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그림자가 걷히고 난 그 어느 날부턴가 조용하던 마을이 시끌시끌한 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어요. 그것은 다름 아닌 태안에 해수욕장들끼리 서로 자기가 더 멋있는 해수욕장이라며 싸우는 소리였지요. 해수욕장들끼리 싸우는 소리에 할미바위가 귀를 틀어막으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머리야.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고.”
그 중 유일하게 싸움에 끼지 않은 해수욕장이 바로 할미바위와 할아비 바위가 있는 꽃지 해수욕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해수욕장들은 꽃지 해수욕장에 있는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를 찾아가 누가 가장 멋있는 해수욕장인지 판결을 내 달라고 물으러 갔습니다.
그중 가장먼저 만리포 해수욕장이 어깨에 힘을 잔득 주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할미바위, 할아비바위님! 태안에서 제일가는 해수욕장이라면 당연히 제가 아니겠어요? 저는 서해안에서 제일 멋있기로 3위 안에 꼽힌다고요! 그뿐인 줄 아세요? 사람들이 저를 찾으면 똑딱선 기적소리~ 만리포라 내 사랑. 이렇게 노래까지 흥얼거린다니까요!”
그러자 몽산포 해수욕장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습니다.
“허, 저는 아주 울창한 송림을 가지고 있어요. 몽산포 송림은 국내 최강으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당연히 제가 제일 으뜸이죠. 게다가 나를 찾는 사람들은 맛조개를 잡는 재미까지 있다고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안 그래요?”
머리를 꽁꽁 싸매고 있던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도 판결을 내기가 어려워 해수욕장들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러자 해수욕장들은 자신이 더 멋진 해수욕장이라는 것을 뽐내기 위해 사람들을 더 오래 머물게 하기위해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와 오물들을 눈감아 주었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쓰레기와 오물들로 가득해져버렸습니다. 보다 못한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는 해수욕장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옛날 어느 날이었어. 평화롭던 마을에 갑자기 큰소리로 뻥!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리 마을 앞바다가 온통 검은 그림자로 드리워졌지. 그러더니 끈적끈적하고 검은 기름때가 우리 마을 온 바다를 뒤덮기 시작했어. 숨도 쉬기 힘들 지경이었지. 기름때는 순식간에 깨끗했던 바다를 뒤덮고 바위와 돌, 그리고 바다 새들까지도 뒤덮었지.”
딴청을 하며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해수욕장들은 하나 둘 씩 점점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맑던 바다는 검은 바다로 변했고 물고기와 오리들은 떼죽음을 당했지. 바다에서 조개를 캐고 물고기를 잡아 생활하던 어민들도 한순간에 생활이 막막해진 거야. 이제 태안은 돌이킬 수 없는 버려지는 곳이라고 생각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어.”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을 줄 알았던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 그리고는 하얀 천을 들고 바다와 갯벌, 바위틈을 천천히 닦아내기 시작했지. 그렇게 모이고 모이던 사람들의 손이 닿는 곳이 다시 밝은 빛으로 변하더니 조금씩 검은 그림자들이 걷히기 시작했단다.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아름답게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건 다 우리를 위해 하나 둘씩 모은 마음들 덕분이겠지.”
해수욕장들은 그제야 서로 싸우던 자신들과 쓰레기로 더렵혀진 자신들을 부끄러워하며 이렇게 해수욕장들과 깨끗한 바다로 둘러싸인 마을을 자랑스러워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태안의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보답하고자 더 아름다운 절경을 선물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엄마 왔어. 짜잔! 우리아들이 좋아하는 호두과자!”
“야호! 신난다. 우리 엄마 최고!”
“우리 민수 퇴원하면 엄마가 호두과자 더 많이 사줄게. 혼자 심심하고 무서웠을 텐데도 잘 참아줘서 고마워. 사랑해 우리 아들!”
“정말? 정말이지? 수술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호두과자 많이 먹을 날도 얼마 안남은거네? 맞지? 응?”
“그래, 우리 아들 똑똑하네.”
