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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외침, 제암리에 영원한 장면으로 피다


1919년의 3월 1일, 온 나라가 함성에 휩싸였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그 모습을 지금의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가 없다.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일,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희생을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은 이제 일본의 식민지가 아닌 하나의 독립 국가로 그 이름을 당당히 세계에 내밀고 있다. 그러나 어찌 ‘이제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 민족이 겪어 온 그 아픔을 보다 면밀히 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

                    
                

장면 하나, 흰옷의 사람들

민족의 아픔을 간직한 장면들에는 언제나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백의민족’이라고 불려왔다. 문자 그대로 흰 옷을 즐겨 입었기 때문. 그 시절의 사진에서 지금과 같이 깨끗한 화질과 선명한 이목구비를 찾아볼 수는 없겠으나, 그 선명한 흰옷만큼은 한눈에 쏙 들어오곤 한다. 

왜 하필이면 흰옷이었던 것일까. 누구나 쉬이 짐작할 수 있듯이, 그 시절의 세탁이라는 것이 수월했을 리가 없다. 흰옷은 쉽게 더러워지기 마련이었으나, 선조들은 흰옷을 고집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는 나라에서 유색(有色)의 옷을 입을 것을 권장했음에도 그러했다. 더러워진 옷을 빨고, 다시 빨아 다시 흰 빛으로 만들었다. 그랬다. 선조들이 흰옷에 담았던 것은 우리 민족의 순수함, 청결함이었다. 

 

장면 둘, 1919년의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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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으로 번진 만세 소리에 목소리를 더했던 제암리의 사람들은 일제에 의해 무참히 희생됐다.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전국으로 번져 나가기 시작한 독립운동의 물결은 현 화성시(당시에는 수원군)의 작은 마을, 제암리에까지 이르렀다. 제암리의 주민들은 다른 사람들과 뒤섞여 발안 장터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는데, 이때 모여든 사람의 수가 천여 명에 이르렀다 한다. 일제의 보복이 어찌 두렵지 않았을까마는, 한평생을 뿌리 내려온 이 땅에 대한 애착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선 사람들을 향한 애정, 그리고 독립운동의 대열에 참여했다는 자부심이 그들의 마음을 든든히 해 주었을 것이다. 

사건은 약 2주가 지난 뒤에 일어났다. 제암리 사람들은 돌연 동네 교회당에 갇히게 된다. 바깥에서 굳게 걸어 막은 출입문과 창문, 교회당은 삽시간에 거대한 불덩이로 변한다. 일제는 교회당뿐만 아니라 제암리의 마을 곳곳에 불을 더 놓는다. 비명보다 더 끔찍한 참상이 제암리를 뒤덮는다. 누군가는 불타 죽었고, 누군가는 총칼에 찔려 죽었다. 현재에 이르러 이 사건은 ‘제암리 학살사건’이라 불린다.

 

장면 셋, 기억 속에 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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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리 3.1 운동 순국 기념관에는 제암리에 대한 기억들이 가득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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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순국기념탑,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3.1 정신교육관의 모습에 마음이 시리다.

현재의 제암리는 작은 농촌 마을이다. 비닐하우스와 슬레이트 지붕이 있는 한적한 시골의 풍경.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를 바가 없는 이곳으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발길을 이어가는 것은 제암리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마을의 한쪽 귀퉁이에는 제암리 3.1운동의 순국 유적과 함께 순국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전시관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사람이 보인다. 그들은 한 뼘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밀랍 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단단히 굳은 표정으로 액자 밖을 응시하고 있기도 하다. 눈에 익은 흰옷에 그만 숙연한 마음이 들고 만다. 전시관 안에서는 다양한 시각으로 제암리를 조명한다. 깨진 장독, ‘천진한 어린 아기의 무심한 눈을 겨냥’했다는 일본군의 손, 곳곳이 붉게 물든 흰옷들. 제암리관과 경기‧전국관, 시청각실을 차례로 돌아보는 동안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이 ‘민족의 아픔’이라는 이름으로 마음을 두드려 온다. 

교회 안에서 죽었다던 23인을 위한 순국묘지와 3.1운동순국기념탑까지를 느린 발걸음으로 돌아본 뒤에도 등을 돌리는 일이 쉽지 않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다면 제암리의 시골 풍경 속을 조용히 거닐어 본다. 1919년의 제암리 또한 지금의 제암리처럼 조용한 곳이었다 한다. 이 풍경이 다시 고즈넉해지기까지의 시간을 헤아려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1919년의 제암리 사람들은 우리 민족의 기억 속에서 영원한 장면으로,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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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제암리를 방문한 분들께는 더욱 아프게 다가올 한 마디입니다. 잊지 않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트래블아이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18년 03월 01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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