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영화 ‘경주’
영화 ‘경주’는 북경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최현(박해일 분)이 친한 형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한국에 오면서 시작한다. 오래 전 고인과 함께 경주의 어느 찻집에서 춘화를 본 기억이 떠오른 최현은 무작정 경주로 향한다. 7년 만에 찾은 찻집은 그대로 있지만 춘화는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춘화가 없어진 그곳엔 오묘한 매력을 지닌 찻집 주인 공윤희(신민아 분)가 있다. 영화는 장률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재중동포인 장률 감독에게는 경주가 관광지가 아닌 ‘삶과 죽음이 느슨하게 이어져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경주에서는 능을 보지 않고는 살기 힘들어요.”라는 영화 속 공윤희의 대사처럼, 영화 ‘경주’ 속의 경주는 죽음과 삶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이 지닌 욕망을 통해 삶의 본원적 의미를 묻는 영화 ‘경주’. 영화 속 ‘경주’를 찾아 경주로 떠나보자.
영화 속 차(茶)의 향기
영화 '경주'의 촬영지는 모두 경주역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영화 속 최현은 불현듯 떠오른 7년 전 기억을 좇아 무작정 경주를 찾는다. 영화가 시작되는 곳은 사실 신경주역이지만, 영화가 촬영된 장소는 경주역에서 더 가깝다. 경주역에서 정면을 향해 약 10분 정도 걸으면 영화의 대부분이 촬영된 전통찻집 ‘아리솔’을 만날 수 있다. 아리솔은 20여년 전 ‘심오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이후 ‘아사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2년 전 지금의 ‘아리솔’이라는 세 번째 이름이 붙었다. 아리따운 소나무처럼 마음이 늘 푸르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장률 감독이 이곳에서 춘화를 발견한 것은 아직 ‘심오해’라는 이름이었을 때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전통찻집은 또 있다. 역시 경주역 인근에 있는 ‘능포다원’으로, 아리솔과는 지척에 있다. 영화의 배경으로 이 능포다원이 등장하게 된 계기가 재밌다. 장률 감독은 당시 걸려 있던 춘화를 그린 이를 수소문해 찾았는데, 알고 보니 동국대 미술학과 김호연 교수의 작품이었다고. 능포다원은 김 교수와 부인이 함께 운영하는 찻집이다. 능포다원에서는 따뜻한 차와 함께 한식 디저트를 즐길 수 있고, 곳곳에서 김 교수의 춘화도 감상할 수 있다.
주인공 최현의 걸음을 따라, 보문호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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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호 한 가운데 오리배가 떠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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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보문호의 색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영화 초반부의 최현이 걷던 길은 보문호수길이다. 보문호를 둘러싼 길은 봄철 벚꽃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지만 사계절 모두 운치 있다. 최현이 태극권을 하던 장면도 이곳에서 찍혔다. 호수 한가운데를 유유자적 떠다니는 오리배와 삼삼오오 모여 산책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문호의 풍경과 어우러져 호젓한 분위기를 만든다. 보문호 곳곳에는 자전거 대여소가 있으므로 자전거를 타고 호반도로를 달려보는 것도 좋다. 오색 조명이 빛을 수놓는 보문호의 야경 또한 볼거리다.
늦은 밤 최현과 윤희가 함께 걷던 길, 대릉원 지구
천마총은 대릉원 지구에서 유일하게 내부의 모습을 관람할 수 있는 고분이다.
영화 속 윤희의 집 앞에는 대릉원의 일원인 노서리 고분군이 자리한다. 대릉원은 황남동 일대에 솟아 있는 고분군을 가리키는 말로, 그 명칭은 ‘미추왕을 대릉에 장사지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유래됐다. 신라시대의 왕과 왕비, 귀족 등 무덤 23기가 이 부근에 모두 모여 있다. 능포다원에서 나와서 걸으면 금세 닿는 거리다. 고분을 양 옆에 두고 난 봉황로를 따라 걸으면 최현과 윤희처럼 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다만 영화 속 주인공처럼 능 위로 올라가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대릉원에 있는 고분 23기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능은 유일하게 내부가 공개되어 있는 천마총이다. 1973년 발굴 조사를 하던 당시, 발굴 조사된 고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데다 거의 완형에 가까워서 신라시대의 왕릉급 고분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많이 제공하였다. 이 천마총에서는 1만 점 이상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이 중 국보 207호인 천마도장니 등 일부가 국립경주박물관 별관에 보관되어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과 볼거리가 풍부한 경주로 영화 속 최현과 윤희의 흔적을 찾아 떠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