무균실 밖에서 간호사가 나를 부른다. 담당 전문의의 호출이라고 했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가망이 없다니. 우리 아들이 이렇게 예쁘고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왜.’
담담한 어조로 말하는 의사의 말에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수술이 며칠 안 남았는데 도대체 왜이러시냐고 무릎을 꿇고 빌어보기도 했다. 의사는 지나치게 이성적인 말만을 내뱉었다. 의사에게 너도 자식 키울 것 아니냐며 악을 질러보았지만 의사는 이해한다는 말만 했을 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가슴에 묻어야했다.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이민을 가자고 했고 남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남편은 아이를 하나 더 갖자고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왔어도 천사 같이 웃어주던,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도 울지말라며 손을 잡아주던 천사 같은 민수의 모습이 더욱 생생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나온 지 어느덧 40여년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민수를 그리워했지만 눈물짓지는 않았다. 남편과도 민수의 생일날 이외에는 민수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나누려하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점점 기억 속에 무뎌져 있었다.
남편의 사업 때문에 이민을 떠난 후 4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분주한 사람들의 발소리 그리고 쾌청한 하늘 무엇보다 한국어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인 듯 했다. ‘변한 것이 없구나. 나 밖에’ 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런데 어쩐지 주위에 호두과자 전문점이 눈에 띄었다.
‘호두과자. 우리 민수가 참 좋아했는데. 퇴원하면 양손 가득 넘치도록 사준다고 약속했는데.’ 40여년만의 기억이 파르르 떨렸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했고 민수와 이별하던 날 그리고 현재의 시간이 맞물리는 것만 같았다.
딸랑 거리는 현관문 종소리가 울리고 친절해 보이는 점원에서 호두과자 한 봉지를 주문했다. 갓 담겨 나온 호두과자는 따뜻했다. “우리 민수 손처럼 따뜻하네.”내가 봉지를 받아들며 속에 있던 혼잣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한가로운 공원에 한참을 앉아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마나 뛰어놀았는지 머리가 땀으로 다 젖도록 뛰어놀던 아이를 아이의 엄마가 찾으러 왔다.
“이제 그만 가자. 배 안고파? 점심도 안 먹고 이렇게 뛰어놀게.”
“배고파. 엄마, 근데 나 저기 할머니가 들고 있는 호두과자 먹고 싶어. 나도 사다줘. 응? 엄마~”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무슨 호두과자야. 얼른 가자. 엄마 지갑도 안가지고 나왔어.”
“싫어, 나 호두과자, 호두과자~”
엄마에게 떼를 쓰는 아이를 보니 우리 민수가 더욱 아련했다. 아이 엄마에게로가 먹으려고 샀는데 못 먹게 되었다며 괜찮으니 아이를 주어도 된다고, 원래 이맘때 아이들은 단 것을 좋아하나보다고 호두과자를 건넸다. 아이엄마는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아이의 머리를 콩하고 쥐어박았다.
그나저나 금방 온다고 하던 남편이 오지 않는다. 다시금 그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데 어디에서 따뜻하고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남편이다. 남편의 손에는 따뜻한 호두과자가 들려있다.
“피자, 햄버거, 치킨 이런 거 자극적이고 식욕당기지. 거기에 적당한 알코올까지 더해지면 더 좋고.” 남자는 비꼬듯 이야기한다. 남자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내뱉은 말이었다.
아내는 그렇게 이야기 하지 말라며 노여워했다.
“남의 새끼는 칼로리에 온갖 영양 다 계산해가면서 먹이고 정작 내 새끼는 피자, 햄버거, 자장면 이런 거나 먹이고. 이게 말이되? 어?”
남편은 그동안 꾹꾹 눌러 담은 분노를 아내의 얼굴을 향해 쏟아 붓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간 지나온 일들을 단편적으로 본다면 남편이 던진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여자와 남자는 맞벌이 부부다. 남편은 대학병원 의사로 늘 병원 아니면 서제에 있었고 수술이 있을 때면 특히 더 예민하게 굴었다. 수술이 있고 늘 환자를 대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누구보다 심할 것이라는 걸 아는 아내였기에 아내도 그동안 남편에게 잔소리 한번 심하게 하지 않았다.
