 멋있다는데 보면 다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인데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해요.”
효진은 자기감정에 취해있는 듯했다. 회사에서는 효진과 특별하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음으로 효진의 생각과 가치관을 들어볼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그냥 어린 신입사원이라고 생각했는데 꽤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 같아서 속으로 살짝 당황스러웠다.
효진은 맥주를 홀짝홀짝 마셨다. 취기가 올라서인지 불빛 때문인지 아니면 공연의 흥분감이 채 가시지 않아서인지 효진의 두 볼이 약간 발그레 했다.
“전 예술의 전당이 참 좋아요. 여기에선 숨통이 좀 트인 달까? 친구와도 좋고 연인도 좋고 가족도 좋고. 누구와 와도 좋은 곳인 것 같아요. 지금 우리처럼 직장 상사와도 좋고!”
효진은 빙그레 웃었다. 효진의 말대로 서울의 문화 예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의 전당은 그랬다. 누구와 와도 즐거운 곳이었다.
민수는 겉옷을 벗어 효진의 어깨에 슬며시 걸쳐주었다. 효진도 나쁘지 않은 듯 배시시 웃었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저녁 오페라 공연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희미한 노랫소리에 맞춰 예술의 전당 앞 분수가 춤을 추었다. 분수에 오색빛이 비춰지자 환상적인 느낌을 연출했다.
효진이 자그마한 허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희미한 노랫소리 그리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반짝이는 서울의 밤은 그렇게 잠들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기에 충분했다.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야지. 그동안 당신 힘들었던 거 알아. 누구보다도.”
이제는 원망이나 설득을 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원망이나 설득의 마음이 없다고 해도 그래도 남편이 마음을 돌려주기를 내심 바라는 마음은 있다. 홧김에 한 말이었다고 그냥 다시 예전처럼 지내고 싶다고 말해주길.
“연락 자주 할게. 아이들 데리고 자주 내려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하는 남편이다. 일주일 전만 해도 화를 내고 시부모님께 일러보기도 하고 협박까지 했던 아내였기에 남편의 말 한마디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남편은 안정된 직장에서 남부럽지 않은 연봉에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가정에서는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아이들이라면 끔찍이 아끼던 최고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남편의 선택을 받아들이기가 더욱 힘든 아내였다. 생활비 한 번 허투루 쓴 적 없는 모범답안과 같던 남편이 돌연 귀농 생활을 통보한다. 처음에는 권유였으나 나중에는 혼자라도 가겠다고 통보를 한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묵묵히 함께 살아온 30년. 아이들을 다 키워놨다고 생각해서일까. 일주일간 아내는 잠도 제대로 못 들고 남편의 생각을 읽으려 노력했다. 도저히 모르겠다. 무슨 영문인지.
생각에 변함없음을 알리는 남편의 대답에 이젠 이런 실랑이도 소용이 없음을 받아들였다.
결국, 남편은 홀로 횡성으로 떠났다. 예전의 남편이라면 아내가 싫다고 할 때 마음을 접었을 것이다. 고집불통이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든다. 무작정 우겨 내려온 것이지만 단출한 살림에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귀농 생활이었다. 일단 무작정 장에 가보기로 한 남자는 우연히 소 한 마리를 얻어 기르게 되었다.
큰 눈을 껌벅이는 소를 바라보니 어릴 적 남편과 닮았다. 남편은 큰 눈에 겁이 많아 소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소와 남편은 닮은 점이 많았다. 큰 눈을 껌벅이며 남편을 바라보는 것이 이 녀석과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논농사를 지을 것도 아니고 특별히 밭을 갈 일도 없는 남자였지만 남편은 소를 애지중지 키웠다. 아내가 바라보았다면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귀농 생활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잡을 즈음 아내가 왔다. 아내는 오자마자 집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마당에 자리 잡고 있는 소를 바라본다. 이젠 소까지 키우느냐며 농사꾼이 다 됐다고 웃는다. 아내가 오랜만에 웃는다.
아내도 자신이 빙긋 웃는 것이 어색했는지 슬쩍 말을 돌린다.
“혼자 피죽도 못 얻어먹고 사나 했더니 제법 살림꾼 다되었나 보네. 딸린 식구도 있고. 하긴, 횡성 하면 한우지. 이 소는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거야?”
아내는 겁이 많고 큰 눈을 껌벅이는 소를 향해 잡아먹으려고 기르는 거냐며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아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소여물을 다듬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거야?
