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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의 향기에 취하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당시 이곳을 방문한 그는 “가장 한국적인 곳”이라며 안동을 극찬했다. 그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하회마을은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2010년, 경북 경주양동마을과 ‘한국의 역사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한국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우리는 한국적이라는 것의 정의를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한국적’이라 할 수는 물론 없을 것이다. 한국적(Korean)이라는 말의 의미는 한국 전통 문화에 기반하고, 그에 부합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국 버킹엄궁전을 영국적이라 할 수는 있지만, 영국 런던의 시내에서 먹는 짜장면을 영국적이라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마 엘리자베스 2세의 푸른 눈에는 안동 하회마을의 고택과 낙동강의 잔잔한 물살, 하회탈춤 등이 ‘한국적’인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이는 다른 외국인 관광객, 특히 서구권 외국인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에만 있는 한국의 고택, 다시 말해 우리의 ‘옛 집’이 그들에게는 신선하고 가치 있는 ‘한국적 문화’로 인식될 터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고택에 주목하는 이유다. 교통과 SNS의 발달로 나라간 문화의 장벽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이 한국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보존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고층빌딩은 트렌드가 될 수 있고, 관광지는 될 수 있지만, 전통은 될 수 없다. 자기만의 ‘색깔’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만 있는 한국의 옛 집 ‘고택’은 한국적 색깔을 강하게 갖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의 문화가 되고, 한국적인 소재로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전통 문화를 무조건 예찬하고, 그것에 함몰되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고택을 비롯한 전통 문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오늘날, 그리고 후대의 우리나라 문화가 사상누각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한국 문화의 근본에 대한 고찰 없이 무작정 트렌드만 좇는다면 결국 구심점 없이 그때그때의 현상만 좇는 꼴이 돼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체험이 목적이든, 옛 것에 대한 탐닉이 목적이든, 우리나라 고택은 국내 그 어떤 관광지에도 뒤지지 않는 여행지다. 또 고택은 길게는 수백 년 역사가 담긴 역사의 산실이기도 하다. 솟을대문에, 처마 밑에, 대청마루에 켜켜이 얽히고 쌓인 세월을 오감으로 느껴본 이는 알 것이다. 집이 때로는 인간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몸소 고택을 찾아온 ‘손님’에 대한 고택의 ‘선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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