아내는 학교에서 아이들 영양식단을 책임지는 영양사로 근무하고 있다. 아내는 누구보다 체계적이고 영양이 가득한 음식플랜을 짰다. 아내가 짠 음식대로 조리되어 나오는 음식들을 학생들은 남김없이 먹었다. 키가 크고 뼈가 튼튼해질 수 있는 친환경 유기농 영양만점 식단이었기에.
끝내 아내는 눈물을 보였다. 남편은 아내가 울고 있는 줄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아내를 달래줄 마음이 당시에는 조금도 들지 않아서 일 것이다.
식탁에는 이미 시킨 지 오래되어 퉁퉁 불어터진 자장면이 놓여있었고 자장면을 사이에 두고 남편과 아내는 식탁의 각각 모서리에서 뾰족한 모서리보다 더 뾰족한 말들을 주고받았다.
몇 달 전부터 학교급식의 안전과 영양실태에 대한 감시가 심해지면서부터 아내는 더욱 꼼꼼하게 영양식단을 짜야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신경을 덜 쓰기 시작했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집에 갈 때 뭐 사갈까? 라고 한 말이 시작이었다. 그러면서 의례적으로 저녁은 할머니한테 먹고 싶은 거 시켜달라고 하라고 말하던 아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전히 아내는 훌쩍였고 자장면 그릇을 가지러 온 배달부의 초인종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남편은 진료일정을 미루고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녀오자고 말했다. 그러니 아내에게도 학교 일정을 조율하라고 말했다. 아내도 알겠다고 수긍했다.
그렇게 떠난 곳은 완주. 완주에 도착하니 와일드 푸드 체험이라는 것이 진행되고 있었다. 모처럼의 여행이라 그런지 아이는 신이 났고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아 끓여 먹어보기도 하고 잠자리채로 곤충들을 채집하고 튀겨먹어 보기도 하며 모처럼 가족 같은 분위기를 냈다.
아내는 아이와 남편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도 좋아졌다. 남편과 아이를 위해 저녁상을 준비했다. 남편이 잡아온 물고기에 소면을 넣어 끓인 철렵국을 만들기로 했다.
‘아!’ 외마디 비명이 차마 목구멍으로 나오지 못하고 턱밑에서 머물렀다. 다행히 뜨거운 뚝배기 그릇을 들고 있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가벼운 국자가 아내의 손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 아내는 얼마 전 손목이 시큰거리며 가끔 끊어질 듯한 고통을 호소하며 정형외과를 찾은 적이 있다. 의사는 직업으로 인해 온 질병으로 진단을 했고 아내는 며칠 째 음식을 하는 것도 무거운 그릇을 드는 것도 벅차했었다.
남자는 떨어진 국자를 집어 들었다. 남자는 순간 의사의 직감이었는지 아내에 대한 마음이었는지 아내의 손목에 이상이 있음을 감지했다.
“왜 그동안 말하지 않았어. 의사 남편 두고도 써먹지도 못하냐, 바보같이.
내일 우리 병원에 와, 다시 검사받자.
그리고 이렇게 무거운 국자는 내게 줘. 철렵국은 내가 끓이는 게 훨씬 맛있다고.”
“이렇게 나오니까 좋다. 공기도 좋고 이곳에서 나는 음식들로 바로 요리하고. 영양이고 식단이고 따로 짤 필요가 없네. 여기 내려와서 살까?” 아내는 웃으며 말한다.
“아무튼 노인네가 몸에 좋은 거라면 눈빛부터 달라지신다니까?”
“그러니까. 저렇게 몸 생각해서 다 어디다 쓰려고 그러나 몰라? 그때 봤어요? 삼계탕 나오는 날. 다들 한 그릇씩 배정 받는데 혼자 배부른데도 두 그릇, 세 그릇씩 먹는 거.”
