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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궁리에 빠진 곳, 통영 제승당


통영에서 여객선을 타고 한산도로 향하는 길. 뱃머리에 갈라지는 물살이 거칠다. 청청한 색채, 지글거리듯 들끓는 물보라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것만 같다. 1592년 7월 8일 한산도 앞 바다, 조선의 수군은 이순신 장군의 지휘 하에 왜군을 격파했다. 거제도와 고성 사이에 있는 한산도의 지리적 특징을 고려한 작전 덕분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에서의 쾌거를 기념해 한산도에 호젓한 사당을 한 채 지었다. 제승당. 자연 경관이 빼어난 터에 있으니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어떤 영감을 받았을지 감히 궁금해진다.

                    
                

내 집은 사령부다, 이순신 장군의 제승당

  • 충무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제승당이 보인다.

    충무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제승당이 보인다.

‘제승당’이라는 이름은 이순신 장군이 지은 것이 아니다. 그가 세상을 뜬 지 백사십이 년이 지난 1740년에서야 통제사 조경(趙儆)이 터밖에 남지 않은 땅에 유허비를 세우고 덧붙인 것이다. 제승당의 본명은 운주당(運籌堂). 생전에 잦은 출장으로 거처를 옮겨 다녔던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모든 거처들을 그렇게 불렀다. 운주(運籌)는 ‘모든 계책을 세운다’는 뜻으로 운주당은 즉, 사령부를 말한다. 제승당도 사실은 그의 수많은 거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도 없었을 터. 이순신 장군은 늘 자신의 집에서 휘하의 참모들과 작전을 짜곤 했었다. 그에겐 자신이 머무는 모든 곳이 사령부였던 셈이다. 사사로운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이 지닌 것들을 하나같이 소중하게 여기며 그는 기지를 한껏 발휘했다. 제승당은 그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북돋워준 곳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한산대첩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수군을 모두 다스릴 수 있도록 영감을 준 곳이다.
 

 변치 않는 뜻이 서려 있는 제승당과 충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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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제사 조경이 세운 유허비는 수 백 년 동안 제승당 터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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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제사 조경이 세운 유허비는 수 백 년 동안 제승당 터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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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통영의 유학자들은 이순신 장군의 뜻을 기려 충무사를 창건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결코 퇴색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런 가치를 알아보는 귀인들이 있다. 통제사 조경이 제승당이 있던 자리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유허비를 세우고 새로운 이름을 붙여 그의 넋을 기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곳은 허허한 채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누가 공터를 찾아 배를 타고 섬으로 향하려 들까. 정유재란, 왜군에 의해 이순신 장군은 세상을 떴고, 제승당도 완전히 소멸됐었다. 그러고 나서도 142년 동안 그는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국민에게서마저 잊히고 말았다. 통제사 조경, 그는 이순신 장군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충무문을 열면 바로 제승당이 보인다. 장식이 많지 않은 단순한 짜임새의 집 한 채. 군더더기 없는 멋이 느껴지지만 어쩐지 새것 같은 느낌이 난다. 사실 지금의 제승당은 지어진 지 불과 39년밖에 되지 않았다. 정유재란에 불타고, 조경이 세운 유허비가 그 자리에 세워진 지 무려 236년이 지나서야 중건된 것이다. 그럼 그 사이에도 제승당 터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채였을까. 그렇다, 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보다 사십 여 년 전에 통영의 유학자들이 모여 이순신 장군의 뜻을 기리는 새로운 사당을 지었기 때문이다. 충무사에는 뜻만큼이나 영험한 그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이순신 장군의 안식처, 제승당 수루

  • 제승당 수루에는 이순신 장군의 시, <한산도가>가 새겨져 있다.

    제승당 수루에는 이순신 장군의 시, <한산도가>가 새겨져 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수루에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 고개를 들어 이순신 장군이 그 자리에서 지었다는 시, 〈한산도가〉를 읊어본다. 이순신 장군은 낮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고 밤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름에 잠겼다. 그럴 때면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시 한 편을 지어냈다.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혼잣말을 하던 그, 적이나 부하, 모두에게 의연한 모습만을 보여야 했던 그. 영정과 유허비, 제승당에서 엄숙해졌던 기분은 푸른 바다 앞에서 먹먹하게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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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승당은 대한민국 역사를 바꿔놓은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비롯되었던 곳입니다. 생명력이 넘치는 한산도 앞 바다에 둘러싸여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거닐어 보는 건 어떨까요. 가족과 민중을 위한 깊은 뜻이 여전히 느껴질 것입니다.

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5년 07월 15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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