소를 끔찍이 생각하던 횡성사람들이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소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로 접어들자 횡성사람들은 소를 식용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에겐 여전히 소는 가족과 같은 존재이다.
아내가 돌아갔다. 아내는 은밀히 여기 내려와서 같이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고 이야기했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물론 함께 지내는 것이 더 좋을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남편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큰 눈을 껌벅이는 소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일까.
결혼을 앞둔 여자의 목소리는 한껏 흥분과 설렘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그녀에게 세상은 핑크빛일 테고 파스텔 톤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상견례와 결혼 날짜까지 한 큐에 끝내버리고 요즘은 친정엄마와 혼수를 보러 다니고 피부숍을 다니며 생애 한번 있을 아름다운 날을 위해 온 신경을 쏟았다.
서른둘의 나이. 요즘으로 치면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라지만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훈수 덕에 그녀의 머릿속은 적잖이 복잡해졌다. A는 근사한 카페를 통째로 빌려 피아노를 치며 영화의 한 장면처럼 프러포즈를 받았다더라. 친구 B는 청담동으로 시집간다더니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몇 세트를 받았다더라 하는 말들이 자연스레 들렸고 친구들은 며칠 굶주린 하이에나들처럼 여자의 결혼에 관심을 기울였다.
여자는 신경 쓰지 않고 남자친구에게 내색하지 않기로 마음먹고도 내심 신경이 쓰였고 기대가 되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그럴 거라며 자신은 속물이 아니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남자친구에게 대뜸 나 어디서 어떻게 프러포즈해줄 거냐.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줄 거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무엇보다 남자친구의 형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여자의 얼굴엔 점점 그늘이 드리웠다.
오늘 예쁘게 입고와. 일 끝날 때 맞춰서 데리러 갈게.
남자친구의 문자다. 여자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예쁘게 입고오라니, 왜? 혹시 프러포즈하려고 그러나? 그렇담 뭘 입어야 하지? 야외에서 하면 좀 쌀쌀할 텐데 겉옷을 준비해갈까? 눈물을 흘려야 하나? 여자는 30초간의 짧은 순간에 몇 가지 생각들을 흘려보냈다.
귀여운 것. 조금 무뚝뚝하긴 했어도 예쁘게 입고 오라는 힌트까지 주다니. 여자는 한껏 들뜬 마음을 즐겼다. 언제 또 이렇게 행복하겠느냐며 이 순간을 즐기자고 생각했다.
여자는 자신이 아끼던 옷을 꺼내 입고 싱글벙글 하며 남자를 기다렸다. 남자는 칼같이 여자를 데리러 왔다.
“어디 가는 거야? 어디로 가는 건데? 응? 왜 예쁘게 입고 오라고 했어? 어?”
여자는 남자의 차에 타자마자 콧소리를 내며 남자에게 질문을 쏟아 부었다. 남자는 가보면 안다며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았고 여자의 기대감은 극도로 높아졌다.
그런데.
남자는 카페를 빌리지도 근사한 곳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지도 않았고 무릎을 꿇으면서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심히 스윽 건네는 반지케이스 하나.
이게 뭐야. 여자는 기쁨과 감동의 눈물을 준비해왔으나 서러움으로 흘릴 줄은 몰랐다. 여자는 기쁨도 감동도 하지 않은 채 말없이 반지케이스만 바라보았다.
“실망했어?”
그걸 말이라고. 여자는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차마 내뱉지 않았다.
“어떤 반지인지 궁금하지 않아?” 라고 말하며 반지케이스를 열었다.
붉은빛이 선명한 반지다. 루비인가. 동시에 남자가 말한다.
“루비 아니야. 빨간색을 띄는 희귀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내가 하늘에 떠있는 별을 따다 달래 달을 따다 달래. 그냥 말 한마디 아니 말 한마디가 어려우면 꽃이라도 아니 꽃도 어려우면 노래라도. 그만하자.”
“알아. 네 마음. 섭섭하겠지 속상하겠지. 그런데 반지 꽤 의미 있는 거야. 이게 1월 탄생석으로 만든 거거든. 당신 생일이자 우리 결혼기념일이 될 1월.”
여자는 애써 침착하게 반지를 바라보았다.
“다음번 결혼기념일에는 근사한 카페도 빌리고 백송이 꽃도 준비하고 피아노도 배워서 노래도 불러줄게. 더 예쁜 반지와 함께.”