급식 아주머니가 삼삼오오 모여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이 동네에서 이미 유명인사로 이름을 떨친 할아버지는 그저 몸에 좋은 것이라면 앞뒤를 가리지 않으셨다. 아들이 서울대학병원에서 의사로 있고 며느리가 약사라는데도 무엇이 할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더군다나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사람들이 말하기로 소위 자식농사 번지르르하게 지어놓고 왜 저러나 모른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꼭 교회에서 봉사하는 무료급식을 빼놓지 않고 찾아드셨고 마을회관에서 열리는 노인의료봉사에 가장먼저 줄을 서서 진료를 받았다. 그런 날이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아니, 아들이 의사인데 용돈을 안주나? 연락도 안하고 사는 거 아니야?”
“누가 아니래요? 꼭 아픈데도 없는데 의료봉사 선생님들 오면 가장먼저 혈압이다 뭐다 심지어는 외과선생님한테 구강검사까지 받더라니 까요.”
“아이고, 노인네가 지금도 정정하고만 얼마나 이 세상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그런데요?”
“누가 알겠어요. 아이고, 저기 오시네.”
할아버지의 시간은 정확했다. 늘 오전 6시에 일어나 30분간 맨손체조를 하고 7시에 아침을 드셨다. 할아버지의 시간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치 할아버지의 생각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할아버지가 제일먼저 와계셨다.
“왜 이리 늦어! 어? 젊은 사람들이 이래 굼떠서야 어디다 쓰겄어?”
“아이고, 할아버님 나오셨어요? 오늘도 목소리가 쩌렁쩌렁 하시네~”
“퍼뜩 가지고 와봐라, 오늘은 어떤 놈이 왔나.”
“오늘은 아주 좋은 놈들로만 골라왔는데, 할아버님께서 가장 먼저 오셨으니까 가장 좋은 걸로 보여드리는 거예요.”
인삼이다. 좋은 놈으로 골라왔다던 남자의 말처럼 실하고 굵었다. 언뜻 보아도 값어치가 나가 보이는 삼이었다. 할아버지는 한 달에 한번 약장사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물론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이런 행동을 놓칠 리 없었다.
“어머, 이제는 인삼이네? 저 할아버지 200살까진 끄떡없겠어.”
“저번에도 인삼 좋은 걸로 하나 사가시는거 봤는데. 이번에 또 사가시네? 인삼주라도 담그시나? 자네가 한번 넌지시 물어봐봐. 어? 궁금하잖아.”
여자는 남자의 등을 떠밀면서 할아버지께로 보냈다.
“아, 할아버지 나오셨어요? 오늘은 와, 인삼 좋네요.”
“그렇지? 일찍 나오길 잘했어 아주. 좋은 놈으로 골랐네.”
“그런데 할아버님은 어떻게 이렇게 정정하세요? 이게 다 인삼 덕분인가 봐요?”
“내가 먹을 거 아니여. 우리 아들 줄 것이지.”
“아드님이요? 아니 아직까지 의사 아드님 몸보신까지 신경 쓰시는 거예요?”
“하이고, 의사는 무슨 의사. 내 소원이 뭔지 아나. 그저 아들보다 딱 하루 더 오래 사는 거라. 몸에 좋다는 거 정신에 좋다는 거 다 먹여 보는 거지 뭐. 더 말하면 뭐하겄어.”
할아버지의 아들은 의대에 입학하고 나서 돌연 사고로 인해 장애판정을 받았다. 동네사람들은
할아버지가 매번 대학병원에 들락날락 하는 일이 아들을 만나러 가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할아버지는 아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야 했기에 그 무게를 감당할 만큼의 체력이 필요했다.
할아버지는 괜한 푸념을 늘어놓았다며 씩씩한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아들의 그림자가 비췄다.
“임신하면 태교가 가장 중요한 거 몰라? 그리고 그렇게 사람 많은 곳 갔다가 뭔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원래 임신하면 좀 예민해진다고는 들었지만 아내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머리에서 뿔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들꽃 같던 아내는 여전히 예뻤지만 입덧을 꽤나 심하게 하더니 좀 더 예민해진 것 같았다.
