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영문인지 아침부터 밖은 소란스러웠다. 웅성거리는 곳에서 드문드문 들리는 이야기를 조합해보니 오늘 하루 동안 정전일거라는 이야기였다. 암막커튼을 달아놓아 방안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어두웠다. 불면증이 심한 내가 고안해 낸 최선의 방법 중 하나였다. 아무런 빛이 새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 느지막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오후 2시 반이다. 밖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소식이 있다고 하더니 밖은 아직 어둠이 내려앉을 시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했다.
“정전이면 텔레비전도 다 안 나오는 건가?”
나는 조그맣게 혼잣말을 읊조렸다. 부스스하게 일어났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전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별다를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단은 무의식적으로 리모컨을 집어 들었으나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웅성거리며 켜져야 할 텔레비전은 켜질리 만무했다. 아차, 싶은 마음에 부엌으로 갔다.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즉석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물론 이 고철덩어리도 반응할리 없었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선반에 놓인 수분이 날아간 식빵 한 조각을 입에 구겨 넣었다. 아직 어두운 밤이 오지 않았음에도 정전은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마치 어두운 동굴 안에서 원시생활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겨졌다. 문명과 닿아있는 유일한 끈, 휴대전화의 전원을 켜보니 배터리도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불빛도 없이 소파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으려니 나 자신이 무기력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문득 빛이 보고 싶어졌다. 베란다 창고에 가서 촛불이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자신 있게 팔을 걷어붙이고 창고에 발을 들였으나 어두운 곳에서 촛불하나 찾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와당탕하고 아슬아슬하게 얹어놓은 살림살이들이 머리위로 쏟아져 내렸고 촛불을 찾기는커녕 천둥소리에 놀라 후다닥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조명이 없다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덩그러니 소파에 앉아있는데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가 떠올랐다. 성냥하나 켜면 맛있는 음식들이 떠오르고 또 하나의 성냥을 켜니 따뜻한 방안이 떠오르고 마지막 하나의 성냥을 켜며 잠이 들었다지. 성냥팔이 소녀에게도 있던 성냥이 나에게는 없다. 고로 빛을 찾아 나서야 했다.
우산 하나만 챙겨 나온 밖엔 비가 그쳐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어둠은 그대로였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거리로 나섰다. 거리는 휘황찬란했다. 여러 간판과 가게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들로 눈이 부셨다. 불과 몇 시간동안 빛을 못 본 것뿐인데 빛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토끼눈을 떴다.
문득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꼭 가보고 싶다던 곳이 있다고. 필룩스 조명 박물관에서 크리스마스 특별전을 열었다고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조명 조형물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했다. 망설일 필요가 없다. 필룩스 조명 박물관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입장 한 시간 전에 도착하여 나름 여유 있게 박물관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곳은 거리에서 본 찬란한 조명과는 다른 느낌의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풍겼다. 아기자기한 조형물을 비롯하여 빛이 없던 시대의 이야기부터 현대의 조명 그러니까 일상생활 속 조명의 역할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찬찬히 둘러보면서 낮에 있었던 정전사태를 떠올렸다.
빛은 있어야 했다. 애써 어둠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어둠이 짙게 깔리면 깔리는 대로 어둠을 놔두면 되고 날이 밝아오면 밝는 대로 밝음을 즐기면 그만이었다.
빛을 받은 조형물들은 아름다웠다. 친구가 말한 대로 크리스마스에 왔더라면 더 아름다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까지 들었다. 폐장시간이 다 됐는지 드문드문 관람을 하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은 그리고 내 방안은 여전이 어두웠다. 나는 내 방안에 쳐있던 암막커튼을 확 걷었다. 어두웠던 집안이 한층 밝아진 듯 했다. 마치 은은한 조명을 하나 켠 것처럼. 그리고 조그맣게 혼잣말을 했다.
‘오늘 하루는 꿈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라!’