좀 전에 남자가 내민 보석은 가넷이었다.
어느 날, 후배 한 명이 미리 주는 생일 선물이라며 김광석의 베스트 앨범 한 장을 건네 왔다. <서른 즈음에>라는 곡명에 형광펜으로 체크가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나를 곯리려 작정을 한 것이 분명했다. 괘씸하기는 했지만, 명곡은 명곡이었다. 신세대라고 하기에는 구세대이고, 구세대라고 하기에는 신세대인 어정쩡한 나이가 된 나는 이수영이나 성시경의 노래보다는 김광석의 노래를 더 사랑했다.
헤어진 전 여자 친구이기도 한 후배는 ‘술 좀 줄이시고요.’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또 마침 소주 안주로 제일인 것이 김광석의 노래라 하지 않았는가.
결국 과음을 한 탓에 다음 날 수업에 나가지 않자, 후배가 뺨을 붉히며 숙취 해소 음료 하나를 건네 왔다. 후배의 복잡한 표정에서, 그 애가 못다 한 말들이 읽혔다. ‘선배님, 장난 치고는 좀 심했죠.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하실 걸 모르는 게 아닌데. 기분 전환이나 하시라고 드린 선물이었는데,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하고 말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 대신, 뜬금없이 대구에 있다는 김광석 길에 함께 가주지 않겠냐는 말을 했다. 술이 덜 깨서일까, 아니면 김광석의 달콤하고도 쌉쌀한 노래들을 어제 하루 종일 들어서였을까. 아차 하는 마음에 미안하다고 말하려 하는데, 후배가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가 다음 수업이 있다며 인사를 하고 강의실을 나간 뒤에도, 나는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후회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머리만 긁적이고 있었다.
술은, 정말로 마시지 않을 생각이었다. 헤어진 후로 몇 달이나,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었다. 그러던 와중에 선물로 받은 것이 김광석의 앨범이요, 몇 달 만에 들어보는 따뜻한 말이 술을 좀 줄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광석의 노래가 내 방을 가득 채우니 술이 고픈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거쳐 타이틀곡인 <변해가네>까지는 그럭저럭 견뎠지만, <서른 즈음에>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냉장고를 열고 소주병을 꺼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랬다. 농담처럼, 내게도 서른이 왔다. 철부지 새내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몇 번의 작은 성공과 몇 번의 연애, 그리고 몇 번의 쓰린 실패 끝에 내게도 서른이 오고야 만 것이다. 잦은 휴학에, 아직 대학 졸업장도 받지 못했는데 말이다.
안주 없이 소주잔을 비우며 몇 방울의 눈물을 떨궜던 것 같기도 하다. 서른이라는 막막한 숫자 앞에, 그리고 서른이 되도록 무엇 하나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거울 앞의 내 모습에 말이다. 내 인생의 역할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계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며, 내 안의 어떤 것이 같이 죽어버렸다. 울고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아버지의 시신을 보았을 때, 영영 무너지지 않을 아버지의 철옹성 같던 어깨가 실은 작은 새처럼 여린 것이었음을 알게 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가장 크게 믿던 사람이 그렇게 한 순간에 한 줌의 재가 되었다.
“현석아, 네가 이제 우리 집의 기둥이여.”
나는 어머니의 그 말이 싫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머니와 여동생의 버팀목 역할을 맡아야 했고, 그 자리가 두려워 계속 뒷걸음질만을 치다가 끝내 주저 앉아버리고야 말았다. 우스운 노릇이었다.
다가온 주말에 나는 정말로 후배와, 아니 내 전 여자 친구와 함께 대구행 기차를 탔다. 여전히 조금은 어색한 사이였기에 애초에 많은 대화가 오가지도 않았고, 삼십 분이 채 되지 않아 간간히 오가던 대화마저 완전히 끊겨 버렸다. 서로 감정이 상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연애는 이미 지난 일이었다.
그 나른한 봄의 정적 속에서, 나는 잊고 있었던 풍경 하나를 기억해 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아버지의 서른 즈음에 있었던 일을 말이다. 만취하여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김광석의 노래를 열창하셨다. 다른 어떤 노래도 아닌, <서른 즈음에>를. 그것도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라는 부분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부르셨다. 비어가던 서른 살 아버지의 가슴을 다시 차오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툭, 하고 내 어깨 위로 고개 하나가 기울었다. 그 애가 봄기운에 취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것을, 나는 서른 즈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