“그래, 알겠어. 그런데 여름휴가로 그냥 집에만 있겠다고? 그냥 주말이랑 별다를 게 없잖아. 그리고 자기도 바깥바람 쐬고 그러면 입덧도 좀 나아지고 기분전환도 될 거야. 그러니까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고 잘 생각해봐.”
“내가 지금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내가 나 좋자고 그래? 이게 다 우리 아가 생각해서 이러는 거잖아.”
네버엔딩이다. 내가 수그리고 들어가지 않으면 좀처럼 싸움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 했고 그러는 것이 나도 편했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뿐인 여름휴가를 이렇게 집에서 아내와 투덕거리며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내는 플로리스트다. 그런데 혹여나 아이에게 좋지 않을까 하여 임신을 한 뒤로는 꽃꽂이를 하지 않았다. 집에 있던 꽃들도 시들어 버리자 그냥 내다버렸고 오로지 아이를 위한 태교음악과 미술전시만 간간히 보러다닐뿐이었다. 속으로 그렇게 유난 안 떨어도 된다고 하려다가 더 큰 불씨로 돌아올까 봐 말을 삼켰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 하나 빵빵하게 틀지 못하게 하여 연신 손부채질을 해가며 선풍기 앞에서 SNS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회사 동료 중 한명이 폭포사진을 하나 올렸다. 의례적으로 좋아요를 눌러주려다 궁금한 마음에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그곳의 폭포는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싹 가시는 것처럼 시원해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폭포의 이름이었다. ‘피아노 폭포’. 폭포가 떨어지면서 피아노 소리를 내나? 궁금한 마음에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여름휴가로 가까운 곳을 다녀왔다고 했다. 특히나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면서 집도 가까우니 한번 다녀오라는 조언과 함께. 머리에 반짝하는 불빛이 들면서 나는 곧장 아내에게로 달려갔다.
“자기야, 내가 인터넷에서 본 곳인데 시원한 여름휴가도 즐기면서 태교도 할 수 있는 그런 곳 이 있는 거야. 어때? 끌리지? 내일 당장 가보자. 절대 휴가를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 재미있는 곳 같아서 그래, 이름도 피아노 폭포랑 피아노 화장실이라니까?”
아내는 내 여름휴가 집착증에 두 손을 든 것인지 아니면 나처럼 피아노 폭포라는 말에 호기심을 가진 것인지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아, 이게 얼마 만에 나들이야? 그치? 자기도 막상 나와 보니 기분 좋지? 집에만 있으면 아기도 심심하고 답답할 거야.”
“응, 좋네. 바깥바람도 쐬고. 근데 에어컨 좀 줄일 수 없어? 창문을 열자 차라리.”
아내는 쉬이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모처럼 밝은 모습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피아노 폭포는 교외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 사진을 찍는 곳이 피아노폭포 인듯했다. 그런데 피아노 폭포보다 더 먼저 우리 둘의 시선을 끈 곳은 다름 아닌 그랜드 피아노 모양을 한 건물이었다. 백색의 그랜드 피아노 형식을 한 건물은 화장실이라고 했다. 경기도 수원에 반딧불이 화장실은 들어보았어도 피아노 화장실은 또 처음이다. 신기한 듯 구경을 하는데 계단을 오를 때마다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랜드 피아노 선율에 절로 눈이 감겼다. 아내는 화장실은 찝찝하다며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더니 은근히 노래를 감상하고 있는 눈치였다. 밖으로 나가보니 네다섯 살 난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고 어른들은 92m 높이의 피아노 폭포에 감탄을 쏟아 붓고 있었다. 하수처리 방류수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인공폭포라는 데 꽤 웅장한 소리와 함께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간에 시원하게 솨아아 하고 쏟아지는 폭포를 보니 멀리 계곡에 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때? 나오길 잘했지?”
“응, 그러네. 여기 우리 아가 태어나면 또 와도 좋겠다. 아기들 노는 거 보니까 보기도 좋고. 우리아가 빨리 만나고 싶어.”
