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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이야기, 아차산과 아차산성


지하철 5호선의 광나루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만 걸으면 도착하는 곳. 서울 도심 속에 이런 산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숲이 우거진 산. 이곳은 광진구의 자랑 아차산이다. 예전부터 아차산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옛이야기를 품고 있다. 아차산 이름의 유래가 된 홍계관의 이야기나 온달 장군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는 도시의 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자연으로 치유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고마운 산이다. 등산 초반에 보이는 돌길에 놀라지 마시라. 그것에서 아차산 등산의 힘듦은 끝이 났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초록으로 빛나는 나무와 숲을 감상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아차산의 이름은 후회로 만들어졌다

  • 아차산은 서울에서 자연을 느끼기 좋은 곳이다.

아차산은 서울에서 자연을 느끼기 좋은 곳이다.

아차산, 아무리 들어도 특이한 이름이다. 아차산의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지금 아차산에 서 있는 비석에는 높을 아(峨)에 우뚝 솟을 차(嵯) 자가 적혀있다. 높이 우뚝 솟은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산에 딱 맞는 이름을 가진 아차산이지만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딱딱한 한자이름보다 더 흥미로운 말을 하고 있다.
 
조선의 제13대 왕인 명종이 왕위에 있을 시절, 그 근방에서 점을 잘 보기로 유명한 맹인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홍계관으로 사람의 앞날을 예측하는 놀라운 능력으로 근방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이러한 소문은 점점 커져서 왕궁에까지 들리게 되었고 임금은 그를 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를 시험하기 위해 궤짝에 쥐 한 마리를 넣고 몇 마리가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정답을 맞히지 못했고 민심을 어지럽힌 죄로 참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들어있었다. 임금은 사형을 중지하라 명했지만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아 홍계관은 아차산 아래에 있는 사형장에서 목을 베인다. 그 사실을 들은 임금은 “아차! 아차!”하며 탄식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형장이 있던 산은 아차산이라 불렸다.

 

현재의 평안, 과거의 유적

  • 매년 1월 1일에는 아차산의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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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차산은 남녀노소 등산하기 좋은 길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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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 1일에는 아차산의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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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은 남녀노소 등산하기 좋은 길을 가지고 있다.

아차산은 해발 285m인 야트막한 산으로 정상까지 약 1시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이곳은 등산하기 쉬운 코스로 이름난 산이지만 정상에 올라서면 서울시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산과 서울의 시가지를 두루 볼 수 있기 때문에 광진구의 주민뿐만 아니라 근처 구리시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곳은 일출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매해 1월 1일이면 떠오르는 태양의 정기를 받기 위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에 광진구청은 아차산 해맞이 광장에서 해맞이 축제를 개최하고 소원지 쓰기나 희망풍선 날리기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아차산 일대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다수 발견되기도 했는데 간돌도끼나 반달돌칼과 같은 석기와 각종 토기가 500여 점 이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또한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20여 개의 보루가 있는데 이것은 고구려의 군사유적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고구려의 문화를 파악할 수 있다는 중요성이 인정되어 2004년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이곳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숨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의 엔딩이다.

 

아차산성 이야기

  • 아차산 만남의 광장에는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동상이 있다.

아차산 만남의 광장에는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동상이 있다.

아차산이 품고 있는 중요한 유적 중 하나인 아차산성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마지막 이야기가 펼쳐졌던 곳이다. 평강공주의 지극한 내조로 장군의 자리까지 오른 온달은 고구려가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이북의 땅을 되찾기 위해 지금의 아차산 방면으로 군사를 이끌고 진격하나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서 전사하고 만다. 하지만 장례를 위해 온달의 시신을 옮기려고 하자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평강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고 ‘사는 것과 죽는 것은 이미 결정이 되었으니 돌아갑시다.’라고 말하니 그제야 관이 움직였다고 한다. 이러한 온달장군이 전사한 곳이 바로 아차산성이다.
 
이렇게 아차산은 삼국시대에도 중요한 지역이었다. 작은 산이지만 꼭대기에 오르면 주변의 모든 상황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에 삼국이 탐내는 곳이었다. 이곳을 차지하고 있으면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상당한 이득을 가지고 전쟁에 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군사시설물들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아차산성은 그 당시의 상황을 대표할 수 있는 성벽이다. 아차산성을 두고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것은 아차산 부근이 전략적 요충지로 손꼽히는 곳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 지금의 아차산성은 수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아차산성은 수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중요한 지역이었던 아차산성은 현재 사적 23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을 따라 철망을 둘러놓았기 때문에 안쪽으로 접근할 수 없다. 그리고 멀리서라도 산성의 안쪽을 보기 위해 다가간다 하여도 풀과 나무가 무성한 아차산의 자연으로 인해 살펴보기가 쉽지 않다. 곳곳의 표지판이 아차산성이 있던 자리임을 나타내고 있지만 희미하게 남아있는 성벽의 모습은 성이라기보다는 그냥 돌을 쌓아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아차산성과 함께 삼국시대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으로는 아차산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보루들이다. 보루는 적이 침입하는 것에 대비하여 쌓은 소규모의 방어진지로 아차산을 비롯하여 근처의 수락산, 용마산 등에 17여 개의 보루가 분포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삼국시대에 만들어졌으며 10여 개가 고구려의 보루로 추정되고 있다. 이것은 현재 남한에 남아있는 고구려 관련 유적 중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주로 북한과 중국의 영토를 가지고 있던 고구려와 관련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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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삼국이 원했던 요충지, 아차산과 아차산성!
지금은 휴식을 원했던 도시인들의 쉼터입니다~

트래블투데이 이수민 취재기자

발행2021년 09월 01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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