아내의 입에서 또 오고 싶다는 말이 나오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마치 큰 성과를 내 회사에서 인정받은 사람처럼 기분이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도 콧노래가 흘러나왔고 언젠가 아이와 함께 오는 그 날에도 피아노 폭포에서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를 것 같다.
장갑이며 목도리를 챙기지 않으면 집 밖에 나서기가 꺼려질 정도로 추워졌다. 어느 새 또 겨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걷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손발이 얼었다. 언 손을 비비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늘도 어머니는 일찍 잠들어 계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잠드는 일이 없으셨는데, 요즘 들어 기력이 많이 약해지신 것 같았다.
“저 왔어요, 어머니.”
어머니가 깨시지 않게 나지막한 인사를 건네 보았다. 식탁에는 어김없이 내 몫의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몇 달 전,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었다. 어깨와 허리에 잦은 통증을 느끼시는 것 같은 모습에 모시고 갔던 것인데, 병원에 갔더니 왜 이제 왔느냐는 말을 들었다. 큰 병은 아니나 젊을 때에 고생을 많이 하셔서 일찍 무리가 온 것이라 하셨다.
“저한테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그럼 빨리 병원에 왔을 텐데.”
“나이 들면 여기저기 쑤시고 그런 거지, 뭘 그런 걸 일일이 보고를 하냐.”
어머니의 말에 멍해졌다. 나는 이제야 겨우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어머니는 벌써 노인이 되어가고 계셨던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모습이 싫어 아프다는 말을 속으로 꾹꾹 눌러 담고 계셨을 어머니를 상상하니, 코끝이 짠해져왔다.
여자 친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머니와 보내기로 결심했다. 내일 저와 함께 어디를 좀 가자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당연히 혼자 집에 계실 것을 예상하셨는지 아주 기뻐하셨다.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곳이 어디가 있을까 했더니, 번화가나 케이크는 아무래도 어머니에게 어울리지가 않았다.
고심 끝에 결정한 곳은 정자항. 오랜만에 어머니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 해 드리고 싶기도 했고, 겨울하면 대게였으며, 어머니도 대게를 무척 좋아하시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예요, 크리스마스니까 무엇 하나는 빨간 색이어야 하지 않겠어요?”
내 애교 아닌 애교에, 어머니가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셨다.
휴일이라 그런지 차가 조금 밀렸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가족 단위로 북적이는 정자항에서,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수족관 안에 알이 꽉 찬 대게들이 엉켜있는 것을 보니, 대게 제철인 것이 실감났다. 저희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버둥거리기도 하는 모습이 정말 신선해 보였다. 평소에 자주 먹는 꽃게도 꽃게지만, 제대로 게 먹는 기분을 내려면 역시 대게가 최고다.
이왕에 먹는 거 좀 더 좋은 걸로 먹자 싶어서 박달대게를 선택했고, 젊은 시절에 바닷가에 사셨다는 어머니는 자신 있게 가장 실한 대게를 골라내셨다. 가게 2층이 바로 초장집이라 돌아다닐 필요 없이 바로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어머니가 건너편에 앉은 내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셨다.
“석규야, 기억나니? 너 어렸을 때에도 여길 한 번 왔었단다. 그 때는 네 아버지도 함께 왔었는데, 아버지 손바닥보다도 훨씬 더 큰 대게가 무섭다며 네가 우는 탓에 애를 좀 먹었지. 그랬던 꼬마가 이제는 다 컸구나.”
정말로 신기하다는 듯한 어머니의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 때 나는 혼자서는 게를 먹지 못할 정도로 겁이 많았다. 게를 만지면 날카로운 집게발이 나를 물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어머니는 혼자 나를 키워내느라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다. 식당 일이며, 가정부 , 청소부 일까지. 어머니가 안 해 보신 일을 찾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드디어 우리 앞에 푹 삶아진 대게 세 마리가 나왔다. 종업원이 가위를 들고 대게를 자르려는 것을, 내가 직접 하겠다며 돌려보냈다. 어머니 몫의 앞 접시에 내가 직접 손질한 대게를 한 조각씩 올렸다.
“저도 이제 다 컸으니, 안심하시고 저한테 의지하셔도 돼요.”
대게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구수하고도 포근한 겨울의 냄새가 났다. 어머니는 오래도록 대게에 손을 대지 않고, 가만히 웃고만 계셨다.
방학 끝물, 다음 학기가 마지막인 친구들끼리 모여 특별한 기억을 만드는 계획을 세우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맞는 마지막 방학인 만큼 정말 특별한 계획이 필요했는데, 바다도 계곡도 지겨울 정도로 다녀왔기에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야, 정말 이제 해외로 나가지 않는 이상 할 게 없는데?”
맞는 말이었다. 우리처럼 많이 놀러 다닌 대학생들도 없을 것이다. 전국 각지의 명소란 명소, 축제란 축제는 다 돌아다니는 우리들 네 명에게는 이미 국문과 유랑단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우리의 고민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마땅히 끌리는 곳이 없어서 애를 먹고 있는데 한 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 하나 있다. 우리가 안 해 본 거. 자전거 여행은 한 번도 안 해 봤잖아.”
“자전거 여행? 그건 제대로 가려면 한 일주일 잡고 가야 될 텐데, 우리한테는 이번 주말 밖에 시간이 없잖아.”
게다가 학교 근처에서 모두 자취를 하고 있는 터라 자전거를 소지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자전거라는 말에 다들 귀가 솔깃해졌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의 접이식 자전거 이후로, 자전거를 타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자전거 여행은 제치고서라도, 자전거를 빌려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데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고민한 결과 선택한 곳이 소래습지생태공원이었다. 폐염전과 염전 저수지, 그리고 풍차를 함께 볼 수 있는 자전거길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바로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 대학생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은 행동 개시를 서둘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말은 정말 맑았다. 너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처음에는 중심을 잡기도 힘들어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네 명 모두 신나게 소래길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길이라더니, 볼거리가 많았다.
넓은 들판 위에 빨간 풍차 세 대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을 보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전거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 큰 청년 넷이서 풍차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모습이 우리 스스로도 우스워 한참을 웃었다. 커플 단위로 사진을 찍으러 나온 사람들도 많았고, 체험학습을 나온 것 같은 어린 애들의 모습도 꽤 많이 보였다. 염전에 파란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는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난 사실 여기 걸어서는 몇 번 와 봤는데, 걸을 때랑은 기분이 완전히 다르네.”
“맞아. 보이는 게 완전히 다른데?”
정말이었다. 나도 새내기 때 즈음에 혼자 소래길을 걸으러 나와 본 적이 있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소래길은 또 느낌이 달랐다. 걸을 때에는 꽃 하나, 풀 하나가 다 특별하게 보였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니 그 꽃 하나와 풀 하나가 포함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더 넓게, 더 멀리 볼 수 있게 된 것 같은 기분에 왠지 뿌듯해졌다. 좁은 시선으로 보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넓은 시선으로 보는 풍경도 특별했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다들 말이 없어졌다. 아마 다들 머리가 복잡할 것이다. 사실 어디론가 떠나는 일에 대해 우리의 마음이 급해진 것은, 앞으로 이렇게 추억을 만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압박감 때문일 것이었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데에만 열중하던 우리들이었는데 이제는 어느 새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말은 안 하지만 다들 졸업 후에 무엇을 하며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고, 이미 고시나 토익 준비 때문에 평소에는 집 밖으로 잘 나오지 못하는 친구들도 몇 있었다.
부인교에 걸린 구름 앞에서 우리는 하나같이 멈춰 섰다. 때마침 패러 글라이드 하나가 바람을 타고 미끄러져왔다. 파란 하늘 위에 노란 패러 글라이드가 미끄러지는 모습에 모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문득, 풍차 근처에서 연을 날리고 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들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연에 꿈을 매달게 될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한 마디가 흘러 나왔다.
“딱 오 년 뒤에, 다들 남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고 여기 다시 오자.”
어울리지 않게 웬 진지한 말이냐며 빈축을 샀지만, 친구들 모두 멋쩍게 웃는다.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치고 돌아오는 길,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바람은 쉽게 그칠 줄 몰랐다. 딸애가 겨우내 입으라고 옷을 사왔다. 남편 것이랑 내 것 두 개다. 나는 받아들자마자 대뜸 ‘어디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딸애는 비싼 거야, 됏수? 이런다. 비싼 거란다. 하기야 어디꺼냐고 묻는 말에 비싼 거라고 돌아온 대답이 썩 틀린 대답도 아니었다. 손주들을 마치 대단한 선물인양 품에 쥐어주고는 이제 틈만 나면 아이들을 맡기고 저들끼리 하하 호호다. 물론 손주 새끼들 안 예쁜 노인네야 없겠지만 저들 하는 짓이 얄미워 그런다.
남편과 나는 일찍이 정년퇴임을 마치고 그야말로 까마득할 줄 알았던 노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조용한 걸음으로 가까운 예배당에 나가 자식들 안녕을 바라고 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일도 없다. 손주들을 봐줄 때면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 과자 사달라고 해도 사주지 말고 꼭 사달라고 떼쓰면 유기농과자 사 먹여라, 비디오테이프 틀어주지 말고 책 읽게 해라, 당근은 잘 안 먹으니 곱게 다져 티 안 나게 먹여라. 별 유난을 다 떤다고 비웃으며 나는 너 그렇게 안 키웠다고 하면 이를 바드득 갈며 그래서 자기가 이런 거라며 대든다. 그러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염색 좀 하란다.
“엄마, 제발 염색 좀 할 수 없어? 진짜 할머니 같애.”
“그럼 내가 할머니지 아가씨게? 그리고 너도 곧 늙어 이것아.”
“누가 나는 안 늙는대? 그러니까 곱게 티 안 나게 최대한 안 늙어 보이게 살라는 거지.”
늙으면 늙는 거지 최대한 안 늙어 보이게 늙는 건 또 뭐람. 그리고 염색약 한 번 사다 준 적 없는 것이 매번 말로만이다.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딸애다. 딸애의 전화를 받으며 무심코 식탁에 놓인 달력을 보니 오늘이 5월 8일이다. 다른 때 같으면 나가서 밥한 끼 먹고 여느 때보다 두둑한 용돈이 담긴 흰 봉투 하나면 끝이더니 이번엔 무슨 일인지 가족야유회를 가잔다. 내가 억새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나. 지나간 말로 흘린 적이 있었는데 김 서방이 잊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침부터 김밥이다 유부초밥이다 바리바리 싸왔는데 딸애 가족은 캐릭터 돗자리에 유기농 과자, 유기농 과일이다. 김 서방은 웃으면서 하나 드셔 보라고 권했지만 딸애의 찌릿한 눈총에 됐다고 했다. 어느새 자기 둥지를 틀어 자기 새끼들만 돌보는 자식들을 볼 때면 언제 저렇게 컸나 싶다가도 젊은이들 상대로 피어오르는 질투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산 정상에 끝없이 펼쳐진 억새가 바람에 따라 한들한들 춤을 춘다. 흰색으로 보였다가도 금세 은빛을 띤다. 부스스 소리를 내며 일렁이는 억새를 보니 벌써 가을인가 싶다. 내 나이도 어느새 가을을 맞이했다.
꼿꼿하던 몸과 마음으로 살았던 2, 30대를 지나 점점 세월이 지나고 보니 스쳐 가는 바람에도 몸을 눕히는 60대가 되어버렸다. 손주가 은빛 억새를 보고 할머니 머리랑 똑같다고 깔깔거린다. 딸애는 거보라며 ‘진작 염색 좀 하지’란다.
난 이렇게 흰 아니 은빛 내 머리가 좋다. 늙는다는 것은 서러운 것도 슬픈 것도 아니니까. 그저 지나온 세월에 대한 정당함이라고 생각하니까. 늙음을 애써 감출 필요 뭐가 있을까. 바람에 흔들리듯 세월에 몸을 맡겨 이리저리 몸을 눕힐 줄 아는 지금의 나이가 좋다. 아무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